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토르는 없고, 영악한 로키도 없다. 로키는 여전하지만 토르는 더이상 로키에게 속지 않으니까. 헐크로 머물고 있는 배너 박사는 오랜만에 토르와 재회하지만, 강력한 적의 출현에 그의 역할도 그리 빛나 보이진 않는다. 새롭게 합류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출현은 반갑기 그지 없지만 극초반의 짧은 장면이라 영화의 매력을 끌고 가기엔 다소 힘이 부친다. 토르의 곁에서 언제나 그의 과묵한 조언자로 활약한 헤임달은 역대 가장 멋진 비주얼과 카리스마로 등장하지만, 그 역시 이번 편의 핵심 매력으로 보기엔 부족한 사정.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번 아스가르드 이야기는 이들만의 등장으로는 이렇다 할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번외편처럼 끝나버렸을지 모른다.

다행히 세상이 불 타며 종말을 맞는다는 라그나로크 예언 아래, 오딘의 첫째 딸인 죽음의 여신 '헬라'와 왕좌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여전사 '발키리'는 이번 토르 시리즈를 그나마 평작에 머무르게 해준 일등공신이다.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케이트 블란쳇이 분한 헬라는 역대 제일 섹시한 여성 빌런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학습된 케이트 블란쳇이 주는 '센캐'의 이미지가 영향이 컸다. 보는 즉시 압도되는 무시무시함은 사슴왕관을 써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역시 새로 등장한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발키리도 쉴 새 없이 마시는 술 덕에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지만, 나름 사연이 있는 데다 토르와 로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한 캐릭터이다 보니 후반 포스가 어마어마하다.

여성 캐릭터들의 매력에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토르 형제는 조금 더 분발하지 않으면 신이라는 자격만으로는 매력발산에 어려움이 좀 있지 않을까. 약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