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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해준, 김병서

주연 :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전혜진, 배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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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는 북한 소재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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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봤다. 100세 생일 때 요양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 알란의 모험을 담은 이 연극은 알란이 젊은 시절 세계를 떠돌며 유명 인사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알란이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도 있는데, 100세 노인 알란을 연기한 배해선은 이 부분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올해는 이 이야기를 해도 될는지 조금 아리송하다.'라고 말해서 관객의 웃음보를 터트렸다.

배해선의 말 그대로 요즘 남북의 상황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어린 시절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던 내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기도 하다가 어느새 긴장 상태에 빠져든다. 특히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북한을 어떻게든 끌어안고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긴장된 분단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제2의 한국 전쟁이라도 벌이자는 말인가? 참 답답하다.

요즘 분위기가 어떻든 올해도 역시 북한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했다. 2018년 연말에는 김병우 감독의 [PMC : 더 벙커]가 관객에게 선을 보였었다. [PMC : 더 벙커]는 남과 북의 긴장 관계를 이용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정치 싸움에 휘말린 글로벌 군사 기업 블랙리저드의 캡틴 에이헵(하정우)의 활약을 그린 액션 영화이다. 2017년 연말에는 북한의 군사 쿠데타로 인하여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를 둘러싼 치열한 첩보전을 다룬 [강철비]가 개봉했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어떤 방식으로 북한을 블록버스터 소재로 이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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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분명 재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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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C : 더 벙커]가 액션, [강철비]가 첩보 스릴러 영화라면 [백두산]은 재난 영화이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하고, 그로 인하여 북한은 물론 한국마저 지진에 인한 재난이 발생하자 한국 정부는 특전대를 북한에 투입, '백두산' 지하에 자리 잡은 갱도에 핵폭탄을 설치하여 한반도 전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백두산'의 4차 폭발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 핵폭탄을 설치하는 계획을 막으려 하고, 중국 또한 한국의 특전대가 북한에 투입된 것을 꼬투리 삼아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의 계획을 방해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설정만 놓고 본다면 [백두산]은 [PMC : 더 벙커]의 액션과 [강철비]의 첩보 스릴러가 적당하게 뒤섞인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재난 영화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영화 시작 몇 분 만에 지진으로 인하여 서울 도심의 고층 빌딩이 무너지는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을 보여준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우리나라 최고의 재난 영화 [해운대]를 넘어, 할리우드의파괴 대왕,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 영화 [2012]를 보는 것만 같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 모두 2009년에 개봉했다)

특전대가 북한에 투입되고 나서도 폐허가 된 북한을 보여주며 '난 재난 영화야.'라고 끊임없이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후반부 화산 폭발 중인 '백두산'의 모습은 2014년에 개봉한 폴 앤더슨 감독의 [폼페이 : 최후의 날]이 연상되기도 한다. 재난 영화답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귀한 희생도 나온다. 재난 영화로만 따진다면 너무 전형적인 결말이라고 투덜댈만하지만 재난 상황에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이 끼어드니 이 또한 묘한 매력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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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캐릭터를 생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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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돋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백두산' 폭발이라는 재난 상황에 오롯이 집중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정이 많은 우리나라 관객들의 경우 캐릭터의 매력이 영화 흥행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해운대]가 그랬다. [해운대]는 부산 '해운대'에 초대형 쓰나미가 덮치는 상황을 그린 재난 영화이지만, 쓰나미 장면보다는 캐릭터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무려 1시간 30분은 최만식(설경구), 강연희(하지원)를 비롯한 영화 속, 수많은 캐릭터들의 사랑과 웃음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분명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탄탄한 이야기를 구축한 캐릭터의 힘이 컸다.

[백두산]은 [해운대]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캐릭터를 포기하고 재난에 힘을 싣는다. 조인창과 최지영(배수지)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 전면에 내세우고, 3년 전부터 '백두산' 폭발 위험을 경고한 강봉래(마동석)의 고군분투가 영화의 초중반을 가득 채워 넣을 수 있었지만 [백두산]은 결코 그러지 않았다. 영화는 곁가지들을 모두 쳐내고 처음부터 본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두산]은 재난의 스펙터클만 있고 이야기가 없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캐릭터는 하정우, 이병헌, 마동석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로 대체한다. 그리고는 깨알 같은 코미디로 영화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리준평(이병헌)과 조인창이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이용하며 능글맞게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캐릭터 설명이 거의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샘솟게 만든다. 한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강봉래 역시 마블리 마동석의 매력 덕분에 생뚱맞지 않다. [백두산]은 캐릭터를 생략했으면서도 배우들의 매력과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부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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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나라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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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백두산]이 캐릭터 구축을 포기하고 '백두산' 폭발이라는 재난에 집중하면서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백두산' 폭발과 같은 전쟁에 준하는 초유의 상황에서 군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에 있어야만 하지만 창피하게도 우리나라의 전시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 즉 미국에 있다. 2020년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 현 정부는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이 없으면 우리나라는 북한에 의해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참 우습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우리가 군의 작전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반식민지적 상황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상황이... 분명 미군은 우리의 우방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상황이 미국에 이익을 안겨줄 때까지만이다. 미국이 무슨 천사 같은 나라라서 자국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도와 줄리가 없지 않은가.

[백두산]에서 정확하게 그러하다. 영화 속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백두산' 화산의 4차 폭발에 의한 대재난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 있더라도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 한다. 그것이 핵에 의한 것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중국 국경에 가까운 '백두산'에서의 핵폭발은 중국과의 전쟁 위협을 높일 뿐, 미국에 그 어떤 이익도 안겨주지 않는다. '이 재난을 보고만 있으라는 말이냐?'라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한마디에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공허한 약속만 되돌아올 뿐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반발을 막을 수가 없다. 이건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한계다. [백두산]은 재난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그러한 슬픈 한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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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를 포기한 이 영화의 득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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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창은 핵폭탄을 '백두산' 갱도에 설치해서 '백두산'의 4차 폭발을 막아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의 앞에 놓인 장애물은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리준평을 경계하며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빼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무모해 보이는 계획을 저지하려는 미군의 추격을 피해야 하고, 북한의 핵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음모에도 맞서야 한다. 미국의 개입으로 더 이상 조인창을 도와줄 수 없는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력도 조인창에겐 장애물이다.

이 수많은 장애물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리준평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리고 영화는 리준평의 딸의 존재를 통해 리준평의 마음을 되돌려 놓는다.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발생한다. 등장부터 마이클 베이 감독의 걸작 액션 영화 [더 록]의 메이슨(숀 코네리)처럼 압도적인 분위기로 첫 선을 보인 리준평은 조인창과의 합을 위해 코믹한 면모를 보이다가 뒤에서는 딸을 위해 숭고하게 희생하는 감동적인 역할도 해낸다. 초중반까지는 이병헌의 연기력과 매력으로 리준평의 캐릭터가 완성되었는데 후반부에 가서는 캐릭터 생략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다시 말해 리준평의 희생에서 감동의 눈물은커녕 눈시울조차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두산]은 캐릭터 구축을 포기함으로써 오롯이 재난 영화의 정체성과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대한민국의 한계라는 주제를 2시간 8분 안에 효과적으로 담아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의 마지막 감동을 미지근하게 만들어버렸다. 분명 캐릭터 포기의 득과 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최소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즐겼으며, 어서 빨리 전시작전통제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캐릭터 구축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것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