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다 보면,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시인의 어머니 목소리가

꼭 우리 할머니 목소리 같다.

허리가 아프다고 차마 소리 내어 말씀도 못하신 채

늘 구부정한 모습으로 지금도 밭에 나가시는

우리 할머니 목소리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늘의 소리내어 읽을 시>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이정록, <의자>, ≪의자≫, 문학과지성사

‘30분만 서 있으면 되겠지’하고 무심코 버스를 탔는데, 길이 꽉 막혀 무려 2시간 가까이 서서 갔던 적이 있다. 버스 안에 사람이 워낙 많아 자리가 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 있는 사람들과 되도록 몸을 덜 부대끼려고 애쓰며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꼿꼿이 서 있자니 종아리와 발바닥이 터질듯이 아프고,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을 든 팔이 욱신거려 나는 울상이 되었다.

그렇게 ‘내 한 몸 기댈 의자 하나만 있다면, 천국이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젊은 사람들도 이렇게 의자 하나가 절실한데, 노인들은 어떻겠는가. 이정록 시인의 <의자>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고백하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고 아들에게 하소연하시는 시인의 어머니 얼굴에 팬 주름살이 눈에 선연하다. ‘이제부터 지하철요금 안 내도 되니까 좋구나’하고 수줍게 웃으시던 우리 엄마의 주름진 얼굴과 따스하게 겹쳐진다.

산다는 게 뭐 별 건가.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 의자 몇 개 내놓는 것. 그런데 그 ‘의자를 내놓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울까. 의자를 내 방 안으로 들여놓으려고만 하고, 남들에게는 의자를 내놓지 않으려는 우리의 욕심 때문은 아닐까.

내 삶에서 ‘우리 집’ 바깥으로 내놓은 의자는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본다. 남들이 그냥 앉으라고, 잠시 앉아서 쉬어가라고 내놓은 의자 같은 따스한 위로. 그런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 출처: 정여울,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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