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도서/공연/영화 즐겨찾기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 - 무슨 정치 영화가 이렇게 가볍냐? 그런데 재미있다.
12  쭈니 2019.06.21 14:47:53
조회 181 댓글 0 신고

감독 : 강윤성

주연 : 김래원, 원진아, 진선규, 최귀화, 최무성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나니 정치 혐오증이 생기더라.

사실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IMF 외환 위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치에 무관심했고, 선거일이 되면 그놈이 그놈이라며 내 권리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반이 되던 해에 IMF 외환 위기에 터지고 나서야 정치가 나와 같은 서민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어느 정당의 정책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인지 꼼꼼하게 따졌고, 선거일이 되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꼭 아침 일찍 투표를 했다.

이렇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나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부작용은 정치 혐오증이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이 권력을 놓고 서로 헐뜯고, 싸우다가, 선거 때가 되면 국민을 위한다며 굽신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작 저따위 인간들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러한 정치 혐오는 영화에도 반영되었다.

내 기억 속의 첫 우리나라 정치 영화는 강우석 감독의 1991년작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이다. 안성기가 주연을 맡았던 이 영화는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부각된 전 계엄사령관 정용욱의 죽음을 둘러싸고 야당 대통령 후보 박인규(박근형), 박인규와 내연의 관계인 앵커우먼 김지원(김성령) 사이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보도국 정치부 기자 최종수(안성기)의 활약을 그린 영화이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추악한 정치인을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 당시로는 흔치 않은 정치 스릴러 영화이다. 그 이후에 개봉한 정치 영화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권력의 뒤에 숨은 정치인들의 추악한 민낯은 뉴스에서 드러난 현실 정치와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영화를 보다.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다. 매일 쌈박질에 막말에 비리에 뻔뻔한 거짓말까지, 정치인들의 막장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뉴스를 안 볼 수도 없다. 개똥밭에서 보석을 찾아 선거일 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개똥밭에 정말 보석이 있긴 한 건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정치에 무관심하다가 뒤통수를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인생의 IMF 외환 위기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렇게 뉴스로 보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내 돈 내고 굳이 극장에서 정치 영화를 봐야 할까?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이 개봉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은 조폭 두목 장세출(김래원)이 변호사 강소현(원진아)에 홀딱 반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목포 시민을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내용이다. 하긴 정치인과 조폭의 유착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고, 거의 대부분의 우리나라 정치 영화에도 나오는 소재이다. 그런데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은 조금 다르다. 아예 조폭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으니까. 뭐 따지고 보면 권력을 휘두르나, 주먹을 휘두르나일 뿐, 별 차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을 극장에서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고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에 대한 언론 리뷰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날 것의 액션을 보여준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은 치열한 정치 영화나 누아르와는 거리가 먼 영화라는 것이 대부분의 언론 평가였다. 정말? 치열하지도 암울하지도 않은 정치 영화라니... 이거 오히려 신선하지 않은가?

비현실적인 만화 같은 설정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2주간 동안 노심초사했더니 몸도, 마음도 지쳤다. 이럴 땐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유쾌한 영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찾던 유쾌한 영화가 바로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정치 영화인데 오히려 유쾌하다니 뭔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은 해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킥킥거리며 유쾌하게 웃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에 기인한다.

먼저 캐릭터부터 보자. 주인공인 장세출은 목포의 잘 나가는 조폭 두목이지만 강소현에게 뺨 한대 맞더니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마치 TV 막장 드라마 속 재벌 2세가 자신을 막 대하는 서민 여주인공에게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야'라며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어이없다. 강소현에게 첫눈에 반한 장세출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자 우연처럼 갑자기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온다. 버스 추락 사고 현장에서 운전기사를 구해 일약 목포 영웅으로 떠오르고, 유력 야권 국회의원 후보인 황보연(최무성)이 여권 후보 최만수(최귀화)의 음모로 부상을 당하자 대신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한다. 꼼꼼히 따진다면 이러한 설정 자체가 너무 억지스럽다.

그런데 상관없다. 그냥 유쾌하게 즐기면 된다. 조폭이 개과천선해서 목포 시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이 결코 무겁지 않게 펼쳐진다. 조직 간의 암투, 정치인 간의 음모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가볍다. 아무리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냥 만화 같다. 그런데 그러한 비현실적인 만화 같은 설정이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이 된다.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김래원의 매력이다.

무엇이 개똥밭에서 뒹구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있는 정치 영화를 이렇게 가볍고 유쾌하게 만들었을까?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주연을 맡은 김래원이다. 젊은 시절 김재원과 더불어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 배우로 인기를 끌었던 김래원은 [...ing], [어린 신부] 등을 통해 자신의 멜로 주인공으로써의 이미지를 착실하게 구축했다. 하지만 2005년에 개봉한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그는 변화를 선택했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조직에 의해 경찰로 키워진 이중 첩자의 이야기로 이 영화에서 김래원은 조폭과 경찰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다른 세상에서 갈등하는 구동혁 역을 맡았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통해 멜로 캐릭터에서 선이 굵은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김래원은 2006년 그의 인생 영화 [해바라기]를 만난다. 자신을 친아들처럼 보듬어준 덕자(김해숙)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양아치 오태식을 연기했는데,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라며 울먹이는 김래원의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미스터 소크라테스]와 [해바라기]를 통해 김래원은 주먹으로 먹고사는 나쁜 놈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영화의 분위기는 180도로 다르다. [해바라기]의 분위기가 어둡고 눈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감동적이라면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은 밝고 웃기다. 그리고 해피엔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가 겹치는 것은 김래원이 연기한 캐릭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에서 환하게 웃는 장세출을 보며 [해바라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던 오태식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욱 장세출의 성공이 기쁘게 다가왔다.

