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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변호인] - 급변하는 세상의 한가운데 서있는 우리의 태도
12  쭈니 2019.11.14 12:46:07
조회 46 댓글 0 신고

감독 : 미미 레더

주연 : 펠리시티 존스, 아미 해머

세상은 변하는데, 인식이 그대로라면...

3년 전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는 1년에 한 번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는다. 처음엔 고용노동청에서 받으라고 해서 귀찮아하며 어쩔 수없이 받았지만, 요즘은 성희롱 예방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예전에는 직원들 간의 친화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졌던 당연시되던 행동들이 사실을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여성이건, 남성이건)에겐 기분 나쁜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교육을 통해 새롭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결국 인식이 문제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인식이 그대로라면 변하는 세상과 변하지 않은 인식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성희롱 문제는 인식을 미처 바꾸지 못한 기성세대, 혹은 기득권 세대가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예전엔 이것이 문제가 안되었으니 진짜 문제는 별거 아닌 것을 문제 삼는 요즘 것들이라고...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비단 성희롱 문제뿐만이 아닐 것이다.

며칠 전 본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회사 생활에 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한 영화이다. 예전에는 회사는 남성이, 집안일은 여성이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다. 여성도 결혼 후 아기를 낳고 나서도 회사에 계속 다니려 한다. 그렇기에 육아는 무조건 여성의 몫이 아닌 남성과 여성의 공동 책임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이미 이렇게 바뀌었는데 우리 사회는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82년생 김지영]은 바로 그러한 바뀐 세상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인식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도 마찬가지이다.

남녀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절, 변호사를 꿈꾼 그녀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1956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펠리시티 존스)의 이야기이다. 루스는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여성은 집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당시엔 그녀는 상당히 별난 여성인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고환암에 걸린 남편 마틴 긴즈버그(아미 해머)의 병간호와 어린 딸의 육아를 거뜬히 책임지면서도 수석 졸업을 했을 정도로 말이다.

법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녀의 꿈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 마틴이 세법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루스를 받아주는 로펌은 없었다. 그녀가 면접을 본 로펌은 한결같이 능력은 뛰어나지만 채용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결국 그녀는 법대 교수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1970년 병든 노모를 부양하는 미혼 남성 찰스 모리츠(크리스 멀키)가 어머니 간병인 보수를 세금 공제 신청했다가 국세청에 의해 거부된 사건을 알게 된다. 당시에는 가족 보육자 자격을 여성으로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남성에 대한 성차별 사건인 셈이다. 연방 대법원에서 여성으로만 한정된 가족 보육자에 대한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하면 앞으로 수많은 재판의 판례로 인용될 것이며 남녀 모두의 차별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루스는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지금은 당연하지만 예전엔 당연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가족 보육자는 여성도, 남성도 될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5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아닌 남성이 가족을 보육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그러한 사례가 없기에 법조차 가족 보육자는 여성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사실 승소를 한다고 해도 찰스 모리츠가 공제받을 수 있는 세금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 바뀐 세상을 법원이 인정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법원이 인정한다면 법이 바뀔 것이고, 법이 바뀐다면 인식 또한 서서히 바뀔 것이다. 이 사건은 세상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당시는 여성이 군용 수송기에 타는 것은 불법이었고, 탄광에서 일해도 불법이다. 남성으로 이루어진 법관들은 그것을 두고 여성을 위해서라고 한다. 위험한 군인, 광부 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다. 결코 우대가 아닌 차별인 셈이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온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찰스 모리츠 대 국세청장' 사건을 승소로 이끄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천천히 보여준다. 이미 재판의 결과도 알고 있고, 긴장감을 고조시킬 악역이 없기에 영화 자체는 꽤 잔잔한 편이다. 그래도 50년 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벌인 세기의 재판 덕분에 수많은 성차별 법안이 폐기되었다는 마지막 자막을 읽으면 잔잔한 감동이 밀려 오기도 한다.

우리는 바뀌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급격하게 변하기도 한다. 최근 아내는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아무리 세대 차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생각을 가진 90년대생과 함께 원활하게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책까지 읽으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셈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욕구가 상승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내 또래의 여성들은 결혼 전까지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극소수만이 결혼 후 회사에 남았었다. 그렇기에 회사에서도 여직원은 결혼하면 그만둘 직원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중요한(골치 아픈) 업무는 물론 야근에서도 배제시키곤 했다. 막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그때 나는 그것이 여성 우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여직원을 '그만둘 직원'이라는 틀안에 가둬놓는 차별이었다.

나와는 생각이 완전히 다른, 그래서 책까지 읽으며 배워야 하는 90년대생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고, 다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사회 참여 욕구도 강하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서 남녀의 역할을 법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미국의 가정은 무너진다며 난리를 쳤던 그들처럼 우리의 모습도 먼 훗날 우스갯거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바뀐 세상에 적응은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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