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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는 영화의 주제가 좋았다.
12  쭈니 2019.11.12 16:37:47
조회 45 댓글 0 신고

감독 : 신카이 마코토

더빙 : 다이고 코타로, 모리 나나, 오구리 슌

그렇게도 억울했단 말인가?

지난주 [날씨의 아이]의 배급사와 마케팅사가 공식 입장을 내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날씨의 아이] 측은 반일 감정 때문에 [날씨의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편견을 거둬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사실 이해가 되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반일 감정은 예전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거센 것이어서 일본 애니메이션인 [날씨의 아이]가 그로 인한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인 [너의 이름은.]이 국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누적관객 367만을 동원하는 흥행 대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만 해도 [언어의 정원]과 [별을 쫓는 아이]가 5만 명, [초속 5센티미터]가 불과 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흥행 감독은 아니었다. 현재 [날씨의 아이]의 흥행 성적은 53만 명으로 [너의 이름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이긴 하지만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적과 비교한다면 결코 부진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날씨의 아이] 측은 이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반일 감정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만큼 영화의 흥행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사실 2007년 6월 혼자 [초속 5센티미터]를 본 후 여운이 짙게 남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이 된 나로서는 [날씨의 아이]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그런데 [날씨의 아이] 측의 하소연을 보고 나니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얼마나 영화의 재미에 자신감이 있길래 50만 명이 넘는 흥행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억울하다며 하소연을 한단 말인가? 건강검진 위내시경 때문에 연차 휴가를 낸 지난 월요일, 내시경을 끝내자마자 나는 [날씨의 아이]를 상영하고 있는 극장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과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답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는 특징이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현실의 풍경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옮겼으면서도 그러한 현실의 풍경마저도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하는 그림체이다. [날씨의 아이]는 과연 그러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 영화이다. 영화는 도쿄로 가출을 감행한 호다카(다이고 코타로)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고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무작정 집을 나온 호다카에게 도쿄는 그야말로 무서운 곳이다. 하지만 영화 속 도쿄의 풍경은 무섭기보다는 아름답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풍경조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두 번째 특징은 판타지적 소재이다. [너의 이름은.]은 보디 체인지를 소재로 시작되어 3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만남과 3년 전의 비극을 되돌리려는 두 주인공의 필사의 노력 등이 아름다운 그림체와 음악과 어우러져서 국내 영화팬을 열광하게 했다. [날씨의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1년 365일 비가 내리는 도쿄에 비를 걷히고 하늘을 맑게 해주는 맑음 소녀 히나(모리 나나)가 나타난다. 날씨를 맑게 하는 능력을 갖춘 소녀라고? 당연히 현실에선 불가능한 판타지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단순한 판타지에 그치지 않는다. [날씨의 아이]는 영화의 후반 히나의 희생을 그리고 있으며 히나를 구하기 위한 호다카의 필사의 노력이 담겨 있다. 상당히 [너의 이름은.]과 비슷한 느낌의 영화이다.

솔직하게 [날씨의 아이]와 [너의 이름은.]을 비교하자면 내 개인적으로는 [너의 이름은.]이 훨씬 재미있었다. [너의 이름은.]은 보디 체인지, 3년의 시간을 넘은 만남, 그리고 혜성 충돌이라는 이토모리 마을에 불어닥친 비극적 사건들이 꼼꼼하게 채워져 있다. 그에 반해 [날씨의 아이]는 가출 소년 호다카와 맑음 소녀 히나의 단순한 이야기가 펼쳐질 뿐이다. 내용이 단순해진 만큼 영화에 대한 긴장감도 [날씨의 아이]가 훨씬 덜하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영화적 재미와는 별도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의 주제이다.

이상 기온의 도쿄를 구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소녀

근현대사 속 광기의 역사는 전체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주의는 개인보다는 사회 집단, 국가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주의로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억울한 희생은 당연시되었다. 그러한 전체주의는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하에서는 공산주의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제는 개인의 인권이 중요시되며 전체주의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포함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이 아닌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심으로 전체주의의 잔재를 휘두르기도 한다.

