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 機動戦士 ガンダム 0083 STARDUST MEMORY Mobile Suit Gundam 0083 STARDUST MEMORY
후니캣 2020.03.18 08:03:58
지구 연방군 및 지온 공국의 전사에게 전한다
우리는 데라즈 프리트
이른바 1년 전쟁이라고 말하는 지온 독립 전쟁의 종전 협정이
거짓이란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왜냐면 협정은 지온 공화국의 이름을 사칭하는 매국노에 의해 맺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금도 전쟁의 목적을 잃고 있지는 않다
머지않아 실증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생각해 왔다
스페이스 노이드의 자치권 학립을 믿고
전쟁의 업화에 불타간 자들을!
그리고 지금 또 굳이 그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려 하는 젊은이들을!
스페이스 노이드의 마음으로부터의 희구인 자치권 요구에 대해
연방의 그 광대한 군사력을 행사해서 자그마한 그 싹을 따려 하는 의도를
증명하기에 충분한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회상해 보라 왜 지온 독립 전쟁이 발발했는가를
왜 우리가 지온 중 다이쿤과 함께 있는 가를!
우리는 3년 간 기다렸다
이미 우리 군단에 망설임의 한숨을 내쉬는 자는 없다
지금 진정한 젊은이의 뜨거운 열정을 나의 피로 삼아
여기에 나는 다시 지구 연방 정부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는 바이다!
반복해서 마음에 들려 오는 조국의 명예를 위해서!
지크 지온!
토미노 요시유키의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퍼스트, Z, ZZ) 말고는 다른 건담 시리즈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걸 다 본다는 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딱히 뭐부터 봐야 할 것인지도 막연하고.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생각이면서 ‘기동전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를 본 이유는 이게 처음으로 본 건담이기 때문이다. “건담 시리즈 사상 유일무이하게 한국 지상파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이기도 했고. 볼 당시는 잘려나간 게 있는지 이게 건담 세계관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등을 생각하며 보진 않았다. 그럴 정도로 명석하지도 건담에 빠져 있지도 않았고. 그저 휴일 특집으로 이런 만화를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분 좋다! 였다. 놓쳤으면 어쩔뻔 했겠나.
“통칭 0083으로 불리는 총 13화로 이루어진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OVA. 퍼스트 건담과 Z건담 사이의 공백을 채워넣은 작품으로 91년부터 92년까지 1년 안이라는 빠른 기간 안에 전 13화가 완결”된 0083은 “캐릭터 디자인은 카와모토 토시히로, 메카닉 디자인은 카와모리 쇼지와 카토키 하지메가 맡았다. 그리고 오사카 히로시, 요시다 토오루, 카와모토 토시히로, 사노 히로토시, 야마시타 마사히토, 이토 코지 같은 명 애니메이터들이 그려낸 장면들은 당시대 최고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다만 데자키 오사무 식 연출법을 많이 사용했으며 따라서 원화의 질은 매우 높으나 동화 컷수는 적다”고 한다.
물론, 저런 식으로 0083을 생각하고 있진 않다. 그저 처음 본 건담이라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거대한 로봇을 조종하는 이들의 밝고 명랑한 이야기가 아닌 뭔가 괴로워하고 심각한 모습만 보여준 모습만 생각난다.
“기존의 건담 시리즈가 그렸던 "소년의 성장"과는 동떨어지게, 정신적으로 약간 미숙한 면이 있는 "MS매니아 풋내기 소위"가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해내는 장교로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 건담판 탑건”인 0083은 “1970년대 베트남전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 MS08소대와 함께 미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린 작품”이고 그런 분위기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한 노력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 노력 또한 영화나 여러 자료를 통한 반영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살아온 이들이 베트남전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영상을 통해서만 베트남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민간인'이 전쟁에 휘말려 변해가는 드라마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 기존 건담 시리즈에 익숙한 사람들은 색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건담 시리즈가 뉴타입 소년들이 전쟁을 겪으며 그 전쟁 속에서 경험을 쌓아 결국에는 전쟁의 판도까지 엎어버릴 정도의 활약을 보이는 반면, 본작의 주인공 코우 우라키는 뉴타입도 아닌 데다가 전국을 뒤엎을 정도의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등, 기존의 건담에서 벗어난 전개도 자주 보이고 있어서 기존의 건담 팬들에게 환영과 지탄을 동시에 받”았지만 현실적이라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다만, 이야기에 삼각관계를 굳이 끼워넣은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도 내용이 마무리 되기 직전에 그걸 넣으니 어리둥절했다. 그것 말고는 “여러가지 설정과 시츄에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치밀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 전개 등” 여러 가지로 재미나게 볼 수 있었다.
