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언어를 통한 교감과 소통, 더 나아가 화합과 휴머니티까지
한마루 2017.02.23 08:56:49
▣ 지구 곳곳에 갑자기 나타난 12척의 정체불명 구조물들
하지만 <컨택트>는 'SF'라는 장르적인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농도 짙은 드라마입니다
지구의 곳곳에 12척의 정체불명 우주선, 아니 구조물들이 나타납니다. 거대한 타원형의 이 구조물들은 뭘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을만큼 베일에 쌓여 있는데 특히 '이들이 왜 지구에 나타난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비롯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들게 되면서 "당신들이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인간이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이런 설정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을 <인디펜던스 데이>와 같은 스케일 큰 블록버스터와 같은 영화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컨택트>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작품입니다. 때문에 가볍게 보고 즐기는 오락영화를 생각하고 보신다면 그런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당황하실 가능성도 다분한 영화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첫번째 'SF'인 <컨택트>는 SF라는 장르적인 외피를 입고있긴 하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역시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의 농도 짙은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 원작 소설과 비교해보면 전체적은 틀은 비슷하지만 역시 단편 소설이다보니
그 원작을 토대로 많이 확장되어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영화의 원작인 테드 창 작가의 단편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와 영화를 살짝 비교해보자면 원작과 영화의 전체적인 틀은 비슷합니다. 다만 소설에서는 그 정체불명의 구조물들이 미국에만 9개, 전세계에 100여개가 나타나지만 영화에선 12개로 축소되어 있고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지만 영화처럼 전지구적인 네트워크까지는 구축되어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이는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야기에 꼭 필요했기 때문에 확장시킨 부분인 것이죠.
그리고 중간 중간 중심 인물인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회상하는 듯한 장면은 역시 마찬가지로 등장하지만 딸에 대한 회상은 영화가 원작에 비하면 축소되어 있습니다. 딸이 안타까운 일을 당하게 되는 이유와 나이 역시 다르고요. 즉 영화와 소설의 큰 틀은 닮아있지만 그 세세한 부분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 그럼에도 '헵타포드'라는 언어가 중심이 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리고 원작이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는 원작을 토대로 많이 확장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 언어를 통해 차분히 소통의 과정을 쌓아가는 이들
하지만 이들과 달리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위기의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영화로 돌아와서 <컨택트>가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의 시작은 '언어'입니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에 따르자면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이어주는 끈으로 이는 곧 '소통'의 도구이지만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리가 없었던 이들이었기에 루이스와 이론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은 그들과 차분하게 소통의 과정을 쌓아가는데, 이는 "너희들이 이 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 위한 과정이지만 인간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그 과정이 결코 간단할 수가 없었고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는동안 '그들과의 소통을 반대하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는 구조물과 그것이 자리잡고 있는 국가 사이에는 긴장감이 커져가고, 12개국과 연결되어 있었던 서로간의 연결망 역시 차단되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커져가는 전쟁의 그림자, 그래도 상황이 지속된다면 모두가 승자가 되는 '논제로섬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게임판이었지만 <컨택트>는 이런 상황을 결코 과장하여 묘사하고 있진 않은데 그럼에도 바탕에 깔리는 그 긴장감들은 제법 근사하게 느껴지더군요.
▣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들의 언어 '헵타포드'란 무엇인가?
내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온전히 지금뿐이기에,
나는 현재의 시제 속에서만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이처럼 '언어'가 굉장히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컨택트>. 영화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헵타포드'라고 명명된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자는 인간이 사용하는 음성표시 문자나 선형적인 문자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헵타포드는 발화, 즉 음성 언어와는 무관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문자로 그렇다고 해서 상형문자와 같은 그림문자도 아닙니다. 원형의 모습을 띄고 있는 헵타포드는 문장을 구성하는 자체적인 규칙을 갖고 있고 그 원형을 구성하는 격표지 등을 통해 명사, 동사, 주어, 목적어 등의 다양한 표현들까지 가능한 전혀 새로운 문자였던 것인데 이런 헵타포드의 두드러지는 특징중 하나는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 즉 인간들의 언어와는 달리 '시제'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사건을 순서대로 경험하면서 원인과 결과로 관계를 지각하는 선형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헵타포드는 그 언어의 형태에서 알 수 있듯이 비선형적이라고 할 수 있었고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언어이기도 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 언어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루이스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시공간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이 말했던 선물이 바로 그것, 때문에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의 목적지라고 할 수 있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고통의 극치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운명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온전히 지금뿐이기에, 나는 현재의 시제 속에서만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그 때문인지 그녀가 보이던 웃음과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더군요. 그리고 이런 극중 루이스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는 굉장히 훌륭했었는데,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 후보로도 노미네이트 되지 못한 것은 아쉬울 따름이네요.
▣ 소통과 교감, 여기서 확장되는 전 지구적인 화합,
즉 인간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는 '휴머니티'까지 풀어가던 유려한 드라마
그리고 이런 루이스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헵타포드라는 낯선 언어에서 비롯한 소통과 교감, 여기서 확장되는 전 지구적인 화합, 즉 인간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는 '휴머니티'까지 풀어가던 그 유려한 드라마의 흐름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상당히 몰입감 강한 이야기를 자랑하고 있었던 감성적인 SF <컨택트>였습니다. 이제는 거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드니 빌뇌브 감독이 SF를 만들면 이런 영화가 나오는구나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다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컨택트>는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SF 영화가 아니기에 오락 영화를 생각하고 보신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을 작품입니다. 즉, 자신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상당히 많이 갈릴 수도 있을 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보다는 자신의 감상이 중요할 작품으로 생각되는군요. 궁금하시다면 직접 보고 느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