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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요아킴 뢰닝

주연 : 안젤리나 졸리, 엘르 패닝, 미셸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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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게 우선순위가 밀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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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내 모든 신경은 온통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 맞춰져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부터 오로지 두산 베어스만 응원했던 나로서는 두산의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감격했고, 2년 연속 준우승에 불안해야 했다. 키움과의 한국시리즈 경기가 있는 날엔 긴장감에 저녁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민감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두산이 키움에 4연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며 내게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두산을 열렬히 응원하면서도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이어지길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내년 3월까지는 더 이상 프로야구를 즐길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두산 우승에 대한 확실한 보증만 있다면 7차전까지 최대한으로 즐기고 싶었다. 물론 그딴 보증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에 4연승 우승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시리즈 4차전이 벌어진 지난 토요일은 온 가족이 [말레피센트 2]를 보기로 한 날이다. 한국시리즈 4차전이 낮 2시 경기이기에 [말레피센트 2]를 저녁 6시 50분 타임으로 예매했다. 4시간 50분이면 경기는 분명 끝났을 것이고, 여유롭게 저녁식사 후 영화를 보러 가면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4차전은 난타전에 연장전까지 벌어지며 7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고, 결국 [말레피센트 2] 예매 취소 후 밤 9시 20분으로 다시 예매해야 했다. 그로 인하여 아내는 피곤하다며 영화 관람을 포기했고, 아들도 야구 때문에 영화를 늦게 보러 간다며 투덜거렸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 순간 내게 1순위는 영화가 아닌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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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프로야구가 끝났다는 허탈감을 메꿔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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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들과 [말레피센트 2]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지만 내 눈은 두산 베어스 통합 우승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에 모아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풀려버렸을 때의 허탈감. 나는 그날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내 허탈감을 메꿔줄 수 있는 것은 영화뿐이다. 매년 봄에 개막해서 가을에 막을 내리는 프로야구와는 달리 영화는 1년 365일 내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재미있는 영화만이 내 마음을 달랠 수가 있으리라.

하지만 [말레피센트 2]는 내 허탈감을 메꿔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영화였다. 2014년 6월에 봤던 [말레피센트]가 재미있었기에 별 고민 없이 [말레피센트 2]를 선택했건만 영화의 만듦새 자체가 기대 이하였다. 특히 동화 비틀기를 시도했던 [말레피센트]와는 달리 판타지 영화로의 세계관 확장을 시도한 [말레피센트 2]는 마치 2편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덕지덕지 갖다 붙인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캐릭터는 개연성이 없었고, 갑툭튀한 다크페이 종족도 어이없었다.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가 고대 피닉스였다는 설정은 너무 오버한 느낌이었고, 마지막 인간과 요정이 서로 화합하는 장면에서는 '이게 뭐야.'라며 욕이라도 한 아름 던져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같이 영화를 본 아들도 내게 "재미있었어요?"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아들은 집에 와서 영화를 못 본 엄마한테 [말레피센트 2]의 아쉬운 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는데, 내가 느낀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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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선과 악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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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스테판(샬토 코플리)에게 배신당하고 두 날개를 잃은 '말레피센트'는 복수를 위해 갓 태어난 스테판의 딸 오로라에게 저주를 걸었다. 하지만 요정의 손에서 너무나도 티 없이 자라는 오로라(엘르 패닝)를 보며 자신의 저주를 후회하게 되었고,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으로 오로라의 저주를 풀어준다. [말레피센트]가 내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동안 못된 마녀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동화 속 '말레피센트'의 사정을 세세하게 잡아내며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악당의 사연, 이것이 [말레피센트]의 본성이었다.

그렇다면 [말레피센트 2]는 어떠한가? 일단 더 이상 '말레피센트'는 악당이 아니다. 오로라에게 무어스 숲의 여왕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무어스 숲의 수호자로써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말레피센트'를 그 누가 악당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말레피센트'의 사랑을 배신한 진정한 악당 스테판은 이미 죽음을 맞이했다. 새로운 악당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악당의 사연은 [말레피센트 2]의 재미가 될 것이다.

