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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나를 닮아서 정말 미안해
8  enterskorea 2019.12.23 10: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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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나를 닮아서 정말 미안해





<스틸 파이팅 잇Still fighting it>이란 노래가 있다. 가수 벤 폴즈가 자기 아들을 보면서 만들었다. ‘힘겨운 세상, 계속 싸워나가야 해.’ 전체 맥락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나와 아내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음악 프로를 보다가 눈물이 난 건 처음이다. 노래에 나온 아들이 우리에겐 딸로 들렸다.

 

아들아, 해 줄 말이 있어.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고난의 연속일 거야.

그래도 우린 계속 싸워나갈 수밖에 없단다.

 

그리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목이 나온다.

 

너는 참, 나를 많이도 닮았구나.

그래서. 미안해.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심사위원 윤종신은 목이 메는지, 한참 만에 심사평을 했다.

 

제 인생관은 이렇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기본적으로 불행한데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려고 애쓰는 거죠.”

 

그는 나를 닮아 미안해대목에서 울컥 올라왔다고 했다. 아들이 자신의 여린 감성을 닮아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갈지, 하는 걱정. 그래서 감정이입이 됐다는 거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나를 닮아 미안해소절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작은딸은 어릴 때 엄마를 닮아 명랑했다. 아빠를 닮아 노래도 잘 불렀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가자마자 신경질적인 담임을 만나 억울한 오해를 받아 심한 야단을 맞은 뒤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성정이 여려서 그런지 충격이 컸나 보다. 그때 입은 상처는 오랫동안 따라다녔고, 선생님에 대한 불신이 생긴 거 같다. 특파원이던 아빠를 따라 미국에 갔을 때는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3년 만에 돌아온 학교에서 드센 애들한테 괴롭힘을 당했다. 학교에 가는 아침마다 아이의 어둡던 표정이 기억난다.

 

아이는 노래를 듣고 부르는 걸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뮤지컬 배우나 가수를 꿈꾸며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당찬 기질이 없으면 뚫고 나가기 어려운 길이었다. 무엇보다 누구한테 또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강박감이 길을 막았다. 꿈을 일단 접고 다른 일을 하게 됐을 때도 사람과의 관계를 힘들어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선생님도, 의지할 친구도 없었던 게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지 않았을까.

 

큰딸은 방랑자 기질이 있는지, 한 가지 일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원래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어서, 연출부 생활을 해보고는 장난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그러다 영화사 일을 그만두고 스웨덴으로 떠나 디자인 공부를 하고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2년 만에 돌아와서도 방랑은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기미가 엿보인다.



 


활짝 웃던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같이 보다가, 그냥 물어봤다.

너희들, 이때로 돌아가고 싶니?”

큰 애가 정색을 했다.

아뇨.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았다. 작은 애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그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20년을 또 보내야 한다고요? 그런 표정이었다. 입시와 취업, 관계 맺기의 어려움, 정체성의 상실, 행복 찾기에 대한 자신 없음.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온 듯했다. 넘고 넘어야 했던 험한 고개. 나를 닮은 딸들에겐 더 가파른 길이었을 거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던가.

 




다시 <스틸 파이팅 잇> 노래로 돌아가 보자. 아빠는 아들에게 또 말한다.

 

20년이 지나 너와 맥주를 한잔하게 되면 말하겠지.

궂은 날도 맑은 날도 있었지만, 지나간 세월은 고통이었다고.

그래도 우린 계속 싸워나가야 해.

 

그리고 여운이 남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 너는 어느 날,

내게서 멀리 날아가 있게 될 거야.



상세내용보기
어쩌다, 우호 씨가 마주친 세상 <이우호> 저

시간여행, 2019년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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