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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뤽 베송

주연 : 사샤 루스, 킬리언 머피, 루크 에반스, 헬렌 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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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액션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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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에 극장에서 [퍼펙트맨]을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전이 지나지 않았다.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더 볼까 고민도 했지만 [제미니맨]은 일요일 아들과 함께 보기로 했고, [판소리 복서]는 상영하는 곳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하는 수없이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 oksusu를 실행시켰다.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으면 이렇게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져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조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졸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자극적인 영화가 필요하다. 그때 내 눈에 확 띈 것이 뤽 베송 감독의 액션 영화 [안나]이다.

[안나]는 파리의 톱모델로 위장한 KGB 킬러 '안나'(사샤 루스)의 활약담이다. 그녀는 5년만 활동하면 자유를 주겠다는 말만 믿고 상부의 지령에 따라 수십 명의 사람들을 암살하지만 결국 CIA에 꼬리 밟힘으로써 살기 위해 이중첩자 노릇을 해야만 한다. 여전사 발굴에 능한 뤽 베송 감독이 선택한 사샤 루스의 매력적인 연기와 킬리언 머피, 루크 에반스, 헬렌 미렌 등 연기파 배우들이 전면에 포진되어 있어서 최소한 영화를 보다가 조는 불상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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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의미를 부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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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시작은 냉전시대가 한창이던 1985년이다. 소련에서 활동하던 CIA 비밀 요원들의 정체가 발각되고, 그들이 모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5년 후 시장에서 마트료시카 인형을 파는 '안나'는 파리 모델로 스카우트된다. 하지만 '안나'의 정체는 KGB 암살 요원. 다시 영화는 3년 전 KGB 고위 간부인 알렉스(루크 에반스)에 의해 KGB 암살 요원으로 발탁되는 '안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나]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특징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던 냉전시대는 스파이 액션 영화를 위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의 해체가 가속화되며 냉전 체제는 막을 내린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고, 스파이 액션 영화는 911 테러를 기점으로 테러와의 전쟁으로 소재를 옮겼다. 그런데 [안나]는 이 케케묵은 냉전시대라는 배경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시작은 1985년이지만 영화의 본격적인 내용은 1990년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1990년은 냉전체제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결국 뤽 베송 감독은 '안나'의 KGB 국장 암살이 냉전 체제를 무너뜨린 원인 중 하나라는 은밀한 암시를 준다.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에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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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플래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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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두 번째 특징은 영화가 시간적 흐름으로 편집되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플래시백으로 뒤엉켜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작은 1985년 KGB에 의해 소련에서 활동 중인 CIA 요원이 몰살되는 장면이고, 곧이어 5년 후 시장에서 파리 모델로 스카우트되는 '안나'를 보여준 후,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가 알렉스에게 KGB 요원으로 발탁되는 '안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두 시간 내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은 '안나'가 처한 복잡한 처지에 기인한다. '안나'가 KGB 요원이 된 것은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시궁창 같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5년만 고생하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말에 그녀는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KGB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시궁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KGB가 되었지만 KGB는 그녀에게 또 다른 시궁창일 뿐이다.

그때 CIA 요원 레너드(킬리언 머피)가 은밀하게 접근한다. 5년 전 사건으로 소련 내 요원을 모두 잃은 레너드는 '안나'에게 임무를 마치면 하와이에서 보호를 받으며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안나'는 이미 알고 있다. CIA 역시 또 다른 시궁창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안나'는 영원히 시궁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KGB와 CIA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사정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다소 거칠지만 배신과 반전이 난무하는 이 영화에서는 꽤 필요한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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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뤽 베송이 원하는 것은 까도 까도 새로운 반전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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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굉장히 고전적인 스파이 액션을 구축한 뤽 베송 감독은 잦은 반전을 플래시백으로 표현하며 마치 인형 속에 인형이 있는 마트료시카처럼, 까도 까도 새로운 반전이 튀어나오는 영화로 만들어 낸다. 문제는 처음엔 새로웠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적응이 된다는 점이다.

처음 마트료시카를 보면 신기할 것이다. 인형을 열면 그 안에 작은 인형이 나오고, 그 인형 안에는 더 작은 인형이 계속해서 튀어나올 테니까. 하지만 몇 번 인형을 열다 보면 이 인형 안에도 작은 인형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고, 더 이상 신기하지가 않다. [안나]가 딱 그렇다.

처음 플래시백을 통해 반전을 설명하는 방식이 새로웠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이 2시간 내내 지속되니 나중에는 또 다른 반전이 있을 거야.라며 의심스러운 눈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되고, 결국 가장 중요한 영화 마지막 반전에선 시큰둥하게 된다. KGB, CIA 고위 간부는 물론 '안나'의 암살 대상자들 모두 '안나'의 매력에 속는다는 설정도 조금 과해 보였다. 결국 2시간 동안 졸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마치 싸구려 마트료시카 인형을 선물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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