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뭐지 했다 무엇인지 알게 된 후 보고 싶었던 영화다. 극장에서 할 때는 몰랐고 그 이후 케이블이나 TV에서 해 줄때마다 기회가 맞지 않아 보지 못했다. 드디어 우연히 기회가 되어 해야 할 일도 포기하고 봤던 영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보길 참 잘했다. 불행히도 내 예상은 갈수록 틀린 적이 거의 드물다. 재미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영화가 재미없었던 적이 없다. 이건 전적으로 내 취향이다. 무엇이든지 하면 할수록 감이 늘어나며 맞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소재가 참 독특하고 참신하다. 이미 다른 영화에서 비슷한 소재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매일 잠자고 일어나면 다른 내가 된다.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마저도 다르다. 심지어 국적도 다른 인물이 된다. 나 자신도 내가 나인지 혼돈되지 않았을까. 자고 일어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침침하거나 키도 작아지고, 유치원 생도 되고 나도 아무런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그저 매일 매일 순응을 해야 하는 것 이외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처음에는 낯설고 당혹스럽다.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느낌은 주체할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오로지 엄마만 유일하게 날 안아주고 다독여 줄 뿐이다. 그나마 시간이 흘러 유일한 친구 녀석이 날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도 먹고 살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런 걸 보면 어떤 상황이 나에게 생겨도 먹고 살 수 있는 걸 마련한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라도 할 수 있는 직업.

나라는 사람이 굳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아도 되는 가구 디자이너다. 정확히 디자이너로만 한정하기에는 좀 범위가 적긴 하지만. 온전히 가구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평가를 받는다. 로맨스 영화를 보며 다소 뜬끔없는 생각이었지만 들었다. 영화처럼 안정된 직장을 다니다 갑자기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한다면 하룻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다. 그 상태로 출근할 수도 없고 사람들을 이해시키기도 힘들다. 꼭 가구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누구냐가 아닌 할 수 있는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며 외롭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무리 혼자 무엇을 뛰어나게 잘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혼자 신나서 만들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고 반응이 없으면 더이상 작업은 진행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을 "윌슨"이라 부르며 대화를 할까. 이처럼 우진은 세상과 단절되어 인간관계를 이어가지 못하지만 늘 사람이 고프다. 우연히 가구 대리점에서 만난 이수(한효주)에게 마음이 빼앗기며 큰 결심끝에 용기내어 사귀게 된다.

계속 이수에게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잠자지 않고 사귀지만 결국에 잠들고 모든 것은 끝장난 듯 했다. 이수없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우진은 솔직히 고백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부터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람은 처음에 어색하고 낯설어도 시간이 지나며 상대방에 익숙해진다. 매일 달라지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도 시간이 지나며 늘 새롭다는 것이 오히려 힘들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겉모습인가, 내면인가.

우리는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솔직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무리 내면을 중시해도 처음에는 겉모습에 끌리고 현혹(?)된다. 상대방의 생김새를 본 후에 호감을 느끼고 만나면서 차츰 내면을 알아가며 나와 맞춰며, 맞춰가며 익숙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아주 익숙한 표정과 행동을 한다면 당황스럽고 놀랄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도 나온 것처럼 자신을 찾아보라고 하는데 그를 찾을 수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사람마다 각자 느낌이 다르고 고유한 표정과 행동이 있다. 우리는 멀리서도 상대방을 알아본다. 긴가민가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 아직 상대방과 친숙함이 떨어질 때다. 이수는 늘 우진이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 과연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사람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는 날 나에게 다가온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혹시 그건 내 착각은 아닐까.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 내가 사랑하는 것은 정말로 누구일까.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본질도 형상이 있어야 우리는 관심있다. 매일 변하는 우진이 나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매일 변하는 우진의 애인 이수가 나라면 나는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무엇이 중요할까. 사랑이? 내가 사랑하는 것은 겉모습이 배제된 본질일까. 사람은, 사랑은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그 무엇이다. 본질만 중요하다면 굳이 만나지 않고 전화통화만 해도 된다. 꼭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본질을 만나고 있는데. 분명히 그건 아니다.

한효주를 좋아한다. 연기를 엄청 잘하진 않아도 <논스톱>때부터 좋아했다. 싫어하는 여자배우가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다소 저평가된 배우지만 꾸준히 여러 작품을 쉬지 않고 하는 걸 보면 더 기대가 된다. 남자배우들은 워낙 여러 명이 나오는데 우진 125까지 자막으로 나오는 걸로 봤다. 우진 역할을 연기하기 참 힘들었을 듯하다. 한 씬만 출연해서 감정이입을 해야하니 말이다. 어떤 장면은 울기도 하는데 작품을 계속 본 우리는 괜찮은 데 그걸 연기한 남자배우나 상대배우인 한효주도 감정선 잡기 참 힘들었을 듯하다.

영화는 따스하다, 로맨틱하다 보다는 로맨스 영화인데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아울러 영화에 나오는 가구를 보며 구입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자극한다. 특히 그 가구 창고는 실제라면 꼭 가보고 싶다는.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의 겉모습도 아니고 그의 내면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다. <뷰티 인사이드>는 로맨스가 좀 덜하다보니 생각만큼 흥행을 못한 듯 하다. 그래도 꼭 보면 참 좋을 영화다. 적어도 누구도 아닌 나에게는.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타이틀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