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독 : F. 게리 그레이

주연 : 크리스 헴스워스, 테사 톰슨, 리암 니슨

​

​

요즘은 신작을 보며 과거를 추억한다.

​

​

요즘 극장에서 개봉하는 신작 영화의 리스트를 보면 나도 모르게 추억에 빠져든다. 그만큼 예전에 개봉한 영화의 시리즈 속편, 혹은 리부트 영화가 많다. 이번 달만 하더라도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를 보며 1998년 개봉 당시 내게 큰 기대를 안겨줬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를 추억할 수 있었고, [엑스맨 : 다크 피닉스]를 보며 2000년 개봉 당시 나를 흥분하게 만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지난주에 개봉한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도 마찬가지이다.

1997년 당시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사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IMF 외환위기에 의한 불안감이 더 컸다. 졸업 일자가 다가왔지만 직원 모집 공고조차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1997년 겨울, 나는 집에서 빈둥댈 수밖에 없었던 내 불안함을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영화로 간신히 때우고 있었다. [맨 인 블랙]은 그때 본 영화 중 하나이다.

당시 [맨 인 블랙]을 보며 나는 이 영화의 대책 없는 가벼움이 신기했었다. 바퀴벌레 외계인과 두 주인공의 사투는 그저 우습기만 했고, 거대한 외계 함대가 지구 멸망을 위협해도 긴장감은커녕 재미있기만 했다. [맨 인 블랙]을 볼 땐 그러한 가벼움 때문에 영화의 긴장감이 1도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맨 인 블랙]의 가벼움은 무겁기만 했던 내 암울했던 상황에 위안이 되었다. 그렇기에 2002년 [맨 인 블랙 2], 2012년 [맨 인 블랙 3]를 거치며 '맨 인 블랙 시리즈'는 어느새 내게 베스트 SF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

​

​

젊은 피를 수혈하고 돌아왔다.

​

​

[맨 인 블랙 3]는 시간 여행을 통해 에이전트 K(토미 리 존스)와 에이전트 J(윌 스미스)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소개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렇게 15년에 걸친 '맨 인 블랙 시리즈'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목이 말랐다. [맨 인 블랙 2]에서 [맨 인 블랙 3]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듯이, 나는 조만간 [맨 인 블랙 4]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맨 인 블랙'이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내가 기대했던 [맨 인 블랙 4]가 아닌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맨 인 블랙]이 개봉한지 23년이 흘렀다. 당시 풋풋했던 윌 스미스는 이제 중년 배우가 되었고, 토미 리 존스는 이제 할아버지 배우가 되었다. 그들에게 또다시 검은색 슈트를 입히고 외계인과의 사투를 벌이게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맨 인 블랙 시리즈'를 계속 유지하려면 젊은 피가 필요하다. 아쉽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결과 크리스 헴스워스와 테사 톰슨이 토미 리 존스와 윌 스미스의 뒤를 이어 검은색 슈트를 입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외계인과 사투를 벌인다. 금세기 최고의 시리즈 영화로 평가받고 있는 MCU에서 각각 '토르'와 발키리를 연기했던 두 배우의 합류는 꽤나 시의적절하다. 게다가 요즘처럼 젠더 감수성에 민감한 시기에 '맨 앤 우먼 인 블랙'이라는 설정 또한 영리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과연 에이전트 H(크리스 헴스워스)와 에이전트 M(테사 톰슨)은 얼마나 멋진 케미를 선보이며 에이전트 K와 에이전트 J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이다.

​

​

​

두 개의 오프닝씬이 의미하는 것

​

​

나는 영화를 볼 때 첫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엔 두 개의 오프닝씬이 존재한다. 첫 번째 오프닝씬은 2016년 하이 T(리암 니슨)와 에이전트 H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서 발생된 공간 이동 포털을 이용해서 지구를 침략하려는 하이브를 무찌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하이 T와 에이전트 H가 하이브를 무찌르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7세대 광선총 한 자루와 재치만으로 하이브를 무찔렀다는 무용담만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오프닝씬은 20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귀여운 아기 외계인 루카를 MIB에게서 구해준 어린 몰리는 MIB의 뉴럴라이저에 의해 부모의 기억이 삭제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 후 성인이 된 몰리는 MIB에 들어가기 위해 FBI, CIA 등에 응시하지만 그들 조직은 MIB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실망한다. 그러다 NASA의 허블 망원경을 해킹하여 외계인의 지구 방문 현장을 목격하고, 현장에 출동한 MIB를 미행하여 MIB의 본부 위치를 알아낸다. 그리고 결국 에이전트 O(엠마 톰슨)의 눈에 띄어 수습 에이전트가 된다.

