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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용수

주연 : 설경구,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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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시간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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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니 오전 8시 30분 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늦잠의 유혹이 밀려온다. 일주일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달렸으니 토요일 오전만큼은 침대에 누워 지겨울 때까지 자고 싶다. 하지만 말이다. 잠이라는 것은 너무 과하면 오히려 컨디션 저하를 불러온다. 지난 몇 주간 몸소 체험한 사실이다. 아무리 자도 몸이 가벼워지긴커녕 오히려 더 무거워지더라. 그래서 늦잠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아내는 함께 소파에 몸을 맡기고 TV나 보자고 유혹한다. 토요일 오전 TV에는 예능, 드라마 재방송이 전부이지만 TV에서 무엇이 방영되던 상관없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TV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다가 꾸벅꾸벅 졸면 된다. 하지만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휴식인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쉬고 있지만 쉬는 것이 아닌, 머리는 멍해지고, 눈은 침침해지고, 몸은 뻐근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시간 죽이기이다.

결국 나는 침대의 유혹도, 아내의 유혹도 뿌리치고 혼자 극장으로 향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는 없다. 그저 아무 할 일이 없는 토요일 오전을 유쾌하게 웃으며 보낼 수 있으면 만족이다. 최소한 엔도르핀이라도 생성한다면 의미 있는 시간 죽이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코미디 영화 중에서 볼만한 영화를 골랐다. 그랬더니 툭하고 튀어나온 영화가 [퍼펙트맨]이다. 솔직히 굳이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일단 장르가 코미디이니 어느 정도의 웃음을 내게 안겨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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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 1%의 우정]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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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전날인 10월 2일에 개봉한 [가장 보통의 연애]와 [조커]는 일찌감치 봤으면서도 [퍼펙트맨]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 영화가 [언터처블 : 1%의 우정] 리메이크인 줄 알았다. [언터처블 : 1%의 우정]은 2012년에 국내 개봉한 프랑스 코미디 영화이다. 사고로 전신불구가 된 상위 1%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와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신체가 전부인 하위 1% 무일푼 백수 드리스(오마 사이)의 아주 특별한 우정을 다룬 영화이다.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이지만 국내에서만 172만 관객을 동원한 깜짝 흥행작이기도 하다.

문제는 [언터처블 : 1%의 우정]의 미국 리메이크인 [업사이드]를 최근에 봤다는 점이다. 브라이언 크랜스톤과 케빈 하트가 주연을 맡은 [업사이드]는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미국에 맞게 아주 살짝 변형한 영화로 북미에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며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이렇게 [언터처블 : 1%의 우정]에 이어 [업사이드]까지 보고 나니 [퍼펙트맨]에 그다지 큰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내용을 모두 아는데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볼 필요가 없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본 [퍼펙트맨]은 [언터처블 : 1%의 우정]의 리메이크가 아니었다. 물론 설정은 비슷하다.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로펌 대표 장수(설경구)와 한탕만을 꿈꾸는 3류 건달 영기(조진웅)의 우정을 다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장수는 [언터처블 : 1%의 우정]의 필립과는 달리 2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장수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영기를 통해 이루고, 대신 영기는 장수의 사망 보험금 12억을 받기로 한다. 이 결정적인 차이는 [퍼펙트맨]의 영화적 재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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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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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맨]이 [언터처블 : 1%의 우정]과 또 다른 것은 장수와 영기의 사연이다. [언터처블 : 1%의 우정]에서 필립은 그저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백만장자였고, 드리스는 그저 돈이 필요한 무일푼 백수일뿐이었다. 그와는 달리 장수와 영기에겐 그들만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두 캐릭터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영기는 그저 한탕이라는 헛바람만 든 건달이 아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온 영기는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는 건달이 된다. 특히 그에겐 자신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할 수험생 동생인 정기(김민석)가 있다. 어떻게든 동생만큼은 번듯하게 살게 하기 위해 영기는 한탕을 꿈꾸고, 결코 해서는 안 될 조직 보스 범도(허준호)의 돈 7억을 날리는 상황에 처한다. 7억을 메꿔 놓지 않으면 죽은 목숨과도 같다. 그렇기에 영기에게 있어서 장수의 사망 보험금 12억은 유일한 희망이다.

