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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성태

주연 : 박해수, 서예지,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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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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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물리학자가 혼자 카페에 와서 커피 두 잔을 시킨다. 그리고는 커피 한 잔만 마시고 맞은편에 놓아둔 커피는 마시지 않은 채 바라만 보다가 나간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자 카페 종업원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리학자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혼자 와서 커피를 두 잔 시켜 놓고 한 잔만 마시는 것인지... 그러자 물리학자는 대답한다. '양자물리학'에 의하면 허공에 떠도는 공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때를 대비해서 항상 커피를 두 잔 시켜는 것이라고...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아들이 내게 들려준 양자물리학에 대한 농담이다.

[양자물리학]에서 이찬우(박해수)는 "양자물리학에 의하면..."을 입에 달고 산다. 허공에 떠도는 공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뀌어 자신과 함께 카피 한 잔을 마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항상 커피 두 잔을 시켜 놓는 모태솔로가 분명한 물리학자의 이야기처럼, 찬우에게 '양자물리학'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가 세상 폼 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물론 공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뀔지도 모를 수십억 분의 1이라는 가느다란 희망만큼이나 찬우가 검사, 언론인, 정치인, 재계 큰 손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희망도 희박하지만, 그래도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생각이 현실로 변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원래 [양자물리학]을 극장에서 볼 생각이 없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지 않았기에 박해수라는 배우가 낯설었고, 유흥업소의 3류 인생이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운다는 영화의 내용도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양자물리학'이라는 제목이 잠시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지만 영화가 '양자물리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알고 나서부턴 제목에 의한 호기심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권력집단이 되어 버린 검찰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누군가의 리뷰를 읽은 후 극장 상영이 끝나기 전에 챙겨 봐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니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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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가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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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은 찬우가 차를 몰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걸쭉한 트로트 한가락을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찬우. 그는 황금인맥을 자랑하는 유흥업계의 퀸 성은영(서예지)을 자신의 MCMC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양자물리학'을 거들먹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든다. 처음엔 찬우의 스카우트 제의에 시큰둥하던 은영은 찬우의 말발에 넘어간 것인지 찬우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인다.

이 영화의 흥행 여부는 찬우의 캐릭터 매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유흥업소 사장이라는 찬우의 직업은 일반 관객에겐 그다지 호감이 가는 인물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영화 속 유흥업소 사장은 화려한 불빛 아래 잘난 척 거들먹거리지만 결국은 조폭과 손을 잡고 온갖 나쁜 짓을 골라서 하는 악당 캐릭터였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의 찬우는 트로트를 걸쭉하게 부르는 첫 등장 장면으로 친근감을 부여한다. 가진 것 없고 못 배워서 무시당하던 찬우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찬우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는지 설명해준다. 그러한 찬우의 인간적인 부분은 유흥업소 사장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호감을 높여준다.

결국 '양자물리학'은 찬우가 살아가는 법이며, 지금까지 희망을 갖고 행동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앞서 커피 두 잔을 시킨 물리학자의 이야기처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물리학자가 자신이 시킨 커피 한 잔을 혼자 온 여성에게 건네주며 작업을 걸었다면 아마도 공기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빨리 애인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믿음을 실행하는 행동이다. 찬우는 자신의 불리한 여건을 딛고 스스로 노력하며 행동으로 옮겼기에 MCMC 사장이라는 꿈을 이룬 것이다. 이것이 그가 믿는 '양자물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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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마약 사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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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찬우에겐 성공만이 남았다. 그가 원하던 최고급 클럽 MCMC가 오픈했고, 업계 퀸 은영까지 영입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유명 래퍼인 프랙탈(박광선)의 마약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찬우의 작품이다. 프랙탈이 동료인 김관철(현봉식)의 업소에서 난동을 피우자 찬우가 동료의 가게에 똥을 치워준다는 심정으로 평소 친한 경찰청 범죄정보과 박기헌(김상호)에게 프랙탈의 마약 정보를 넘겨준 것이다.

