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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대니 보일

주연 : 히메쉬 파텔, 릴리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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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의 위력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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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새삼 느낀 것이 있다.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는 것과 음악과 영화가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팝송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하기에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가수의 노래는 분명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다르다. 친절하게 노래의 가사가 자막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그동안 미처 몰랐던 팝송 명곡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가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정확히 그러했다.

지난 6월 개봉한 [로켓맨]을 극장에서 놓친 것 또한 두고두고 후회가 남는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는 팝송을 좋아하지 않던 젊은 시절의 내가 우연히 듣고 반해버린 퀸의 명곡 'Bohemian Rhapsody'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를 극장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로켓맨]의 소재인 엘튼 존은 내게는 이름만 들었을 뿐,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전혀 모르는 해외 가수일 뿐이다. 당연히 내 관심도는 낮았다. 그러나 뒤늦게 [로켓맨]을 보고 나서 감동에 몸서리쳤고, 한동안 엘튼 존의 노래를 들으며 영화의 감동을 유지했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로켓맨]의 학습 효과 때문이리라. 비틀즈의 노래를 소재로 한 [예스터데이]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이 영화만큼은 꼭 극장에서 챙겨보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국내 영화관 중에서 가장 음향 시설이 잘되어 있다는 메가박스 MX관에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예스터데이]를 보고 나니 [보헤미안 랩소디], [로켓맨]과는 결이 다른 영화였다. 음악 영화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고 오히려 멜로 영화에 가까웠다. 그래도 영화 후반부 잭 말릭(히메쉬 파텔)의 피어 호텔 옥상 콘서트 장면에서 메가박스 MX관의 위력을 맘껏 체감했으니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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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 혼자만 비틀즈를 기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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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상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내가 했던 수많은 공상 중에서 음치들만 사는 세상에 대한 공상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심각한 음치인데다가 제대로 된 음악조차 존재하지 않는 세상, 그곳에서 나는 내가 아는 수많은 히트곡(대부분 대중가요)을 부르며 천재 싱어송라이터 칭호를 듣는다는 것이 내 공상의 주요 내용이다. 유치하다고? 원래 공상이라는 것이 그렇다. 유치할수록 공상의 맛은 더욱 쫄깃해진다.

그런데 그런 유치한 공상을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예스터데이]는 전 세계가 동시에 정전이 되는 사태가 발생되고, 그 순간 교통사고를 당한 무명 뮤지션 잭 말릭의 이야기이다. 다행히 앞니 두 개가 부러진 것을 제외하고는 큰 부상을 피한 잭은 자신의 생일날 친구들 앞에서 비틀즈의 명곡 'Yesterday'를 부른다. 그런데 아무도 이 명곡을 모르는 것이다. 처음엔 친구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했던 잭은 구글에서조차 비틀즈가 검색이 되지 않자 오직 자신만이 비틀즈의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내가 했던 공상과 거의 일치한다.