[말레피센트 2]가 선택한 새로운 악당은 얼스테드 왕국의 잉그리스(미셸 파이퍼) 왕비이다. 그녀는 [말레피센트]에서 오로라가 첫눈에 반한 필립(1편은 브렌튼 스웨이츠였는데, 2편에서는 해리스 딕킨슨으로 배우가 교체되었다.)의 어머니인데, 필립은 오로라에게 청혼을 했고, 오로라가 그 청혼을 받아들였으니 결국 오로라의 시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주인공의 시어머니, 악당으로 아주 딱 알맞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말레피센트 2]는 잉그리스 왕비를 그저 단순한 전쟁광 악당으로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말레피센트 2]의 선과 악의 구조는 1편과는 달리 굉장히 단순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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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진 영화를 복잡하게 보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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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잉그리스 왕비에게도 사연은 있다. 하지만 그 사연이라는 것이 도무지 공감되지 않는다. [말레피센트]에서는 권력욕에 눈이 먼 스테판, 사랑에 배신당한 '말레피센트'가 충분히 공감되었지만 잉그리스 왕비가 털어놓은 사연은 그저 전쟁광에 불과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억지스러운 변명처럼 보이기만 했다. 이렇게 영화의 한 축인 악당의 사연이 단순해지니 영화 역시 단순해진다. 오로라의 저주도 풀어야 하고, 광기에 휩싸인 스테판도 무찔러야 했던 [말레피센트]와는 달리 [말레피센트 2]에서는 그저 잉그리스 왕비만 무찌르면 된다.

그러한 상황을 [말레피센트 2]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영화를 조금이라도 복잡하게 만들고 싶었는지 뜬금없이 '말레피센트'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코널(치웨텔 에지오프)을 등장시켜 위기에 빠진 '말레피센트'를 구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인간을 피해 숨어살던 다수의 다크페이 종족을 등장시킨다. 더 웃긴 것은 '말레피센트'가 다크페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 피닉스의 직계 후손이라는 설정이다. 이쯤 되면 [말레피센트 2]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는 동화에서 파생된 영화가 아닌 그냥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한 판타지 영화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제 [말레피센트 2]는 잉그리스 여왕이 이끄는 얼스테드 왕국의 군대와 각성한 '말레피센트'가 이끄는 다크페이 종족 간의 전쟁이 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을 맘껏 자랑하기도 한다. 이후 흑화된 '말레피센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로라에 의해 다시 예전의 사랑을 되찾는 모습까지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영화의 후반 하이라이트에 쏟아 낸다. 다크페이 종족을 등장시켜 영화의 전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 복잡한 전개를 차근차근 풀어낼 능력은 부족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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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이따위로 끝냈어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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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무어스 숲의 요정, 다크페이와 얼스테드 왕국의 전쟁은 잉그리스 왕비의 탓이 크다. 얼스테드 왕은 무어스 숲과의 화합을 주장했고, 필립 왕자는 무어스 숲의 여왕 오로라의 깊은 사랑에 빠졌으니, 잉그리스 왕비만 사라진다면 두 왕국은 다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미 '말레피센트'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고, 다크페이 종족은 인간에 대한 미움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

실제로 잉그리스 왕비는 무어스 숲에서 가져온 무덤 꽃으로 요정과 다크페이를 몰살시킬 막강한 무기를 만들었고, 수많은 요정과 다크페이들이 그로 인하여 소멸되었다. 오로라를 키운 세 요정 중 하나도 잉그리스 왕비에 의해 소멸되었을 정도이다. 아무리 영화라고 할지라도 두려움, 분노, 미움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잉그리스 왕비가 염소로 바뀌었다고 해서 방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들이 갑자기 화합을 하자며 웃고 떠들 수는 없단 말이다. 그런데 [말레피센트 2]에서는 그런다. '말레피센트'가 잉그리스 왕비를 염소로 만들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태연하게 필립과 오로라는 결혼식을 올리고 인간, 요정, 다크페이는 한데 뭉쳐 웃고 떠든다.

[말레피센트]에서는 '말레피센트'와 스테판, 그리고 오로라의 감정 변화를 세세하게 잡아냈었는데, [말레피센트 2]에서는 억지로 세계관 넓히는 데에만 급급할 뿐, 캐릭터 구축, 캐릭터의 감정 변화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잡아내는 것이 없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라면 그럴 수 있다.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말레피센트 2]는 동화에서 벗어나 판타지를 표방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끝내면 안 된다. 이럴 거면 차라리 속 편은 왜 만들었는지... 아쉬움만 가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