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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집] - 학창 시절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놀라움을 다시 한번 경험하다.
13  쭈니 2019.10.25 11:30:53
조회 138 댓글 0 신고

감독 : 질스 파겟 브레너

주연 : 맥스 아이언스, 스테파니 마티니, 글렌 클로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최고 반전을 딱 세 편만 고르라고 한다면...

학창 시절 나는 추리 소설에 흠뻑 빠져 있었다. 어머니가 사주신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은 내게 보물 1호였고, 용돈이 생기면 집 근처 서점에 가서 값싼 추리 소설을 사곤 했었다. 당시 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쫓아 아서 코난 도일의 '명탐정 코난 시리즈'라던가,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 시리즈'를 가장 좋아했지만, 그래도 역시 나를 가장 놀랍게 했던 것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언제나 내게 깜짝 반전을 안겨줘서 추리 소설의 진가를 새삼 느끼게 했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중에서 시간이 지나도록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은 반전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세 편을 선택할 것이다. 용의자 모두가 범인이었던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이미 살해된 자가 범인이었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단연 최고였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내가 최고의 반전으로 꼽는 또 한 편의 추리 소설은 바로 <비뚤어진 집>이다.

사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최근에 영화로 리메이크되었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드라마로 워낙 많이 만들어져 익숙하지만 <비뚤어진 집>은 사실 낯설다. 솔직히 나 역시 [비뚤어진 집]을 보면서 '아! 이 영화가 바로 그 반전을 소재로 한 영화였어?'라고 깜짝 놀랐을 정도이다.

대부호의 죽음, 그리고 이상한 집에 초대된 탐정

[비뚤어진 집]은 대부호 애리스티드 레오니디스의 부고 소식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애리스티드의 손녀딸인 소피아(스테파니 마티니)는 할아버지가 단순 심장마비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믿고 은밀히 옛 연인이었던 탐정 찰스 헤이워드(맥스 아이언스)에게 찾아가 사건을 의뢰한다. 자신을 매몰차게 차버리고 떠난 소피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찰스는 당황하지만 살인자가 아직 집에 있는 것 같다며 두렵다는 소피아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레오니디스 저택에 도착한 찰스는 영화의 제목처럼 비뚤어진 가족 구성원의 행동에 당황한다. 애리스티드의 죽은 전처의 동생 이디스(글렌 클로즈)를 비롯하여 아버지에게 영화 제작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장남 필립(줄리안 샌즈)과 마그다(질리언 앤더슨) 부부, 아버지의 사업을 운영하지만 부도 직전에 몰린 차남 로저(크리스티안 맥케이)와 클레멘시(아만다 에빙턴) 부부, 그리고 애리스티드의 두 번째 부인인 젊은 미망인 브렌다(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 브렌다와 불륜에 빠진 가정교사 브라운(존 헤퍼난), 필립의 자녀인 소피아, 유스터스(프레스턴 네이만), 조세핀(아너 니프시)와 유모(제니 겔로웨이)까지... 찰스의 눈엔 그들 모두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물론 이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브렌다와 브라운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추리 소설광이며 찰스를 왓슨, 자신을 홈즈라고 칭하는 당돌한 꼬마 조세핀이 지적하듯 범인으로 보이는 자가 진짜 범인일 리가 없다. 모든 추리 소설이 그렇다. 그렇다면 과연 엄청난 유산을 노리고 애리스티드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관찰자 조세핀에게 모든 단서가 있다.

솔직히 [비뚤어진 집]에는 용의자가 너무 많다. 찰스가 그들 하나하나를 심문하고 용의자를 줄여 나가기엔 시간도 촉박하고 호의적이지 않은 그들의 태도에 걸림돌이 너무 많다. 게다가 단서도 부족하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이며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조세핀은 집안 구석구석을 훔쳐보고 일기장에 기록하는 버릇이 있다.

조세핀은 찰스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밝히지만, 찰스는 그저 어린 꼬마 여자아이의 장난으로 웃어넘긴다. 하지만 조세핀의 일기장이 사라지고, 누군가 조세핀을 죽이려 시도했으며, 조세핀의 일기장을 가져간 유력한 용의자인 유모가 두 번째 희생자가 되자 찰스는 조세핀이 사건 해결의 열쇠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땐 이미 때가 늦어 버렸다.

[비뚤어진 집]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는 이디스와 소피아이다. 영화는 영특하게도 이 두 캐릭터를 번갈아가며 유력한 용의자가 만든다. 특히 소피아가 애리스티드의 거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것으로 드러나는 장면에서 찰스는 혼란에 빠진다. 혹시 소피아는 자신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할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할아버지를 독살하고 브렌다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운 것은 아닐까? 이 모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조세핀의 일기장이 필요하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진실들... (이후는 스포 덩어리임)

내가 <비뚤어진 집>을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중 최고의 반전으로 꼽는 이유가 있다. 사건 시작부터 나는 애리스티드 레오니디스의 죽음이 상속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어마어마한 대부호이고, 그리한 부호의 죽음엔 언제나 돈이 관련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너무 많은 용의자가 제시되자 편의상 절대 용의자가 아닌 인물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특히 범인에게 희생된 유모와 범인에게 타깃이 된 조세핀은 절대 범인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조세핀은 잔혹한 살인마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지 않은가. 게다가 그녀는 애리스티드의 상속과는 별 상관이 없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바로 그러한 독자의 선입견을 꿰뚫어봤고, 허를 찔렀다. 왜 대부호의 살인사건은 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왜 어린 여자아이는 살인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이 도발적인 질문은 <비뚤어진 집>에서 그대로 반전에 이용된다. 조세핀이 범인이다. 조세핀은 할아버지가 발레를 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를 죽였고, 유모가 자신을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유모도 죽였다. 정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뚤어진 집'에서 자란 조세핀에겐 애초에 일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도덕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 어린아이이기에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저지른 끔찍한 살인. 그것이 내가 이 소설을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중 최고의 반전으로 꼽는 이유이다.

학창 시절 느꼈던 놀라움을 다시 한번 경험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화 [비뚤어진 집]이 잘 만든 영화라는 느낌은 없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기엔 영화 자체는 어수선하고,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 동안 캐릭터 설명, 찰스의 추리, 마지막 반전까지 모두 담아내려니 뭔가 대충 넘어간 느낌이다. 찰스가 조세핀의 일기장 위치를 알아내는 장면도 어이없다.

그래도 조세핀을 너무 사랑했기에 마지막 순간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조세핀과 함께 자살을 선택하는 이디스의 마지막 선택은 마음이 짠했다. 과연 그것이 조세핀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내내 극장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글렌 클로즈의 연기에 더해진 이디스의 마지막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비뚤어진 집]이 내게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최고 반전 소설을 다시 소환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린 여자아이를 범인으로 설정한 그 충격적인 반전의 소설이 원작임을 몰랐던 나는 영화가 끝난 후 학창 시절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놀라움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비뚤어진 집]은 내게 꽤 만족스러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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