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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외로움은 결코 늙지 않는다
8  enterskorea 2019.07.16 09: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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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결코 늙지 않는다






<아침마당>을 집필하면서 어르신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중에서 수요일 코너였던 나의 두 번째 짝을 찾습니다라는 코너는 내가 만난 수많은 외로운 어르신들 덕분에 탄생한 포맷이었다. 연배로 보나 경험치로 보나 내 눈에 인생 9단은 되어 보이는 그런 연배의 어르신들도 혼자 있는 분들은 대부분 외로움을 호소했다.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당신 인생의 절체절명의 목표인 양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가 그 목표가 달성되고 나면 마치 탈피하고 남겨진 껍데기처럼 빈 쭉정이가 되어 텅 빈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한 달 정도 기간을 정해놓고 두 번째 짝을 찾고 싶은 분들의 신청을 받았다. 예상대로 폭발적인 신청이 이어졌다. 담당 피디와 나는 대원칙을 하나 정했다. 어르신이 직접 신청을 한 경우보다 자녀들이 혼자된 부모님의 두 번째 짝을 찾아주고 싶다고 신청한 경우를 최우선으로 방송해서 짝을 찾아드리자는 거였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어르신들의 재혼에 대해 남부끄럽다는 식의 낡은 편견을 깨고 자녀들의 응원 하에 짝 찾기를 해드리고 싶다는 제작진의 의지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깨달았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외로움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어머니, 저희 프로그램에 신청한 거, 자녀들이 아나요?”

얘기하면 창피하다고 펄쩍 뛸 거 같아서 아직.”

저희는 사적으로 짝을 찾아드리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짝을 찾는 거라서 어차피 알게 될 테니 얘기하시는 게 좋아요. 그래도 신청하시겠어요?”

“...신청해주세요.”

 

대부분의 신청자들은 큰 결심을 하셨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인생 살 만큼 살아서 웬만한 일엔 끄떡도 없을 것 같은 당신의 부모님들도 사실은 외롭다. 내가 어르신들을 만나본 바로는 외로움은 절대 늙지 않는다. 오히려 외로움이란 감정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깊어지고 강해진다. 이유가 왜인지 아는가. 자신 앞으로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남은 시간이 어차피 오늘보다 나을 일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몇 해 전,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된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겨서 고민이라는 사십대 여성과 인터뷰를 했다. 어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게 왜 고민이냐고 했더니 엄마의 남자친구가 이상한 남자 같아서란다. 도대체 엄마의 남자친구가 어떻게 이상하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일단, 화장을 안 하던 엄마가 화장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옷이 화려해지기 시작했단다.

 

엄마가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입으면 더 젊어 보이고 좋죠, . 에너지도 생기신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 아니었거든요. 그 아저씨 때문에 바람이 든 것 같아요.”



 


나와 여성의 대화는 꽤 긴 시간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마침내 난 그 여성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그 남자, 돈이 별로 없는 남자인 거 같아요. 생전 용돈 부족하다는 얘기를 안 하는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하지 않나. 그러다가 엄마 명의로 된 집이 그 남자 때문에 어떻게 될까봐.”

 

바로 그거였다. 그 여성은 엄마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의 집을 걱정하는 거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외동딸인 자신에게 결국 오게 될 그 집이 그 남자의 집이 될까봐 걱정하는 거였다.

 




그 집을 걱정하기 전에 생전 화장도 안 하고 꾸밀 줄도 모르던 엄마가 다시 여자로 보이고 싶었던 그 마음을 먼저 살펴줬다면 어땠을까. 혼자된 엄마가 도대체 얼마나 그동안 외로웠던 건지, 그리고 그 남자친구를 만나며 어떤 게 가장 행복하고 좋았는지를 먼저 물어봐 줬다면 어땠을지 말이다.

 

대단한 효도를 하자는 게 아니다. 조금 살펴보라는 거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큰 걸 바라지 않는다. 빤한 전화 한 통화, 빈말에 가까운 걸 뻔히 알면서도 듣고 싶은 인사 한마디를 바란다. 다 늙은 당신의 엄마, 아빠는 오늘도 외롭다. 바로 젊은 우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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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흔들린다 느껴진다면 <남희령> 저

책이있는풍경, 2019년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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