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빠르고 편리하고 자극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쉽게 지칩니다. 남들보다 느리면 욕을 먹고  진득하게 기다리지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악한 것이 미덕입니다. 편의는 또 얼마나 좋은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일을 대신하는 일도 참 많습니다.  삶도 주체적이기 보다는 남들이 지시하는 대로 따릅니다. 

남들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고 내 일도 남에게 넘기는 대리운전 같은 삶. 도시는 그렇게 나를 잊기 딱 좋습니다. 또한 편의라는 이름의 스트레스도 가득합니다. 

도시의 삶에 지친 혜원, 시골집으로 돌아가다

혜원(김태리 분)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남자 친구는 시험에 합격하자 질투심이 발동해서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시골집은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엄마가 고 3때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면서 훌쩍 떠나버립니다. 

그런 엄마가 처음도 시골로 돌아온 지금도 매정하게 보입니다. 

혜원은 바닥이 보이는 쌀독에서 쌀을 푸고 얼어 붙은 배추밭에서 배추를 뽑아서 밥을 먹고 잡니다. 그렇게 혜원의 시골 생활은 다시 시작이 됩니다. 혜원이 돌아오자 친구인 재하(류준열 분)가 밤에 무섭지 말라고 오구라는 강아지 내밉니다.  친구 은숙(진기주 분)도 스쿠터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와서 귀향을 축하해 줍니다.

하지만 혜원은 잠시 들렸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며 정착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점점 혜원은 따스한 봄바람에 취하고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한 농촌 생활에 익숙해지고 물들기 시작합니다.

이는 재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후 회사를 다녔지만 온갖 욕설과 심한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사기가 가득한 도시 보다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한 정직한 농촌 생활을 선택합니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농촌의 삶을 선택한 재하. 재하는 혜원이 고향에 돌아온 이유를 잘 압니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 은숙은 아픈 부분을 콕 찌르는 얄밉지만 다정한 친구입니다. 은숙은 동네 은행에서 근무를 하면서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받지만 혜원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개울가에서 함께 싸온 음식고 술을 마시면서 행복한 시골 생활에 정착한 혜원은 서울로 다시 올라갈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동네 친구인 혜원, 재하, 은숙은 맑은 햇살 아래 자라는 토마토처럼 쑥쑥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남자 친구로 향하던 질투심도 사라진 혜원. 혜원은 떠난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일본판이 쿡방이었다면 한국판은 먹방인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스트>는 일본 만화가 원작입니다. 이미 일본에서 겨울, 봄을 담은 1편과 여름, 가을을 담은 2편 총 2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2>편을 다 봤습니다. 보면서 이렇게 심심한 영화가 다 있나로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영화의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일본 원작과 영화는 각 챕터마다 1개의 요리를 소개하면서 요리 레시피와 요리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요리 레시피가 7할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2할 여주인공의 개인적인 삶이 1할을 차지합니다. 재하나 은숙 같은 친구가 나오지만 풍경으로 만 그려지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여자 주인공만 가득 나옵니다.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는 >쿡방입니다. 요리 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리하는 과정을 쿡방처럼  90도 각도로 내려다 보는 구도가 많습니다. 또한 재료 손질 요령이나 팁도 소개하고 작물 재배법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농촌 생활 레시피라고 할 정도로 요리와 작물 재배법이 자세히 나옵니다. 덕분에 내가 먹는 채소가 어떻게 자라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잔잔하고 맹물 같은 영화를 저는 참 좋아하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담백한 맛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에 임순례 감독은 원작을 리모델링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재건축을 합니다.  전체적인 윤곽은 동일하지만 추구하는 메시지나 재미가 크게 다릅니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과 친구들의 이야기가 7할 요리 레시피가 2할 농촌 풍경이 1할입니다.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자세히 담지도 않고 음식 이름도 자세히 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 음식을 재하와 은숙과 함께 먹는 장면이 많습니다.  일본판에서는 주인공 혼자 음식을 하고 혼자 먹는 장면이 많았지만 한국판에서는 요리를 함께 만들고 함께 먹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 그 과정이 주는 힐링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쿡방이 아닌 먹방입니다. 엄마와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 함께 음식을 먹는 그 행위가 주는 치유력을 담뿍 담습니다. 

표현력은 두 나라의 영화가 다르지만 편안함과 푸근함은  동일합니다. 농촌 생활의 즐거움, 도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가 없고 일한 만큼 먹을 수 있는 정직하고 건강한 삶이 주는 즐거움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건강한 농촌 생활을 즐기는 맑은 청년 김태리의 매력에 빠지다 

사실,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본판과 달리 스토리를 대폭 보강한 그 자체가 자극적으로 보여서 안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김태리 때문에 봤습니다. 영화 <아가씨>에서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강한 에너지와 당찬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런 배우가 있었어? 이후 2015년 영화 데뷰작인 단편 <문영>을 보고 김태리의 미모에 빠졌습니다. 정말 예쁩니다.  

이후 영화 <1987>에서 아름다운 청년의 얼굴을 봤습니다. 여배우 가뭄을 넘어서 기근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영화계에 큰 빛이 되어주고 있는 여배우입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김태리의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밝은 모습과 함께 안에 숨겨진 개구장이 같은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류준열과 비닐하우스에서 장난하는 모습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즐거움을 보여줍니다.

이성 친구가 아닌 동성 친구도 아닌 중성 친구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 속에서 발견한 김태리의 맑고 밝고 청초한 이미지가 가득 보입니다. 김태리 때문에 봤지만 영화가 꽤 좋습니다. 생각보다 자극적이지도 인위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큰 재미나 자극적인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영화 자체가 농촌 풍경입니다. 때 되면 꽃이 피고 때 되면 비가 내리고 장마가 지나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가 열매를 맺고 노랗게 물들었다가 떨어진 낙엽 위로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정직하고 정확한 농촌 풍경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마치 한 폭의 농촌 풍경을 담은 농촌 드라마를 본 느낌입니다. 자극적인 영화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비추천입니다. 하지만 도시 생활의 자극에 지치고 누굴 죽이고 복수하고 멸망시키는 영화에 지친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제가 요즘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이나 자극적인 장면에 깜짝 깜짝 놀랍니다. 예전에는 그냥 무던하게 봤는데 자극적인 영화들을 점점 보기 힘들어지네요. 

아마 요즘 제가 삶에 지쳐서 그런가 봅니다. 도시의 자극으로 부터 몸이 피곤한데 영화관에서 죽이고 파괴하는 모습에 더 지쳤나 봅니다. 그냥 멍하게 봤습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냥 농촌의 아지랭이 가득한 봄빛을 보다 온 느낌입니다. 

산수유 가득핀 길가를 김태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갑니다. 이 장면이 이 영화를 대변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카메라 가방에 있는 카메라를 움켜줬습니다. 올 봄에는 꼭 남쪽으로 내려가서 농촌 풍경을 담으리라. 

그냥 아파트만 안 봐도 높은 빌딩만 안봐도 숨이 탁 트일 것 같습니다. 건강한 농촌 드라마입니다. 힐링 영화입니다. 그리고 삶에 지친 당신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