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것 같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PC게임 열풍이 드세게 불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다.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한낯 과거미화에 지날지 모르겠지만, 그때당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제 아무리 지금의 <LOL>이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였다. 1가구 1PC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PC방 열풍을 불러일으킨데다, 'E-Sports'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8할이상의 공을 세운 걸작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걸작의 인기에 비례해, 제작회사인 '블리자드'의 인지도도 함께 증가한다. 블리자드가 내세운 트로이카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대성공, 10여년에 걸친 블리자드의 질주에 제동을 걸 요소는 가히 아무것도 없었다. 본인의 데스크탑에 이 게임들을 처음 설치하면 페이트인 되는 반짝이는 '블리자드 로고'를 보고 전율이 일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윽고 블리자드는 게임팬, 그리고 게임을 접었던 팬들까지 설레게 하고도 넘칠 역사적인 이벤트, 워크래프트의 영화화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제작을 천명한다. 그것도 블리자드가 공동제작으로 작품에 적극 개입할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트래비스 핌벨, 벤 포스터, 폴라 패튼, 도미닉 쿠퍼, 클랜시 브라운등으로 이어지는 살짝 기대에 못미치는 캐스팅으로 실망스럽게 하더니. 이내 1억 6000만달러의 제작비와 함께 선악구도가 아닌 입체적인 호드를 그리겠다고 선언한 던칸 존스 감독의 영입으로 다시금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어쨋든 베일에 가려졌던 그 작품의 실체가 드디어 공개되었다. 평단의 평은 온통 혹평일색 이지만, 이런 초호화이벤트에 평단의 평이 중요하랴. 내눈으로 직접 확인해야지. 영화가 시작된지 5분만에 전율이 일었다. 또다시 페이드인 되는 '블리자드로고', 이 로고를 스크린으로 보게될줄이야. 이건 분명 최면행위에 도입으로 이끄는 '레드썬'과 같았다.

본격적인 최면여행의 시작. 도입부터 영화의 굉장한 자신감이 도드라진다. CG로 칠해졌을 '듀로탄'의 클로즈업에 굉장한 디테일이 눈에 선명하다. 주름하나하나의 미세한 결부터, 나름의 눈알 연기까지. 이건 분명 <혹성탈출>의 '그것'과 비견될만 하다. 듀로탄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관의 영상미는 또 어떠한가. 시네마틱에서 잠깐, 상상속에서 잠시 그려왔던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액션에 대한 컨셉도 일단은 합격이다. 힘을 내세운 '호드'의 둔탁함과, 유연함과 영리함을 앞세운 인간(특히 안두인 로서)의 액션대결은 꽤나 볼만하다. 뭐니뭐니해도 백미는 마법사들이 보여주는 '마법'인데. 적절한 타이밍에 한번씩 나와서 그 부족한 2%를 완벽히 채워낸다. 

우려와 달리 스토리를 이해하는데는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워크래프트2>이후 게임을 플레이 하지는 않았으며, 그 세계관에 대해서도 일절 들은적이 없다. 물론 세계관을 미리 알고있다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수는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키워드는 '지옥마법'이다. '지옥 마법'이란 살아있는 것의 생기를 동력으로 힘을 발휘하는 사악한 마법을 말한다. 호드를 지배하는 흑마법사 '굴단'는 이 지옥마법을 통해 워프게이트를 열고, 반대세계에 있는 인간들마저 지배하려는 탐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호드의 수많은 족속의 한 족장인 '듀로탄'만은 지옥마법이 호드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굴단을 몰아내기위해 인간에게 다리를 걸친다. 고로 선악구도가 아닌 입체적인 호드의 모습이 완성된다.

굴단을 몰아내기 위해 '아서'와 '듀로탄'의 결탁, 특히 가장 입체적인 듀로탄의 활약을 보는 것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게다가 뒤에서 조용히 지옥마법의 비밀을 캐러다니는 마법사 '카드가'와 악의 법사 블랙핸드의 대결, 그사이의 메디브의 포지션이 상당히 흥미롭기는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던칸 존스'는 이러한 이야기가 갖고있는 잠재력을 100%이끌어내지는 못한다.

감상하면서 그 디테일함이 작품전체에 엄습하지 못할때 간혹 던칸 존스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는 분명 이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적절한 비중으로 분배할 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은 아닌듯 보인다. 가로나와 아서의 첫만남은 마치 테잎이 감긴듯 템포를 건너뛰어 버리고, 그들의 감정선은 갑작스럽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라 패튼'이 갖고있는 매력으로 보아, 가로나는 이 작품에서 발꾼의 씬스틸러다.) 호드와 인간 사이에 포지셔닝한 '듀로탄'이라는 캐릭터의 묘사가 아쉬워서, 이야기는 살짝 미적지근 하다. 클라이맥스에 아주 중요하게 접목될, 호드의 '전통'에 대한 묘사도 논리적이지 못하고 그저 언급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통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기 어렵고, 클라이 맥스의 카타르시스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크래프트의 열성팬이 던칸 존스는 팬들과 같은 눈높이를 가진 인물로서 이 작품의 '득'이기도 하다. 이것은 '팬들과 블리자드가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감독'이라는 말로도 치환가능하다. 게임의 화면비를 연상케하는 호드와 휴먼에 대한 '부감'과, 2시간이라는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했던 노력은 필히 인정할만하다.

게다가 이것은 불세출의 블리자드 걸작선의 첫 영화화가 아닌가. 이후에 행보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수 없지만. 적어도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블리자드의 행보를 지지하게 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시간문제지 그 언젠가는 스크린에서 맹크스와 대면한 감염된 사라캐리건이나, 다섯 전사들에게 최후를 맞이하게될 대악마 디아블로를 스크린을 통해 보게될 날이 올것이라 확신한다.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던칸 존스가 살렸고, 던칸 존스가 망쳤다.
★★★☆(6.8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