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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존 파브로

더빙 : 도날드 글로버, 비욘세, 제임스 얼 존스, 치웨텔 에지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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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감동을 아직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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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면 기대작 1순위로 정해놓고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향한다. 그런 내게 아내는 다 큰 어른이 무슨 애들 만화냐고 핀잔을 주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는 순간만큼은 사회에 찌든 어른이 아닌, 아직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아이가 되어 힐링을 얻곤 한다. 그렇기에 어린이 관객이 득실거리는 시끄러운 극장 구석에 앉아 혼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젊은 시절 내 일기장을 들춰보면 1992년 2월 17일 누나와 함께 코아 아트홀이라는 작은 극장에서 [인어공주]를 관람한 것이 시초이다. 당시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어공주]의 재미에 흠뻑 매료되었고, 그 후 매년 여름 극장가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면 혼자 극장을 찾았었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내 사랑의 시초일 뿐, 진정한 시작은 아니다. 만약 1994년 여름 [라이온 킹]을 보지 않았다면 1995년 픽사 [토이 스토리]의 개봉과 함께 서서히 사향길을 걷기 시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나 역시 외면했을는지 모른다.

1994년 여름에 본 [라이온 킹]은 정말 경이로웠다. 'Circie of Life(삶의 순환)'의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시작된 영화의 오프닝부터 나를 사로잡았는데, 이 장면은 스펙터클의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이후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러한 결심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라이온 킹]이 실사화되었다. 실사화된 [라이온 킹]에 대한 내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토요일 오전, 크나큰 기대를 안고 온 가족이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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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나 늘어난 러닝타임에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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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화된 [라이온 킹]을 보러 가기 전, 언제나 그렇듯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먼저 봤다.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스펙터클의 황홀감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보고 나서 새삼 느낀 것은 영화가 꽤 짧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러닝타임은 89분으로 1시간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사화된 [라이온 킹]의 러닝타임은 118분이다. 무려 29분이나 늘어난 것이다. 과연 실사화된 [라이온 킹]은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지난 5월 23일에 개봉해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알라딘]이 그러했다. 199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러닝타임은 90분에 불과하지만, 실사화된 [알라딘]의 러닝타임은 무려 128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러닝타임은 자스민(나오미 스콧) 공주에게 할애됨으로써 여성 캐릭터의 달라진 위상을 과시했다. 애니메이션에는 없었던 자스민의 솔로곡 'Speechless'이 새롭게 추가된 것도 실사화된 [알라딘]에서 눈에 띄었다. 그렇기에 25년 만에 실사화된 [라이온 킹]에서도 어떤 장면이 추가되었는지, 어떤 캐릭터가 보강되었는지는 내게 큰 관심사였다.

일단 실사화된 [라이온 킹]에서 새롭게 추가된 것은 크게 두 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카(치웨텔 에지오프)와 손을 잡는 하이에나의 리더로 쉔지(플로렌스 카숨바)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추가되었는데,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우스꽝스러운 하이에나 삼총사가 전부였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쉔지로 인하여 하이에나 무리의 사악함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영화 후반 날라(비욘세)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스카에게서 도망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는 날라(모이라 켈리)가 느닷없이 심바(매튜 브로데릭)에게 나타나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새로 추가된 날라가 스카의 감시망을 뚫고 도망치는 장면 덕분에 스릴과 더불어 개연성이 보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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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달라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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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화된 [알라딘]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마치 새로운 영화처럼 느끼게 했던 영리한 전략 덕분이었다. 사실 실사화된 [알라딘]은 애니메이션 [알라딘]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자스민 공주의 캐릭터를 자기 주체성이 강한 캐릭터로 살짝 변화시켰고, 램프의 요정 지니를 파격적인 윌 스미스로 캐스팅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 작은 변화는 실사화된 [알라딘]을 애니메이션 [알라딘]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영화로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그것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실사화된 [라이온 킹]은 어땠을까? 분명 러닝타임이 29분이나 늘어났고, 하이에나 집단의 리더로 쉔지를, 그리고 날라에 대한 장면이 늘어나며 여성(암컷) 캐릭터가 보강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실사화된 [알라딘]과는 달리 실사화된 [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어난 29분의 러닝타임은 기존 장면은 조금 길게 보강한 것에 대한 결과물로 보인다.

