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는 사람은 일반인과는 다른 사고구조를 갖고 있다. 일반인과 똑같은 잣대로 예술인을 바라보면 안 된다. 똑같은 사람이고 의식주를 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근본이라는 표현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좀 강한 어조를 위해 사용했다. 예술인에 대해 이중적인 모습을 참 많이 본다. 외국 예술가가 똘아이 같은 짓을 하거나 마약같은 것을 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역시 이유가 있구나. 그런 예술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한국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못 잡아 먹어 안달이다. 기본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은 자신을 파는 것이다. 자신을 파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나라는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그 벽을 깰 때 예술가의 행위는 발전한다. 각자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한계를 부딪치고 껍질을 깬다. 이 과정에서 보통 사람은 생각지 못한 다양한 짓을 한다.

우리가 예술적으로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치고 평범한 인간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된 사람은 사실 드물다. 싸가지 없다는 이야기도 듣고. 인간이 개차반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 인간에게는 그런 행동과 사고가 뛰어난 예술을 펼치는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위대한 예술가의 일대기를 보더라도 평탄한 인생을 산 인간이 없다.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룩하고 이름을 후대에 남긴 업적은 부럽지만 인간으로는 그다지 본받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한국에 위대한 예술가가 적게 나오는 이유라 본다. 한국은 특정 틀에 가둬두고 그 틀을 벗어나면 예술 여부와 상관없이 가차없이 팽한다. 잣대를 어디에 둬야할지 정확히 모르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각자의 개인주의로 여기면 좋겠다. 도덕적으로 깨끗하면 좋겠지만 인류 역사상 도덕적으로 흠결없는 예술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그런 면에서 워낙 인터넷이 발달하고 예술가를 공인으로 보는 잣대로 볼 때 아주 작은 실수도 한국은 매도당한다. 공인은 국민을 대표해서 일을 하며 업무를 보는 사람이라 본다. 공공기관에 속하는 사람이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언행일치를 해야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권유하고 주장하며 정책을 펼 칠 수 있다. 예술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예술적 재능을 사람들에게 알려 유명해진 사람일 뿐이다.

내가 이야기한 것도 궤변이라 할 수 있지만 외국에 비해 한국은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는 이런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지 않으면서도 조금 만만하다 할 수 있는 연예인이나 예술가에게는 공직자보다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 나처럼 평범하게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보나. 그럴 리 없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걸 근거로 행동하게 마련이다. 예술가 근처에 예술가가 많고, 평범한 사람 근처에 평범한 사람이 많은 이유다.

연기자를 보더라도 스펙트럼이 다양한 연기자일수록 상당히 폭 넓은 경험을 한 걸 본다. 직접 경험이 안 되면 간접 경험이라도 하며 폭을 넓힐 때 좋은 연기가 나온다. 연기자가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연기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본투비블루>는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좋은 예술가의 삶이란 그다지 따라하고 싶지 않다. 결코 평탄치 못하다. 그걸 자양분삼아 좋은 예술이 나온다.

쳇 베이커는 재즈를 잘 모르는 나도 이름을 알 정도다. 영화에는 마일즈 데이비스도 나온다. 솔직히 재즈하면 흑인 음악이고 내가 이름을 알 정도라 지금까지 쳇 베이커가 흑인인줄 알았다. 영화를 보니 백인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쳇 베이커(에단 호크)는 교도소에 있다. 정점을 친 후 망가질 때로 망가진 상태다. 다시 트렘펫을 불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마약이 그를 파멸시켰다. 마약 관리를 받는 상태고 모든 지원은 끝났다. 그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마약은 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다. 제인(카르멘 에조고)을 만나 그는 조금씩 다시 트럼펫을 분다. 앞니가 부러졌지만 틀니를 껴 예전과는 다른 자신만의 느낌을 준다. 마약을 안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영화 내내 트럼펫 연주가 나오는데 쳇 베이커가 직접 한 것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영화 제목인 <본투비블루>도 마지막에 가서 연주곡인 걸 알았다. 아닌가.(재즈 문외한이라) 사실 영화 내용도 어디까지 사실인지 여부도 모르겠다.

쳇 베이커 연주가 어떤지 잘 모른다. 그저 친숙한 음악을 들으면 좋다고 할 정도다. 영화에서 나오는 몇몇 곡은 친숙했다.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예술은 주변에 넘쳐난다. 인간에게 예술은 그렇게 신기한 작용을 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듯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 쳇 베이커. 어떻게 보면 그가 예술가가 될 것인가, 평범한 직업인이 될 것인가의 선택으로도 보인다. 그는 사랑을 포기한다. 예술가가 그렇다.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마디 : 무대 오르기 직전 두 가지 약을 놓고 고뇌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