이 두 개의 오프닝씬은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의 전체 줄거리와 맞닿아 있다. 우선 첫 번째 오프닝씬인 2016년 하이브 퇴치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 스토리 라인의 중요한 복선이 된다. 일단 하이브가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의 메인 빌런임이 드러났고, 2016년 하이 T와 에이전트 H가 7세대 광선총 한 자루와 재치만으로 하이브를 무찌른 무용담은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의 중요한 반전이 된다.

​

​

​

그 중요한 오프닝을 그렇게 사용하다니...

​

​

문제는 영화의 재미와도 직결된 마지막 반전이 너무 뻔하다는 점이다. 이미 첫 번째 오프닝씬으로 반전을 전부 알려준 것과도 같다. 아무리 아둔한 관객이라도 하이 T와 에이전트 H가 하이브를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지 않고 건너뛴 것에 의구심을 품을 것이며, 그러한 의구심은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알아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첫 번째 오프닝씬과 마지막 반전을 연결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은 그러지 못했다.

두 번째 오프닝씬은 에이전트 M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이다. 몰리가 왜 그토록 MIB에 집착하는지 두 번째 오프닝씬은 완벽하게 설명해낸다. 특히 몰리가 MIB 몰래 도망치게 도와준 베이비 루카가 남긴 한마디 '카블라 낙슐린'은 영화 후반에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남겼다. 하지만 고작 에이전트 H의 전 애인이자 악독한 무기 판매상 리자(레베카 퍼거슨)에게서 무사히 도망치는데 기여하는 것뿐이었다. '카블라 낙슐린'이 고작 이렇게 사용될 줄이야...

기대했던 두 개의 오프닝씬과 연결된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 실망스러웠다. 어차피 지구에 인간과 외계인이 함께 산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가진 영화인 만큼 좀 더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은 첫 번째 오프닝씬의 친절한 복선과 그로 인해 맥 빠진 반전, 그리고 두 번째 오프닝씬의 허무한 사용으로 나를 실망시켰다.

​

​

​

하지만 난 아직 실망하기 싫다.

​

​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맨 인 블랙 3부작'과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을 단순 비교한다면 이전 3부작의 압도적인 승리이다. 그만큼 토미 리 존스와 윌 스미스의 존재감이 컸고, 케미도 좋았으며, 통통 튀는 영화의 스토리 라인도 맛깔스러웠다. 하지만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은 아직 설익은 과일을 먹는 기분의 영화이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전 시리즈가 워낙 탄탄했기에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에 거는 기대도 덩달아 커졌지만, 나는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꽤 괜찮은 오락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단 크리스 헴스워스와 테사 톰슨의 남녀 케미는 좋았다. 약간의 허세끼가 있는 에이전트 H와 의욕충만한 에이전트 M이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힘을 합치는 과정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씬스틸러라 할 수 있는 포니(쿠마일 난지아니)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하이브에 의해 살해된 여왕을 대신하여 에이전트 M을 여왕으로 모시는 포니는 코믹 조연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의 북미 흥행 성적을 보니 개봉 첫 주 2천8백5십만 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비록 박스오피스 1위이긴 하지만 성적이 너무 부진하다. 1997년 개봉한 [맨 인 블랙]의 개봉 첫 주 성적은 5천1백만 달러였고, 2002년에 개봉한 [맨 인 블랙 2]는 5천2백1십만 달러, 2012년에 개봉한 [맨 인 블랙 3]도 5천4백5십만 달러를 개봉 첫 주에 벌어들였다. 그와 비교한다면 아직 첫 주에 불과하지만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은 시리즈가 계속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나는 아직 실망하기 싫은데, 과연 에이전트 H와 에이전트 M의 케미를 계속 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