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실화다. 영화같은 현실이라는 표현도 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영화나 소설 같은 작품 속 이야기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내용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불행히도 또는 행복하게도 영화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비극 또는 희극이 현실에서 일어난다. 아쉽게도 거의 대부분 행복보다는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룸>은 바로 그 불행을 토대로 만든 영화다.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여성이 창고에 몇 년 동안 납치 되어 갇혀 있다 탈출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 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벌어진 것은 아니고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다. 이 정도 정보만 알고 있다면 이 영화는 어딘지 추리 ,스릴러 영화일 듯하다. 막상 영화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고 드라마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사건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내용이 전개되는 듯하다.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에서 기와 결은 빠지고 전개만 펼쳐진다. 딱히 긴장된 상황을 보여주지도 않고 감정을 이입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내용이 전개된다. 뉴스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한 여인이 창고에 갇혀 있는 것은 맞았지만 그 안에는 5살 정도의 아들도 있었다. 여자는 7년 동안  그 곳에 갇혀 있었다. 창고를 개조한 룸이다. 사방은 막혀 있어 창문이 없다. 천정에 딱 하나 유리창이 있어 - 그것도 막혀 있는 - 그걸 통해 밖을 볼 수 있다.

실내는 원 룸이라 침대와 TV, 욕실, 씽크대 정도의 최소한의 장치만 있다. 조이(브리 라슨>은 닉이라는 남성에게 납치되어 이 곳에 감금되어 있다. 닉은 외부에서만 문을 열 수 있게 만들었고 본인이 들어오고 나갈 때만 어떤 장치를 만져야 한다. 먹을 것은 올 때마다 가져다 준다. 룸 안에서 조이는 아들인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와 살고 있다. 둘은 좁은 룸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시간도 보내고 음식은 적지만 풍성하게 먹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룸 안에 생활하는 두 모자의 상황을 보여준다. 닉은 들어올 때마다 잭은 옷 장에 들어가 있는다. 조이와 잭이 워낙 평화롭게 생활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고 있어 갇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솔직히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탈출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그 이후 닉을 처벌하는 과정이 그려 질 것이라 예상한 내 생각과 달리 그 부분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영화는 그보다는 조이와 잭의 상황에 좀 더 집중한다.

흔히 영화들이 룸에서 탈출하며 행복하게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안도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끝이 난다면 <룸>은 탈출하는 상황이 반 정도에서 나온다. 남은 시간 동안 조이와 잭이 현실에서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마저도 비참하거나 딱히 감정 과잉을 연출하지 않고 담담히 보여준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특정 장소에 갇혀있다 나왔을 때 과연 나는 적응을 하고 살 수 있을까. 그동안 변한 사회에 금새 적응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조이는 그나마 사회생활을 하다 감금된 상태였지만 아들인 잭은 상황이 다르다. 워낙 예쁘장하게 생기고 머리도 길고 얼굴도 하얘서 여자라고 생각했다. 잭은 룸이 모든 것이자 전부인 세계였다. 이 장소 이외가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엄마인 조이도 굳이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5살이라 설명할 방법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괜히 납치범인 닉의 심기를 거슬리는 행동으로 피해를 입을까 염려한 행동이 아닐까한다.

잭이 아는 세상은 책 몇 권과 뜨문 뜨문 보는 TV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 마저도 룸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 세상이 아닌 우주로 여기며 살았다 - 를 보여주는 걸로 알았다. 애니메이션과 실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게 사실을 전달할 때 잭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반항한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제 겨우 막 5살 생일이 된 아이가. 잭이 시체처럼 행동해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고 그들은 드디어 세상에 나온다.

영화에서 잭의 심리상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우려와 달리 아이답게 금방 사회에 적응한다. 늑대와 같은 동물과 자란 아이가 어릴 때 언어를 습득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터득하지 못해 결국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 달리 다행히 잭은 엄마인 조이와 함께  말하고 놀고 대화하며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정도다. 아마도 이제 겨우 5살짜리 아이라 금방 적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처음에 조이는 잘 적응하는 듯 싶지만 점점 힘들어한다.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를 영화에서 딱히 보여주지 않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조금씩 내면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이가 오히려 힘들어하고 어려워한다. 잭이 아빠가 납치범이라는 사실도 그녀를 짓누른다. <룸>은 이렇게 단순히 탈출한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반 영화와 달리 - 동화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살아있는 사람인 우리 - 그 이후 모습이 더 현실성있게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룸이라는 한정된 상황에 갇혀있었는데도 조이는 잭을 참 잘 키웠다. 상상력을 키워주고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했다. 세상에 나와 잭은 룸이 좋다는 이야기도 얼핏한다. 엄마와 단 둘이 있으며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고 경험해야 하는 여러 상황이 둘을 더 힘겹게 만든다. 이 영화는 '만약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만든다.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말이다.

<룸>으로 조이 역할을 한 브리 라슨이 각종 연기상을 휩쓸었는데 그 상은 잭 역할을 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에게 가야 마땅하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연기를 선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가 가상의 시나리오라고 해도 엄청난 일인데 이게 실화다. 영화를 다 보고 무척 궁금했다. 현재 조이와 잭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무 일 없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책으로도 있는데 읽기는 좀 그럴 듯 하다. 영화로 보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시체처럼 죽은 척 한 잭이 트럭에서 처음 하늘을 본 장면

p.s: 실화인 내용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영화보다 더 충격적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