기헌이 프랙탈을 마약 혐의로 체포하면 유명 연예인 마약 사건 실적을 올리는 것이니 기헌에게도 좋고, 프랙탈이라는 똥을 치웠으니 찬우에게도 좋고, 만사 오케이가 된다. 그런데 기헌이 욕심을 부린다. 프랙탈과 함께 마약을 한 동료 중에는 정치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명동 사채업계의 대부 백영감(변희봉)의 막내아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기헌은 백영감은 물론 백영감에게 스폰을 받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엮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프랙탈의 단순한 마약 사건이 정치계까지 연루된 거대한 스캔들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변수가 발생한다. 은영이 찬우를 배신하고 이 정보를 검찰인 양윤식(이창훈)에게 넘긴 것이다. MCMC의 투자자이자 기헌이 손을 잡은 강남 사채업자인 정갑택(김응수)에게 원한이 있는 은영은 복수를 위해 모든 정보를 양검사에게 넘기고 그로 인하여 찬우는 물론 은영까지 위험에 처한다. 백영감이 막내아들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프랙탈을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찬우와 은영을 둘러싼 위험은 점점 거대해진다. 이제는 걷잡을 수가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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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정녕 기적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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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유명 연예인 마약 사건은 유명 연예인 살해 사건으로 바뀌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양검사는 물론 정갑택과 백영감까지 찬우와 은영을 노린다. 찬우와 은영이 이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언론의 힘을 빌려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지만, 거대 언론사 역시 백영감의 어마 무시한 권력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나마 찬우와 은영의 편은 기헌을 비롯한 경찰뿐이지만, 검찰에 비해 경찰의 힘은 너무나도 나약하기만 하다. 기헌은 부패 혐의로 구속되고 (이 장면에서 기헌은 결정적인 명대사를 남긴다. "이래서 너희들 같은 검사 새끼들한테는 직접 수사권을 주면 안 된다니까.") 다른 경찰들도 몸 사리기에 바쁘다.

이쯤 되면 절망적이다. 희망이 없다. 유흥업소 사장에 불과한 찬우는 검찰, 거대 언론사, 그리고 정치계까지 검은 손을 뻗친 사채업자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찬우와 은영이 이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찬우의 '양자물리학'에 대한 믿음은 공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뀌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만든다.

결정적인 장면은 찬우와 은영이 백영감에게 배신을 당하고 끌려가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찬우는 '덤프트럭이 와서 사고가 난다'라고 주문을 건다. 그리고 주문에 그치지 않고 결박된 상태에서 백영감 부하의 운전을 방해하는 몸부림으로 진짜 덤프트럭과 사고를 유발한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이 장면은 그러한 찬우의 믿음을 잘 보여준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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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동이 만들어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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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이것이 현실이라면... 솔직히 찬우와 은영이 겪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양자물리학]에서처럼 멋진 한 방을 터트리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무기는 언론을 통한 여론전 뿐이다. 하지만 거대 언론사의 사장인 최지훈(김영재)의 경우에서처럼 언론이 무조건 진실의 편이지는 않다. 영화에선 한빛일보 김국장(손종학)이라는 아군이 있었지만 백영감의 영향력에 굴복한 다른 언론들이 반격에 나선다면 찬우와 은영이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찬우와 은영은 덤프트럭 사고로 인하여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후에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는데, 그러한 반격 장면은 빠른 편집으로 대충 관객에게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반격에 성공해서 찬우와 은영은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로 급마무리한다. 아쉽지만 영화를 현실과 비교해선 안된다.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던가.

처음엔 '양자물리학'이라는 제목이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양자물리학'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뀌는 것을 기대하는 물리학자의 이야기는 현실이라면 절대로 일어날 리가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찬우는 공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직접 아름다운 여인에게 작업을 걸만한 행동력을 갖추었다. 그렇기에 그의 '양자물리학'은 생각을 현실로 바꾼 것이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해도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이상 일어날 수도 있다. [양자물리학]은 그 희박한 가능성을 그린 영화이며, 그 덕분에 속 후련한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