결국 실사화된 [라이온 킹]이 내세울 것이라고는 기술력의 발전뿐이다. CG로 완성된 심바, 날라, 품바(세스 로건), 티몬(빌리 아이크너) 등 아프리카 동물들은 진짜 동물들을 촬영한 후 편집한 것처럼 정교하다. 존 파브로 감독은 2016년에 개봉한 [정글북]에서도 정교한 CG로 다수의 동물 캐릭터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는데, 이번 [라이온 킹]에서 그의 특기가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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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숙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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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실사화된 [라이온 킹]이 실망스러웠다. 물론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CG라는 것을 전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정교한 동물 캐릭터들의 모험과 흥겹고 감미로운 뮤지컬 노래들은 2시간 가까이 영화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만약 다른 영화였다면 나는 이 정도의 영화적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다른 영화도 아닌 [라이온 킹]만큼은...

내가 실사화된 [라이온 킹]에 실망한 이유는 간단하다. 25년 전,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보며 느꼈던 경이로움, 스펙터클에 의한 황홀감을 실사화된 [라이온 킹]에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영화 문제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일는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봤던 1994년 당시는 내가 감수성이 예민한 2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지금은 사회에 찌들 대로 찌든 그래서 감수성마저 메말라버린 40대 후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나 자신의 문제뿐일까? 영화를 보고 나서 왜 실사화된 [라이온 킹]에 내가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동물 캐릭터를 관객이 진짜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친숙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빌런인 스카만 해도 그렇다. 영화에서 스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제 검은 갈기의 사자가 등장하겠지?'라며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등장한 것은 사자라 하기엔 안쓰러울 정도로 탈모 상태가 심각한 스카의 모습뿐이었다. 물론 검은 갈기의 사자는 사실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존 파브로 감독은 무파사(제임스 얼 존스)와 차별화된 스카의 모습을 위해 검은 갈기 대신 갈기가 거의 없는 수사자를 등장시킨 것인데, 내 입장에선 그러한 스카의 안타까운 외모(절대 내가 탈모 진행 중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_-)는 형을 죽이고 조카의 왕좌를 빼앗는 스카의 캐릭터와 그다지 부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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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바와 티몬마저 너무 사실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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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사실적인 동물 캐릭터에 대한 집착은 영화 속 개그 캐릭터인 품바와 티몬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털이 듬성듬성 난 멧돼지 품바의 모습은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나를 웃게 만들었던 품바와 너무 차이가 나서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사실적인 동물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동물의 표정마저 최소화시켰다는 존 파브로 감독의 연출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최소한 내 입장에서는 너무 사실적인 동물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정겨움을 헤친 이유가 되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심바를 궁지에 몰아넣은 스카가 스스로 '무파사를 죽인 건 나다.'라고 밝힘으로써 반격의 여지를 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며 '왜 악당들은 저렇게 입이 쌀까?'라고 투덜거렸었다. 최소한 존 파브로 감독은 그 장면만이라도 바꾸었어야 했다. 심바가 스카와 대결을 하는 중요한 순간, 최대 전환점이 되는 장면이 스카의 느닷없는 고백이라니... 하지만 원작에 충실해도 너무 충실한 실사화된 [라이온 킹]은 이 장면마저 그대로 재현할 뿐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흥행의 최고 정점에 올랐었던 [라이온 킹]을 실사화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럴 거면 왜 리메이크하냐?'라며 원작 팬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극복해야 하는 문제이다. [알라딘]은 그것을 극복했다. 영화 개봉 전 윌 스미스의 캐스팅을 놓고 얼마나 많은 논란이 일었던가. 하지만 현재 월드 와이드 흥행 성적이 1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성공했다. [라이온 킹]은 진짜 같은 CG 동물 캐릭터 외엔 특별한 차별점 없이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고스란히 실사화로 옮겨 놓았다. 바로 그러한 문제들로 인하여 실사화된 [라이온 킹]은 그런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25년 전의 감동을 느끼기에 내겐 부족한 영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