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 코믹스에서 잡지 형식으로 매주 발간하는 <배트맨> 404~407호의 연재분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이번에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이어 원>은 미국에서도 2005년 새로 나온 양장본 디럭스 에디션.

1986년 DC 코믹스는 자사의 간판 캐릭터들을 쇄신할 필요를 느끼고 슈퍼맨, 원더우먼 그리고 배트맨을 우선적인 쇄신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배트맨은 그 자체로 훌륭했고, 기본 설정도 탄탄했다. 그래서 그들은 배트맨의 기원을 바꾸지 않는 대신 좀 더 구체화하기로 결정했다.

노년의 배트맨이 펼치는 활약을 다룬 < 다크 나이트 리턴즈>로 슈퍼히어로 만화에도 철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프랭크 밀러가 다시 그 역할을 맡았다. 그리하여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배트맨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배트맨: 이어 원>을 이 세상에 선보였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변장하고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과 첫 활약을 그린 <이어 원>은 다시 한번 배트맨 시리즈를 오락적 액션 활극이 아닌 ‘진지한 느와르’로 인식하게 했고 ‘고뇌하는 분열적 히어로’라는 배트맨의 성격에 확실한 기반을 만들어줬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더불어 배트맨에 관한 그래픽 소설 중 프랭크 밀러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배트맨 – 이어 원’은 ‘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늙고 지친 모습의 브루스 웨인을 보여주었다면 ‘이어 원’은 이제 막 범죄의 세계에 부패와 타락으로 가득한 고담 시에 정의를 새롭게 세주었다는, 고담 시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브루스 웨인과 짐 고든의) 다짐과 시작을 담아내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시작을 다시금 새롭게 다뤄내겠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상황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다뤄내고 있으며 배트맨 시리즈에 익숙한 사람들도 새롭게 보여주려고 하는 시작에 공감하고 설득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다.

알려져 있듯이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고 전체적인 흐름에서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어 원’은 좀 더 소박하게 브루스 웨인이 어떤 식으로 범죄의 도시를 변화시킬 노력을 하게 되는지 그 시작의 허술함과 의욕으로 가득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된 모습들과 여러 시행착오들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어 원’은 어쩌면 오히려 브루스 웨인의 기원과 시작을 다뤄내려는 목적이 아닌 짐 고든이 어떻게 고담 시로 향하게 되었고 고담 시에서 정착하게 되는지를, 부패로 가득한 고담 시에서 어떤 식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가족을 지켜내려고 하는지를, 그에게 향했던 여러 유혹들과 위협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어떤 실수와 잘못이 있었으며 반대로 어떤 식으로 수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었는지를 무척 인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브루스 웨인의 이야기보다 좀 더 관심이 가고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짐 고든의 이야기에 인간적인 요소들이 더욱 가득하기 때문인지 좀 더 눈여겨보게 된다.

부패와 타락의 도시에서 정의를 찾으려고 하는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방식과 입장 속에서 행동하게 되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만나게 되고 알아가게 되는지를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무척 흥미롭게 다뤄내고 있다.

너무 심각하지도 않고

너무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배트맨의 이야기에서 너무 벗어나지도 않게

익숙하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롭고 신선하게 재해석하고 있다.

아마도 많이 달라진 시대에 알맞게 그들의 시작을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점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영화화하려고 했던 ‘배트맨 - 이어 원’의 여러 구성과 설정들이 흥미로웠고 제작이 취소되어버리게 된 것은 두고두고 무척이나 아쉽게만 느껴지게 된다.

흥미로운 시작과 구성이었고, 아마도 ‘이어 원’은 앞으로도 배트맨 시리즈를 다루게 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