비틀즈가 누구인가? 아무리 팝송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비틀즈만큼은 안다.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의 멤버가 누구인지 몰라도,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비틀즈의 멤버인지는 안다. 게다가 나는 그들의 명곡 여러 곡을 부르기조차 한다. (물론 전체가 아닌 극히 일부이지만) 그런데 그러한 비틀즈의 명곡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니, 이건 뭐 말이 필요 없이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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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스타가 된 잭 말릭, 그의 남은 숙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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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비틀즈의 노래를 통해 스타로 발돋음한다. 처음엔 자신이 일하는 대형 마트에서 손님들에게 자비로 제작한 음반을 나눠주고, 그 덕분에 화제가 되어 지역 방송에 출연했다가 천재 뮤지션 에드 시런(에드 시런)의 눈에 띄어 그의 콘서트에 참가하여 노래를 부르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다 에드의 매니저인 데브라 해머(케이트 맥키넌)가 잭의 성공 가능성을 눈치채고 비틀즈의 명곡으로 가득 채워진 음반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예스터데이]는 차곡차곡 잭의 성공기를 담아낸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비틀즈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잭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잭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엘리 애플턴(릴리 제임스)마저 스타로 발돋음한 잭을 점점 멀리하게 된다. 비틀즈의 노래를 토대로 스타가 되면 만사 오케이일 줄 알았는데,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과연 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솔직히 비틀즈의 노래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의 등장과 함께 나는 [예스터데이]의 후반 내용 전개를 추측했었다. 비틀즈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잭이 비틀즈의 노래를 훔쳤다고 비난하고, 잭은 지금의 성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이라며 부인하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 팬들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엘리의 곁으로 돌아가는... 이런 평범한 내용이 전개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스터데이]는 그렇게 평범하지 않다. 그렇기에 영화 후반부, 그 누구의 압력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 잭의 용기에 나도 모르게 박수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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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가 가짜가 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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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내 꿈은 만화가였다.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꺼벙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그려서 친구들에게 보여줬고,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이 캐릭터로 만화를 그려보라고 응원해줬다. 문제는 내가 만화 스토리를 짤 능력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집에 있는 오래된 만화잡지의 내용을 표절했고, 그렇게 해서 친구들에게 공개된 만화는 대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친구 중 단 한 명이 내 작품이 표절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나를 조용히 부른 그 친구는 내게 솔직하게 고백하면 다른 친구들에겐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그 친구에게 표절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 친구가 나를 보며 짓던 그 미묘한 미소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친구는 약속을 지켰고, 다른 친구들은 내게 다음 작품도 그려보라고 응원했지만, 나는 내 스스로가 가짜가 된 느낌이어서 더 이상 만화를 그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화가에 대한 내 꿈은 좌절되었다.

잭도 당시의 내 기분과 같았으리라. 처음엔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의 열광에 죄책감을 잠시 잊기도 했지만 비틀즈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의 등장으로 그의 죄책감은 되살아난다. 특히 잭이 존 레논을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만약 존 레논이 리버풀의 친구들과 비틀즈를 결성했다면 그는 전 세계적인 팝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980년 12월 8일 밤 11시, 집 앞에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총에 맞아 40세의 나이로 사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틀즈가 사라진 세상에서 존 레논은 8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살고 있었고, 자신의 삶이 행복했노라고 회상한다.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것, 그것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랑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신 스스로에게 솔직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노인이 된 존 레논이 잭에게 알려준 행복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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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노래가 듣고 싶다면 실망스럽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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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에 대한 우리나라 관객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하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 [로켓맨]의 엘튼 존과 마찬가지로 [예스터데이]를 비틀즈에 대한 음악 영화로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예스터데이]는 결코 음악 영화가 아니다. 비틀즈의 노래가 소재이긴 하지만 그것은 잭이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위한 소품일 뿐이다.

물론 영화 후반부 애플 레코드사 옥상에서 진행된 비틀즈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본뜬 피어 호텔의 옥상 콘서트 장면은 음악 영화의 진수를 느낄 수가 있다. 이곳에서 잭은 다른 연인과 함께 있는 엘리를 향해 자신의 심정과도 같은 'Help!'를 부르는데, 메가박스 MK관의 빵빵한 사운드와 함께 절규하는 듯한 잭의 노래는 내 마음을 쿵쾅거리며 울리게 만들었다. (음악 영화는 앞으로도 메가박스 MK관에서 봐야겠다.)

피어 호텔 옥상 콘서트에서는 콘서트를 마친 잭이 수많은 관중들 앞에 진실을 이야기하고 엘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만약 내가 잭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시절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내 만화가 만화 잡지를 표절한 사실을 결국 밝히지 못했었다. 친구들의 환호가 비난으로 바뀌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잭은 해냈다.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거짓된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비틀즈의 음악을 가지고 이렇게 뻔한 멜로 영화밖에 못 만드냐고... 분명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비틀즈 노래가 곁들여진 매력적인 멜로 영화로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그것 또한 음악의 힘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