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자체가 지루해서 많은 자극적인 요소를 투입해야 했습니다. 건강한 맛 음식의 최대 단점은 지루한 맛입니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다>는 건강한 영화입니다. 역사 속에서 자극적인 드라마는 얼마든지 있지만 조선 최대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담으려면 드라마를 많이 추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장영실은 다큐의 소재이지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장영실은 관노 출신으로 뛰어난 머리로 정 5품 관직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럼 장영실 성공담을 담으면 될까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만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성공기를 담기보다는 장영실과 세종대왕의 사랑보다 깊은 우정을 담고 있습니다. 

예상과 달리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과 장영실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담고 있습니다. 장영실의 뛰어난 발명품을 만드는 과정을 꼼꼼히 소개하면서 장영실이 얼마나 위대하고 이 장영실이 개발한 측우기로 강우량을 측정하고 혼천의로 명나라 기준시가 아닌 조선만의 시간을 가지며 해시계만 있던 조선에 물시계인 자격루로 밤이나 흐린 날에도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음에도 영화 '천문'은 이런 것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혼천의나 자격루를 다루기는 하는데 겉핥기 식으로만 담고 넘어갑니다. 왜?라는 의문이 절로 나옵니다. 대신 천문이 주목한 것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우정입니다. 

왕과 신하가 우정을 나눌 수는 있지만 그 우정이 잘 담으려면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장영실과 세종대왕 사이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도 않고 있어도 그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하니 영화가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초반부터 졸리기 시작합니다. 이 졸음을 방지하기 위해서 허진호 감독은 이야기 구성을 한번 꽜습니다. 

영화 초반 천문은 세종대왕이 타던 바퀴 달린 가마가 부셔 저서 크게 다칠 뻔합니다. 이 사고를 시작으로 이 가마 사고가 나기 4일 전으로 돌아가서 왜 이런 사고가 났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와 장영실과 세종이 20년 전 처음 만난 이야기가 동시에 출발합니다. 

장영실과 세종이 처음 만나던 20년 전 이야기가 달콤한 솜사탕 같다면 20년 후 명나라 사진이 감히 황제가 있는데 천문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혼천의를 부숴버리고 4일 후에 가마 사고가 난 이야기를 짜고 쓰린 소금 가득한 이야기로 담습니다. 

이 2가지 맛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영화를 한 땀 한 땀 이어갑니다. 

기시감을 이겨내는 한석규 그러나 한석규만 보이는 것이 문제

한석규가 세종대왕을 연기하는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SBS 인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욕 잘하는 세종으로 나왔었죠. 이 이미지는 영화 '천문'에서도 이어집니다. 역시 한석규라고 할 정도로 연기를 아주 잘 합니다. 성우 출신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딕션도 좋고 대갈일성은 포효하는 사자 같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천문'은 장영실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세종이 주인공으로 느껴질 정도로 모든 이야기의 주도권과 캐릭터의 입체성이 가장 뛰어납니다. 반면 장영실은 맹목적인 세종에 대한 섬김과 다른 캐릭터들이 너무 기능적으로만 작동합니다. 그나마 신구가 연기한 영의정만이 의뭉스러우면서도 노회한 모습을 잘 담겼다면 다른 캐릭터들은 단순하고 입체적이지 못합니다. 

심지어 장영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석규의 세종대왕을 위해서 다른 캐릭터들이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느낌이 듭니다. 영화 '천문'은 친애하던 장영실을 왜 세종이 곤장 80대를 때렸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기에 장영실이 매를 맞고 역사 책에서 사라졌는지의 의문을 영화적 상상으로 풀어냅니다. 

이 의문을 푸는 키워드가 제 예상과 맞아서 제가 좀 놀랬네요. 그만큼 영화 '천문'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에 기시감이 드는 배우 그리고 예측 가능한 상상이 전체적으로 힘을 뺍니다.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영화는 잔잔하게만 흘러갑니다. 그러다 영화 후반 가마가 부서진 책임을 찾는 과정에서 자극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1시간 30분 정도 잔잔하게 흐르다 후반 30분 격정의 소용돌이가 불어오고 이 30분이 그마나 앞 부분의 지루함을 달래줍니다. 

입에 쓰면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하죠. 영화 <천문>은 입을 달콤하게 하는 매끈한 영화는 아닙니다. 자극이 너무 없어서 맨밥을 먹는 느낌입니다. 이게 참 아쉽고 아쉽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영화 이야기나 영화 천문이 담고자 하는 메시지와 장영실과 세종 사이의 깊은 우정은 후반으로 갈수록 진해집니다. 

간간이 웃기면서 웃음 타율도 꽤 높습니다. 다소 올드 한 연출과 이야기가 있지만 그럭저럭 볼만하고 온 가족이 볼만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