악역마저 귀엽더라.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김래원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조폭의 이미지를 꽃미남으로 바꾼 그는 과거를 청산하고 사랑을 위해 좋은 남자가 되고 싶은 조금은 비현실적인 장세출이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조광춘(진선규)과 최만수도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이 밝고 유쾌한 영화가 되는데 톡톡히 일조한다.

조광춘은 장세출의 라이벌 조직 두목이다. 그는 12년 전 장세출과의 악연이 있고, 최만수의 뒤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한다. 영화 말미에는 강소현을 납치하는 등 전형적인 악당이지만 [범죄도시]의 위성락(진선규)처럼 섬뜩하지는 않다. 특히 영화 중반에 최만수의 정책 보좌관인 한만섭(임형준)을 협박하다가 차 유리에 끼는 장면에서는 박장대소를 일으키기도 한다. 조광춘이 황보윤을 죽이기 위해 동원한 돼지 3형제는 또 어떠한가? 이건 뭐 그냥 코미디이다. 게다가 필리핀으로 도망간 돼지 3형제를 붙잡기 위해 출동한 광주 불곰 (누군지 모르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반갑다.)의 등장은 이 영화를 더욱 유쾌하게 만든다.

최만수는 또 어떠한가? 검사 출신으로 목포 2선 국회의원인 최만수는 정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리 정치인이다. 이런 캐릭터는 뒤에서 온갖 음모를 꾸미는 음흉함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배신하는 안면몰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 기본이다. 최만수도 마치 그러한 듯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고, 허술해서 귀엽기까지 하다. 영화 마지막 유치장에서 조광춘과 최만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의 유쾌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요즘 내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했다.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강소현을 연기한 원진아의 매력이 조금은 부족했다는 점이다. 원진아는 지난 3월에 개봉한 영화 [돈]에서 내가 눈여겨 본 배우인데, 이상하게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에서는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게다가 영화 후반 강소현이 조광춘에게 납치되는 장면은 뻔해도 너무 뻔했다. 여주인공을 좀 더 잘 활용할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언제까지 여주인공은 '뽀빠이 살려줘요~'를 외치는 올리브 같은 존재여야 한단 말인가?

대체적으로 나는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이 만족스러웠다. 무겁고 암울하고 온갖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것이 정상인 정치 영화의 뻔한 틀에서 벗어나, 오히려 가볍고 활기차고 코믹하고 유쾌하기까지 한 이 영화가 나는 색다르게 느껴졌고, 그렇게 색다른 만큼는영화에서 느낀 재미도 컸다.

[롱 리브 더 킹 : 목포 영웅]에서 김동률의 감미로운 발라드 <사랑한다는 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초반 술에 취한 장세출이 노래방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부르는 장면에서 강소현의 동료는 '무슨 조폭이 김동률 노래를 부르냐? 그런데 멋지다.'라고 말한다. 그건 이 영화에도 적용된다. '무슨 정치 영화가 이렇게 가볍냐? 그런데 재미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결국 어울리게 만드는 것, 그것은 아마 강윤성 감독의 연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0 첫번째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다른 글 추천

    파워링크 AD
    등록 안내

    페이스북 로그인
    꾸미기
    제목 작성자 조회수 작성일
    [필독] 저작권 관련 게시글 삭제 처리 기준 (2017.02.15 링크 추가)  (18)
    라이프 카테고리 이용규칙 (2015.11.26 수정)
    [ 존 윅 3: 파라벨룸 ], 키아누 리브스의 멋진 액션대표작이 된 시리..  file new MV제이와이 7 16:14:10
    [창업] 스타트업,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배워라  file new enterskorea 13 10:31:03
    <라이온킹> - 근데 왜이렇게 지루하냐?  file new 색시주뇨비 8 05:14:22
    <써클> - 이유없는 죽음엔 교훈 따위는 없다.  file 색시주뇨비 20 19.07.21
    [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 후기 - 진부하지만, 팝콘 무비로는 제격..  file 의견 20 19.07.20
    [ 비스트 ],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은건 이성민의 연기뿐.  file MV제이와이 25 19.07.20
    [ 기방도령 ] 후기 - 영화를 보러갔는데, 시트콤 보고왔네.  file 의견 36 19.07.19
    [ 애나벨3: 집으로.. ], 다시한번 수명연장한듯한 시리즈의 운명..  file MV제이와이 23 19.07.19
    라이온 킹 - 하쿠나 마타타  file 핑크팬더 26 19.07.19
    [유아교육] 공감능력이 있어야 행복한 능력자로 키울 수 있다!  file enterskorea 21 19.07.19
    왕초보 유튜브 부업왕 - 3분 리뷰  file 핑크팬더 29 19.07.19
    [ 존 윅 3: 파라벨룸 ] 후기 - 끝없이 다양한 액션을 선보이다!  file 의견 11 19.07.18
    [공부법]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한다면, 이렇게 하자! 부모교육 편  file enterskorea 27 19.07.18
    [ 토이 스토리 4 ], 끝이 아닌 새 시작, 다시 만나 행복해.  file MV제이와이 38 19.07.17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단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영화를 봤..  file 쭈니 16 19.07.17
    [유랑지구] - 특수효과는 의외로 좋은데, 나머지 부분은 예상보다 약하..  file 쭈니 6 19.07.17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 21세기 '돈키호테'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  file 쭈니 9 19.07.17
    [정치] 1차 세계대전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  file enterskorea 5 19.07.17
    아스달 연대기 - 이전에 없었던  file 핑크팬더 11 19.07.17
    미스 리틀 선샤인 - 좌충우돌  file 핑크팬더 28 19.07.17
    글쓰기
     
    행운의 다이아몬드~ 클릭하시면 포인트 5점을 드려요~
    Copyright ⓒ EZHLD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