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유명세가 덜한 편. 안다 해도 흥미를 갖고 읽는 경우는 드물게 느껴진다. 결혼하며 공간이 아주 넉넉하진 않아, 부모님 집에서 삼십여 권의 책만 선택해서 옮겨왔다. 고민에 빠지지 않고 바로 집어 든 몇 권이 있었는데, <주석 달린 앨리스>도 그중 한 권이었다. 앨리스의 거의 모든 것이 담긴 책이라 할 만한 책으로, <거울나라의 앨리스>도 수록되어 있는 책. 원작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신선함이 워낙 강렬해 아쉬움을 달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영화화되는 것을 보며, 오래전 원작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등장인물로 기이한 몇 가지 일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을지 우려했다. 다만 팀 버튼을 믿기에 이야기로 읽을 때보다 더 분명하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고, 개봉 한 달이 지나서야 품은 기대를 열어 봤다. 화려하고 고운 색, 나이를 완벽하게 감춘 예쁜 메이크업. 눈이 호강하는 예쁜 영상들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기대가 충족되었으니 이쯤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데,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작의 유명세가 비교적 덜하니 원작과 견줄 이들이 흔치는 않을 것 같은데, 원작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는 독자의 눈엔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영화에서 더 재밌게 그려진 것 같다. 

인격화 된 '시간'의 등장은 원작에 없던 부분. 흥미를 끌기 좋은 시간여행을 통해, 가족의 사랑을 풀어냈다는 점은 가족영화로서 안전한 완성을 이끌어냈다. 특히, 모자장수가 갈등의 핵심 인물이 되어 진짜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고 있음은 어느 캐릭터 덕에 후속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하는 대목. 그런 모자장수의 과거를 찾아가고 그의 가족을 만나는 이야기는 전작을 영화로 보았던 이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팽팽한 대립각을 세웠던 두 여왕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또 기존 캐릭터만을 고수하지 않고, 전작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심어 놓은 부분도 무릎을 치게 하는 팀 버튼의 능력.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이해할 테지만, 정말이지 시간은 초 단위로 소중하다.

영화로 새로이 제작되는 소설들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참 잘 만들어졌구나 느끼는 경우는 적다. 원작에 애정이 있을 땐 고맙게까지 느껴지는 이런 경우는, 소설의 핵심을 놓치지 않아 주었을 때다. 그대로 살려주는 것 또한 원작의 팬으로서 기쁜 일이지만, 새로운 재미를 주면서 원작의 핵심을 잘 살려줄 때야말로 가장 만족스럽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마지막 장과 앨리스의 마지막 말은 "누가 꾼 꿈이었을까?"다. 영화에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앨리스에게 모자장수는 말한다. "뭐가 현실이고, 뭐가 꿈인데?". 꿈과 현실의 분간을 모호하게 하는, 그래서 몽상가들의 바이블과 같은 앨리스 시리즈를 아끼는 사람들에겐, 이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를 앨리스의 영화라고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