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독 : 이계벽

주연 : 차승원, 엄채영

​

​

이 코미디, 너무 뻔해 보이는데?

​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일간의 추석 연휴. 추석 대목을 맞이하여 극장가에서는 [나쁜 녀석들 : 더 무비], [타짜 : 원 아이드 잭],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일제히 개봉했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 세 편의 영화 모두 보고 싶지만 추석 명절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는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유일하다. [타짜 : 원 아이드 잭]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이고, [나쁜 녀석들 : 더 무비]는 15세 관람가이지만 거친 액션이 난무할 것 같아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부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 편의 영화 중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가장 재미없어 보인다는 점에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유일한 가족 영화인걸...

폭풍 같은 추석을 보내고 몸과 마음의 여유를 어느 정도 회복한 토요일 오전, 우리 가족은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솔직히 극장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나는 불안했다. 8월 29일 [유열의 음악앨범]을 본 후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인데, 영화가 재미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나를 휘감았던 것이다. 내가 이토록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못 미더워하는 이유는 영화가 너무 촌스럽고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바보 같은 아빠 철수(차승원) 앞에 백혈병에 걸린 딸 샛별(엄채영)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뭔가 기억나는 영화가 없는가? 그렇다, 류승룡이 바보 아빠를 연기해서 천만 관객을 울린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이 떠오를 것이다. 다시 말해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결코 새로운 영화도 아니고, 어떻게 관객을 웃기고 울릴 것인지 눈에 훤히 보이는 영화라는 것이다. 게다가 예고편에서 보여준 차승원의 바보 연기는 류승룡과는 달리 왠지 촌스러워 보였다. 영화에 대한 불안감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

​

​

예상대로 흘러가는 초반

​

​

불안감을 가득 안고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보기 위해 상영관에 들어갔다. 뉴스에 의하면 추석 박스오피스 1위는 [나쁜 녀석들 : 더 무비]이고, 2위는 [타짜 : 원 아이드 잭]이며,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3위로 뒤처져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도 힘들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동네 멀티플렉스 상영관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으로 가득 찼다.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게다가 대부분 가족 단위 관객이었다. 역시 이것이 가족 영화의 힘일 것이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예상대로 촌스러운 코미디가 펼쳐진다. 완벽한 외모와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대복칼국수의 주방장 철수, 하지만 그는 과거 사고로 인하여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 영화는 초반부터 차승원의 바보 연기를 맘껏 이용한다. 칼국숫집 주방장이면서 손님들에게 "밀가루는 몸에 해로워요."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자신에게 뭔가 불리하면 탄탄한 팔 근육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그저 '피식' 거리는 웃음만을 안겨준다.

영화 초반 철수가 장모인 희자(김혜옥)에게 반납치 되어 백혈병을 걸린 딸 샛별과 마주하는 장면도 예상했던 그대로이다. 그래도 [7번방의 선물]에서 깨물어 주고 싶은 귀여움을 뿜어냈던 예승(갈소원)과는 달리, 샛별은 너무 어린 나이에 백혈병과 맞서 싸워야 했기에 빨리 성숙해버렸다는 점이 다르다. 샛별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심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정도로 영특한데, 그러한 샛별의 캐릭터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초, 중반에서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유일한 요소이다.

​

​

​

대구로 가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이후 스포 포함)

​

​

바보 같은 아빠와 백혈병으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딸.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이 둘의 불협화음으로 코미디를 만든다. 하지만 약하다. 새롭지도 않고, 웃음의 강도가 세지도 않다. 이계백 감독은 TV 드라마 속 막장 드라마 장면을 이용해서 영화의 촌스러운 설정을 스스로 디스 하기도 하고, 전혜빈이 이계벽 감독의 전작인 [럭키]에서 선보인 코믹 연기를 똑같이 재현함으로써 자기 패러디를 시도하기도 하며 관객을 웃기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 영화라고 하기엔 부족한 얕은 웃음만이 간간이 내 입에서 터져 나올 뿐이다.