이상 기온으로 도쿄는 1년 365일 비가 내린다. 급기야 한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이상 저온 현상도 나타난다. 이대로 간다면 도쿄는 물에 잠겨 버릴 것이다. 이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 하늘과 땅을 연결할 수 있는 날씨의 무녀가 인간 제물이 되어 하늘에 바쳐져야 한다. 어린 딸이 천식에 걸려서 비가 오는 날이면 밖에서 딸과 만날 수 없었던 스가(오구리 슌)조차도 누군가 한 명이 희생되어 도쿄의 하늘이 맑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희생되어야 할 한 명은 바로 맑음 소녀 히나이다.

영화에서 호다카와 히나가 맑음 소녀 의뢰 홈페이지를 만들어 돈을 버는 장면에서 히나는 날씨 하나로 사람들이 저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대단하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히나가 날씨를 맑게 하면 할수록 히나의 몸은 점점 물처럼 투명해진다. 그리고 히나가 호다카와의 도피 생활 도중 인간 제물이 되어 하늘에 바쳐지자 드디어 하늘을 맑게 갠다. 도쿄의 인구는 약 850만 명이라고 한다. 히나, 단 한 명의 희생 덕분에 도쿄의 850만 명이 행복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히나의 희생은 정당한 것일까?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행복은 과연 오래갈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전 세계 신화 속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잠시 동안 막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제물을 갖다 바치는 미궁 속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이야기가 꽤 많다. 사람들은 제물로 끌려간 희생자 덕분에 당분간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제물로 지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지 않을까?

[날씨의 아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당장 도쿄 하늘을 맑아졌지만 언젠가 또다시 이상 기온 현상으로 비가 내린다면 그때에도 날씨의 무녀가 희생되기만을 기다려야만 할까? 히나를 구함으로써 3년 후 도쿄는 물에 잠긴다. 호다카는 3년 전 맑음 소녀 의뢰 홈페이지에서 만난 할머니를 만난다. 그녀는 살던 집이 물에 잠겨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러한 할머니에게 호다카는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오히려 호다카를 위로하며 지금의 도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당장 도쿄가 물에 잠긴다면 크나큰 재앙처럼 느껴지지만 사람들은 또 그것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 희생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희생은 숭고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희생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끌려간 어린 제물들처럼 그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것은 그저 잠시 동안의 편안함뿐이다. 한때 군국주의 열풍 속에 전체주의를 부르짖던 일본에서 그러한 개인 희생의 부질없음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나오다니 참으로 새롭다.

나는 이 영화가 좋다.

[초속 5센티미터]를 봤을 때 나는 영화의 아련한 감정에 취해서 하루 종일 거리를 거닐 때 혼자 청승을 떨었었다. [너의 이름은.]을 봤을 땐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TV로 여러 번 반복해서 재관람을 했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에는 [초속 5센티미터]의 아련함도, [너의 이름은.]의 재미도 없다. 솔직히 영화의 내용은 밋밋하고, 결말은 너무 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만약 히나의 희생으로 영화가 끝났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초속 5센티미터]처럼 아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나는 그러한 희생에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히나는 그저 죽은 엄마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에게 엄마 노릇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10대 소녀일 뿐이다. 맑음 소녀는 그녀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따라서 맑음 소녀에게 주어지는 의무와도 같은 희생을 그녀가 알리도 없다. 그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그저 전체주의에 입각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그런 영화가 아무리 숭고한 희생을 앞세우고 희생에 따른 아련함을 강조한다고 해도 내가 영화에 감동을 받을 리가 없다.

그와는 달리 [날씨의 아이]는 희생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물에 잠긴 도쿄의 재앙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재앙 앞에 사람들은 오히려 무덤덤하게 삶을 이어나갈 뿐이다. 그러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한 신선한 충격이 있었기에 [날씨의 아이]를 본 이후 [날씨의 아이] 측 관계자가 억울하다고 하소연할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이름은.]보다 재미있는 영화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좋은 영화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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