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군요

여자 말입니다

나이에 비해 좀 늙었고

게다가 굉장히 조용하고

뭐랄까 뭔가 아주 평범하달까?

하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평범 그 자체인 저런 여자가

살인과 강도짓을 저지른 남자와

이 여자는 몇 시간의 열정을

불태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 밤부터 또 그 구두쇠 남편과

전처 아이들과의 생활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내일부터는?

저런 정열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평범한 모습으로 재봉틀을 밟고 있겠지

끝난 일은 어쩔 수 없어

오늘부터 다시 하는 거다

다시 시작하려고 생각할 때부터야

새로운 인생이란 건

“서스펜스 스릴러의 대가로 알려진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이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 도쿄의 두 형사는 살인 혐의를 받는 용의자의 옛 여자친구를 감시하기 위해, 코슈로 내려가 일주일 간 잠복근무를 시작한다. 여자친구인 사다코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해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형사는 그녀에게 어떤 연민을 느끼게 된다. 살인 용의자인 옛 연인은 과연 그녀를 찾아올까? 흑백화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히치콕을 능가한다.”

“서스펜스 스릴러의 대가로 알려진”이라는 안내문과 “흑백화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히치콕을 능가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와 보게 된(그렇다고 과연 “히치콕을 능가”할 수 있겠나? 는 생각을 했지만) ‘잠복근무’는 예상대로 능가하진 못했고 생각보다 긴장감과 속도감도 느슨해(물론 번뜩이는 순간도 있었다) 실망을 느꼈지만 여러 가지로 독특하고 볼만한 구석도 있는 영화였다.

패전 이후 간신히 재건을 시작하고 있는 도시의 풍경과 열악한 상황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1950년대 일본의 모습(도시 그리고 지방)을 바라보다가도 그 시선을 한 여성에게 향하기도 한다. 그 시선은 감시의 시선일 때도 있고 관찰과 관음증의 시선일 때도 있다. 어떤 욕망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집요함과 집착이 엉켜져 있다. 범인을 잡겠다는 집념과 여인을 알고 싶다는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 뒤틀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젊은 형사가 갖고 있는 복잡한 상황도 얼핏 알려주고 있다. 굳이 자세히 알려주진 않지만.

영화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지방으로 향하는 과정을 꽤 길게 보여주고 있다. 두 형사가 느끼는 지루함과 무더위로 인한 힘겨움을 보는 이들도 함께 느껴보라는 듯이. 그런 다음 자리를 잡고 한없이 기다리길 시작한다. 한 여인을 바라보며. 그러고만 있으면 보는 사람도 지루해 할 것을 알고 있는지 간혹 어떤 사건으로 그곳까지 향하게 되었는지 과거를 되짚으며 전체적인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이야기는 정체와 진전을 오간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가도 흐지부지되다가 막판에야 서둘러 이야기를 이끌며 어떤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 수사물로서 잠복근무라는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을 잘 보여주지만 그 지루함 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덧붙여 활력을 만들려하지만 딱히 흥미를 끌진 못한다. 젊은 형사가 머뭇거리는 모습 또한 여인의 모습에 비춰 자기 상황을 고민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걸 다룰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한 여성에 대한 탐구와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탐구는 좀 기괴하기도 하다. 우선 여성의 처지는 기구하다. 사랑하는 남성과는 맺어지지 못했고 돈 때문에 결혼한 상대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보다 가정부로서 지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본성이라 할 수 있다)을 숨기고만 있고 그걸 아주 짧은 순간 드러내고 있지만 결론은 비극이고 그걸 참고(감추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좌절만 깊어지게 한다.

반대로 이 영화는 남성(들)에 관해서는 관대하다. 젊은 형사부터 여성을 지켜보며 자기 상황을 생각해보며 본인의 난처한 입장을 정리(결심)하고 있다. 그 결심은 여인을 지켜봄으로써 가능하게 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여인의 경우 어떤 식으로도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로 마무리를 한 반면 붙잡힌 범인에게는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길 권하고 있다.

한쪽(여성)은 어떤 가능성도 없는 절망으로 마무리하고 다른 한쪽(남성)은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럴만한 시대고 지극히 이해되는 마무리라 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온당한지는 애매하다. 괴팍하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본다면 너무 남성 중심이라 할 것이다. 어쩌면 이제 막 재건을 시작한 일본의 상황을 생각하다면 (남성에게만) 어떤 낙관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기대와는 다른 영화지만 묘한 점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완전한 비극을 다른 이에겐 약간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무척 극명하게. 가혹하게. 다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