“매력적인 색깔을 가진 캐릭터와 이미 Z건담에서 선보인 바 있는 바스크 옴, 자미토프 하이만 등의 캐릭터들을 절묘하게 크로스하면서 Z시대의 토대를 완성하고 새로운 건담 팬들을 유입”시킬 수 있었고 Z 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찾아보게 할 정도로 매력적 내용이다.
여러 가지로 오락성이 높고 “전통적인 일본 애니메이션보다는 미국적인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어 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불만이 있는 사람도 많다) 좋아할 결과물이다.
특히 전쟁이 종결된 이후 “지온의 독립을 꿈꾸는 지온 잔당들의 이야기를 기본 소재로 삼아 전체적인 내용 전개가 민간인 공격과 옥쇄, 자살공격을 숭고한 이상의 실현, 개인의 신념 등으로 지나치게 미화하여 지탄의 대상”이 됐다. 신념을 내세우고 그걸 무척 미화시켜 멋져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독립을 운운하며 핵병기와 콜로니를 모두 무기로 써버린 데라즈 플리트는 사실상 우주세기의 ISIS 그 자체일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봐야만 할 것 같다. 좋든 싫든 “군국주의에 심취한 개념없는 존재”를 미화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연 그들의 긍지는 올바른 맞는 긍지였을까?
한편으로는 (과장한다면) 그런 식으로 본다면 지금 국제정세를 생각했을 때 0083은 예언적이라 할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계속되는 (양쪽 모두) 강경한 대응과 반응이 어떤 상황까지 만들어가고 있는지 우린 직접 보고 있으니까.
지온군 잔당에 대한 미화를 문제삼듯 “연방 쪽의 묘사도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결과물이지만 어쩌면 명쾌하게 어떤 입장이 맞다고 말할 수 없는 내용이라 좀 더 현실을 반영하면서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 같다.
억지다 어거지네 세계관 설정 붕괴 등등 지적받게 되는 부분은 많을지라도 흥미로운 결과물이라는 점 자체는 크게 부정하짐 못할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문제점들로 좀 더 흥미롭게 볼 구석도 있게 되고.
“이 작품은 캐릭터들이 하는 표정과 행동의 연출이 다 1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한 장면에서 동시에 여러 정보와 감상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바보들에게 직설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 같은 작품이다. 시청자를 바보로 보는 것이다. 만든 사람들도 그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마크로스 같은 확실한 기호화와 오락성도 없다. 인간 드라마를 만들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만든 인간 드라마다. 잘도 이런 걸 상품으로 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화만 좋은 애니”라는 말을 가볍게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너무 즐기기만 했나? 라는 부끄러움도 들지만 어쨌든 재미나게 봤기 때문에 그걸로 만족한다.
회당 25분 분량에 전체 13화지만 이것도 길게 느껴진다는 사람은 2시간으로 요약한 극장판 ‘기동전사건담 0083 - 지온의 잔광 機動戦士 ガンダム 0083 － ジオンの残光 Mobile Suit Gundam 0083 - Last Blitz Of Zeon’으로 감상해도 크게 문제되진 않을 것 같다. 그걸 보고 OVA를 즐기면 좀 더 상세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건담이라는 세계에 슬슬 빠져들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극장판에서 보여준 완결이 더 알맞은 것 같다. 어줍잖은 후일담을 보여준 OVA 보다는 이게 더 맞는 것 같다.
참고 : 가장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시마 가라하우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애니의 묘한 점은 (앞선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1차원에” 그치는 결과물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상할 정도로 현실을 비추고 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