장수 역시 그저 우연한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승소율 100%를 자랑하는 유명 변호사로 돈을 위해서라면 악질범을 변호해서 무죄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장수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는다. 그가 죽기 전에 하려 했던 일들은 아내와 딸에 대한 속죄와 그를 이렇게 만든 자에 대한 용서이다. 그렇기에 그가 죽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은 그저 관객을 웃기기 위한 것들이 아닌, 속죄와 용서를 위한 감동적인 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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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감독의 영화에서 노련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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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사연을 모르고 보면 [퍼펙트맨]의 전개는 다소 뻔해 보인다. 구도 부산에서 롯데의 상대팀인 넥센을 응원하는 장수의 모습, 수영장에서 온몸에 문신을 한 건달들을 내쫓는 영기의 모습 등 예상 가능한 소소한 웃음을 주는 장면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수의 사연이 공개되면서 그러한 장면들은 더 이상 웃음을 위한 장면이 아닌, 가족에 대한 장수의 속죄와 감동으로 변환된다. 이것이 바로 사연의 힘이다.

영기의 사연은 영화 후반에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범도의 돈 7억을 날린 것이 들통난 영기는 장수의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수의 사망 보험금은 장수가 죽어야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특히 장수가 사고사로 죽으면 25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영기는 칼을 들고 장수를 찾기도 한다. 이 장면에서 영화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진다. 장수와의 우정을 선택하자니 목숨이 위태롭고, 목숨을 구하자니 장수를 죽여 돈이 필요한 상황. 이 모든 것은 영기의 사연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 가지 더 [퍼펙트맨]에 좋았던 것은 영기와 은하(김사랑)의 시답지 않은 러브 라인을 빼버린 것이다. 장수의 비서인 은하. 그러한 은하에게 호감을 보인 영기. 영화 초반 영기의 거칠지만 진솔한 모습에 은하가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이 나오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랬다면 영화가 산으로 갔을 것이다. 다행히 용수 감독은 신인답지 않게 장수와 영기에 사연에 집중하며 그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신인 감독의 영화에서 노련함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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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코미디? 아니, 홍콩 느와르에 대한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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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맨]이 나에게 만족을 준 또 다른 요소는 바로 홍콩 느와르 영화에 대한 향수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홍콩 느와르는 1987년 국내 개봉한 [영웅본색]과 1989년에 개봉한 [첩혈쌍웅]으로 최절정에 올랐었다. [퍼펙트맨]에서 영기가 [영웅본색]의 주윤발 흉내를 내거나 [영웅본색] 주제가를 부르는 등 [영웅본색]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영기가 다리를 절뚝거리는 마지막 장면은 [영웅본색 2]에 대한 오마주이다.

솔직히 홍콩 느와르는 홍콩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뒷골목 건달들의 우정, 사랑, 그리고 비극적 최후를 비장미로 멋있게 포장한 영화인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등 우후죽순으로 개봉해서 큰 인기를 얻었던 조폭 코미디는 홍콩 느와르에 대한 우리나라 관객의 향수를 코믹하게 비튼 장르이다. 조폭 코미디는 뒷골목 건달들을 코믹하고 친근하게 묘사한다. 홍콩 느와르 속 주인공도, 조폭 코미디 속 주인공도 엄밀하게 따지면 잔혹한 범죄자인데 말이다.

[퍼펙트맨]도 조폭 코미디 장르의 범주 안에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영기는 조폭이고, 영기 조직의 이야기가 영화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느낌이 조폭 코미디보다는 홍콩 느와르에 가까웠다. 비단 영기가 주윤발 흉내를 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기와 대국(진선규)의 우정, 그리고 범도의 마지막 선택 등 그들만의 의리가 영화 후반 꽤 비장하게 그려진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초반엔 장수와 영기의 예상 못 한 케미에 웃고, 영화 중반엔 장수의 사연에 울고, 영기의 사연에 긴장감을 느꼈다가, 영화 후반엔 홍콩 느와르에 대한 향수 덕분에 추억에 젖을 수도 있다. 이만하면 [퍼펙트맨]은 영화 제목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