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바삐 오가는 매표 데스크 앞에 한참을 가만히 서서 쩔쩔매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는 과정에 돈을 지불하는데도 왜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지 억울하게 생각될 지경이었다. 직장 생활의 시작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정규직으로 고작 몇 개월을 다녔던 사보 회사에서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야 했고, 정규직으로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서는 내 전화를 사기로 의심하는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인적사항을 요구하곤 했는데, 말을 뗄 때마다 지옥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사회에 부딪치며 굳은살이 꽤 쌓인 덕에 일상적인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다만, 말을 뱉기까지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건 여전하다.

내가 뱉는 말에 예민하게 구는 만큼, 타인의 말에도 까탈스러운 편이다. 특히 일을 하면서 하는 말들에 유난히 신경을 쓰게 된다. 아무리 물건이 좋고 찾아가기 쉬운 가게여도 주인이 불쾌한 말을 하는 곳은 절대 다시 찾지 않는다. 익명의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거친 사람들과는 굳이 비용을 들여가며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입장에 놓일 때 들이곤 하는 에너지를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애써가며 말하는데 이들은 왜 그런 노력을 해주지 않는 건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기왕이면 예쁘게 말을 하는 것이 서로 기분이 좋은 길이 아닐까. 그게 설령 가식일지라도.

사람들은 온갖 것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프로'라고까지 격상하며 비아냥 섞인 어조로 '프로불편러'라 부른다. 업체에서 온 문자에 이름 뒤에 왜 '님'이 아니라 '씨'가 붙었는지 한참 생각하는 나는, 말에 있어서는 프로불편러인지도 모른다. 말하는 이들은 편한데 듣는 나만 불편하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넘겨지지도 않는 게 외로운 현실. 윤영미 아나운서의 '말'에 대한 이 책은 내 외로움을 완벽하게 달래준다. 그녀 역시 '다르다'를 '틀리다'로 말하는 사람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란다. 심지어 직업을 배경으로 남을 교정하는 일까지 나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아 이게 낫겠구나 깨닫는 장들이 금방 끝이 난다는 게 이 책의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조금 더 얘기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남을 가르치는 글이다 보니 글을 구성하면서도 내용이 길어지는 건 지양한 건 아닐까 이해해 본다.

효율을 위해 틀리지 않은 말을 하고, 부드러운 대화를 위해 적절한 말을 하는 건 분명 어렵다. 듣기에도 좋은 말을 하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자존심이 쿡쿡 쑤실 때도 있지만, 잘한 말이 도움을 주는 대상은 결국 그 말을 꺼낸 내가 되곤 한다. 내가 하는 말을 내 뇌가 다시 들으며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남에게 해주면서 대화를 해 나가는 게 천냥 빚보다 더 큰 자산을 얻는 길이라고 믿는다. 남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바라는 것처럼, 조금 더 잘 말할 걸 그랬다며 내 말을 후회하는 매일. 말의 중요성을 살갗으로 느끼는 예민함부터가 말을 예쁘게 하는 시작일 것이다. 저자도 말하지만 잘 말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건, 잘 말하려는 노력 이전에 자존감이기도 하다. 자존감만 충만하다고 해서 결코 능사는 아니겠지만, 자존감이 부족하면 부정적인 말들의 늪에 빠질 위험이 더 커질 테니까. 온갖 말들에 곤두서 있는 예민함을 좋은 감각을 지닌 걸로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겠다.

부정을 표현할 때 '안'자를 늘 앞에 붙이는 습관도 삼가야 합니다. 부정의 부사인 '안'을 앞에 놓는 것이 습관인 사람, 제 남편입니다. 아이들에게 늘 이런 식으로 말해서 제가 자제를 당부하곤 하는데요. '자야지?', '숙제해야지?', '일어나야지?', '만나지 않니?', '예쁘지 않니?' 하는 식의 권유형이나 '~하지 않니?'로 부드럽게 고쳐 쓰는 게 좋겠죠. (P. 85)

일단 결론부터 꽝, 때리고 본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야기의 힘이 세집니다. 가령, "업체에서 연락이 왔는데 나흘 뒤로 결재가 늦어진다고 합니다." 하고 나서 왜냐하면 …, 이유로 이어 나가면 됩니다. 또한 친구에게 늦을 것 같다는 변명도 먼저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라고 결론부터 말해야 기다리는 사람이 답답하지 않지요. 서론이 길면 '그래서?'라는 조급증이 생기며 뒤에 줄줄이 이어지는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P. 113)

말은 하는 순간 자신의 뇌에 98% 각인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로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령, '짜증 나.'를 입에 달고 살면 나의 뇌는 '짜증 나 모드'가 되어 짜증이 나지 않을 때도 내 옆구리를 찔러 없던 짜증을 유발한다는 거죠. (P.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