만약 이대로 영화가 끝났다면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영화를 보기 전의 내 우려 그대로 촌스럽고 너무 뻔한 영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샛별이 친구의 생일 선물로 이승엽 사인볼을 구하기 위해 대구로 향하고, 철수가 우연히 동행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철수가 다니는 체육관 관장(안길강)이 섬뜩한 표정으로 대구의 조직폭력배 두목에게 전화해서 철수를 찾지 않으면 대구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 경고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대구에 철수에 대한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그저 바보 아빠와 백혈병에 걸린 딸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내 예상은 철수와 샛별이 대구로 내려가며 서서히 깨진다. 철수가 계단을 무서워하는 장면에서 '과거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머리를 다쳤나?'라는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나는 철수 부인의 출산을 위해 희자가 대구로 향하는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가 그토록 숨겼던 비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진짜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가벼운 코미디 영화에서 2003년 2월 18일에 벌어진 대구 지하철 참사를 이야기할 줄이야...

​

​

​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

​

지금도 기억난다. 대구 지하철에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50대 남성이 갑자기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라이터를 붙은 뒤 지하철 바닥에 던진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서 철수는 대구의 소방대원이었고, 철수의 아내는 어머니를 마중 나가기 위해 지하철에 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영화 속의 장면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철수가 서울에 살고 있는 장모 희자가 사건 현장에서 발을 동동 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지하철에 탔음을 직감하는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며 우는소리가 들렸다. 임신한 아내를 안고 오열하는 철수의 모습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내 두 뺨에 흘러내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내 역시 울었다고 한다. 단지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해 잘 모르는 아들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2003년 2월은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

솔직히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코미디 영화로서는 영화적 재미가 한참 모자라다. 작은 웃음을 주지만 작은 웃음을 위해 비싼 영화 관람료를 낸 것은 아니다. 특히 이계벽 감독의 전작인 [럭키]와 비교해서도 웃음의 강도가 약해도 너무 약하다. 하지만 이 영화엔 감동이 있다. 눈물이 많은 나는 영화를 보며 참 많이도 우는데 올해엔 [생일]과 더불어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가 내 눈물을 가장 많이 뽑아낸 영화이다. 이 뜨거운 눈물이 모자란 웃음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

​

​

기적이 영화에만 있지 않기를...

​

​

철수의 사연이 드러나며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던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영화관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아직 샛별의 백혈병이 남아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후유증으로 백혈병을 안고 태어난 샛별, 희자가 뒤늦게 철수를 찾은 것은 철수의 골수가 샛별에게 이식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다. 철수의 골수는 샛별에게 맞지 않다. 이쯤 되면 또 울 준비를 해야 한다. 철수의 사연으로 한바탕 흠뻑 눈물을 흘렸는데, 샛별 때문에 또 울어야 하다니 이건 너무 가혹하다.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철수와 샛별의 사연이 뉴스에서 소개되며 대구 사람들이 골수 이식을 위해 병원에 몰려든 것이다. 솔직히 너무 인위적이다. 이건 영화니까 가능한 기적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철수 때문에 이미 실컷 울었는데, 샛별 때문에 또 울어야 한다면 아마도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과잉 감동으로 내게 혹평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이제 눈물이 아닌 미소를 짓고 싶다는 말이다. 이 영화의 기적인 그러한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었고, 덕분에 인위적이긴 하지만 행복했다.

영화가 끝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철수와 샛별의 사연이 영화가 아닌 실제라면, 과연 영화 속의 기적이 일어날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샛별은 대구에 가지 못했을 것이고, 대구에 갔더라도 백혈병에 걸린 샛별의 병세가 더 깊어졌을 것이며, 영화에서처럼 골수를 이식해주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믿고 싶다. 현실에서도 이런 기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가슴 따뜻한 기적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진정으로 믿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