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를 신청하기 전 《마법천자문》이 발행되다

이른바 ‘《마법천자문》 사건’은 북이십일 출판사가 《마법천자문》이라는 한자 교재에 대하여 어렵게 특허 등록을 받았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진행한 특허분쟁에서 특허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사건입니다. 특허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이유는 기존에 알려진 기술과 비교한 결과가 아닙니다. 바로 특허를 신청하기 전에 《마법천자문》이라는 책을 발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북이십일의 김영곤 사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기술을 자기가 공지하는 게 문제된다는 것을 아는 기업인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패소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마법천자문》 사건에서 북이십일출판사는 국제박람회에 ‘마법천자문’을 출품 및 전시한 후, 6개월 내에 특허를 신청하였습니다. 또한 특허를 신청한 후 30일 내에 증명서류까지 잘 제출하였습니다. 하지만 국제박람회에 출품하는 행위는 공지예외주장 사유가 되었지만, 도서를 판매하는 행위는 예외사유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 이유로 법원에서는 특허권이 무효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부분은 ‘어떤 공지 행위를 예외로 인정할 것인가’입니다. 공지예외주장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각 나라마다 이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다릅니다. 특허를 신청하기 전에 제품을 시연 또는 판매하거나 논문을 발표하면, 이미 중국과 유럽의 특허 등록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정한 공지 행위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하다가 현재는 어떤 공지 행위라도 ‘공지예외주장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변화를 잘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앞에서 언급한 ‘《마법천자문》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제품을 시연하거나 판매하기 전에 특허를 신청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발명을 세상에 알리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다면 특허의 내용을 상세히 적는 특허명세서를 준비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특허명세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발명의 명칭

- 기술분야

- 발명의 배경이 되는 기술

- 발명의 내용(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과제의 해결 수단, 발명의 효과)

- 발명을 실시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

- 특허청구범위

- 도면

특허명세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특허 전문가는 최소한 몇 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알리기 직전에 갑작스럽게 특허 신청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발명을 세상에 알리기 전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허명세서를 완전히 작성하지 않고, 특허를 신청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특허청구범위를 작성하지 않고 특허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를 ‘특허청구범위 제출 유예제도’라고 부릅니다. 특허 신청일을 확보하면서 세상에 알릴 발명의 내용만 특허명세서에 임시적으로 담아 놓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더라도 추후 특허청구범위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2015년부터는 좀 더 획기적인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특허명세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문서로도 특허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이용한다면, 특허 신청은 몇 시간만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세상에 발명을 알리기 전에 급하게 특허를 신청해야 한다면,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미국의 특허 제도는 ‘임시 출원’이라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임시적으로 특허를 신청하면, 일단 전 세계적으로 특허 신청일이 인정되어 ‘우선권’을 가지게 됩니다. ‘우선권’은 특허권을 선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굳이 한 번만 임시적으로 특허를 신청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디어가 창출되면 임시적으로 특허를 신청하고, 추가적인 연구나 개발이 이루어지면 또다시 임시적으로 특허를 신청하면 됩니다. 이러한 임시적인 특허 신청을 모아서 1년 내에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완전한 특허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국내 우선권 주장 출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단계에 맞추어 임시적인 신청을 진행하면 특허 신청일을 적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허를 확보하는 국제적인 경쟁에서 앞서나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임시적인 특허 신청이 적절히 활용되어 특허 강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디어가 이렇게 재산이 될 줄이야 <김태수> 저

이코노믹북스, 2019년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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