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켈리 애스버리
더빙 : 제임스 맥어보이, 에밀리 블런트

1992년 2월, 지금은 사라진 종로 1가의 코아 아트홀에서 나는 누나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봤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대한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어느덧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활활 불타오르고 있어서 지금도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면 극장으로 향하곤 한다.
예전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챙겨 보면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드림웍스 애니메이션도 챙겨봐야 하고, 그러다가 픽사, 블루 스카이, 일루미네이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등 챙겨봐야 할 애니메이션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면서 보지 못하고 놓치는 애니메이션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노미오와 줄리엣]도 그중 하나이다.
[노미오와 줄리엣]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영국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에서 베니가 테라퍼미네이터를 결재할 때 달러화가 아닌 파운드화가 등장한다.) 하지만 북미 개봉 당시 디즈니에서 배급을 맡았고, 월드 와이드 흥행 성적도 2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 성공작이라 2011년 국내 개봉 당시 당연히 내 관람 리스트에 상위권으로 올랐었다. 하지만 이렇게 7년 후에서야 관람이 성사되고 말았다.

 

 

[노미오와 줄리엣]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새롭게 각색한 애니메이션이다. 서로 앙숙관계인 몬태규와 캐퓰렛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이 그들은 아니다. 그들의 정원에 있는 3등신 잔디 인형이 [노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이다. 정원 인형들은 [토이 스토리]가 그러하듯이 사람이 보지 않을 땐 자유롭게 활동을 하는데, 앙숙 관계인 주인의 영향을 받아 레드가와 블루가로 나누어 서로 겪하게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블루가의 노미오(제임스 맥어보이)와 레드가의 줄리엣(에밀리 블런트)이 그만 사랑에 빠져 버린다. 당연히 두 사람의 사랑은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며 원작 그대로 그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비극이 웬 말이랴. [인어공주]조차도 해피엔딩으로 끝났는데, [노미오와 줄리엣]이 원작을 깨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최종병기 테라퍼미네이터로 인하여 쑥대밭이 된 레드가와 블루가의 정원에서 노미오와 줄리엣은 극적으로 사랑을 완성하며 영화는 예상대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일단 [노미오와 줄리엣]의 장점은 명확하다. 고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을 받은 탄탄한 원작이 있기에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다. 여기에 디즈니가 쌓아올린 흥행 전략이 맞물린다. 흥겹고 감미로운 음악이 있고, 엉뚱한 매력을 지닌 코믹한 조연 캐릭터가 있다. 특히 줄리엣의 절친인 개구리 나넷, 그리고 버려진 정원에 사는 플라밍고 페더스톤은 씬스틸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영화 중후반부 셰익스피어 동상과 노미오와 대화를 통해 [노미오와 줄리엣]은 명확하게 비극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것이라 선언하는 장면도 좋았다. 느닷없이 원작의 결말을 바꿔버리면 원작의 팬 입장에선 거부감이 들었을 텐데, 이 영화는 영화 미리 선언을 함으로써 그러한 거부감을 최소화시켰다.
최근 [노미오와 줄리엣]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셜록 놈즈]도 개봉했다. 노미오와 줄리엣이 정원 인형 실종 사건을 맡아 최고의 탐정이자 추리의 귀재인 셜록 놈즈(조니 뎁)와 함께 합동 수사를 벌인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노미오와 줄리엣]이 재미있었기에 [셜록 놈즈]도 기대가 되긴 하지만, 우리말 더빙으로만 상영을 하는 국내 극장가의 사정상 [셜록 놈즈]도 다운로드로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번엔 [노미오와 줄리엣]처럼 7년이나 걸리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