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정원]
로웰 2016.06.12 04:24:33
정말 딱 봄을 연상시키는 표지에 눈길을 끌었던 책이다. 그런데 내용도.. 어쩐지 봄과 닮았다. 요즘 나오는 책에 비해 상당히 얇은 편인 이 책은 빨리 읽는 것보다 책이 주는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을 떠올리며 느리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철거를 앞둔 낡은 연립주택의 몇몇 주민들의 일상을 담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어쩐지 그 모습이 참 정겨웠고 그리웠다. 요즘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서로 왕래를 안하다보니 이웃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삭막하다. 내가 어릴때만해도 이렇지 않았다. 보모님은 지금도 예전에 옆집에 살던 이들과 연락하고 지낼만큼 그렇게 가깝게 지냈었다. 함께 놀러가고, 서로의 대도사를 함께 챙기고. 책을 읽다가 문득 예전 동네의 정겨웠던 모습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그리워졌다. 주인공 다로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도 현재의 삭막함을 보이는 듯 보였다. 그러다 어느날 다로가 떨어뜨렸던 회사 사무실 열쇠를 '사'씨(연립주택은 1층 신, 유, 술, 해, 2층 진, 사, 오, 미로 번호대신 십이지가 붙어있는데, 다로는 그녀가 사호에 기거하고 있어 이름은 모르고 '사'씨로 인식하고 있다.)가 찾아주면서 이곳의 일상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연립주택 모든 주민들이 그러한 건 아니었지만.
다로에게 '진'호에 살고 있는 여자는 독특하고 수상한 여자였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것 같은데 볼때마다 항상 옆의 집 '물빛 집'에 시선이 가있다. 그러다 그녀의 요청에 자신의 집에서 그집을 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고. 대체 저 집의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집착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귀찮은 건 딱 질색인 다로인지라 이내 관심을 끊으려고 한다. 그런데.. 자꾸 '진'씨와 마주치고 그녀와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이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게 되었다. '진'씨는 사실 그 집 때문에 이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그 집이 보고싶어서. 그녀는 우연히 '봄의 정원'이라는 사진첩에서 그 집을 알았고, 사진첩을 보며 처음으로 결혼이라든지 사랑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그 집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하지만 그 사진첩을 냈던 그 집의 본래 주인 부부는 사진첩을 출간한 이후 이혼을 해서 서로 각자의 길을 갔고, 그후 그 집은 여러번 주인이 바뀐 상태였다. 그럼에도.. 사진첩 속 집이 아닐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그 집이 실제로 보고 싶은 것이다. 독특한 사연으로 시작된 이웃간의 만남은 연립주택을 좀더 사람이 사는 듯한 분위기로 만들어 놓는다.
읽는 내내 참 따뜻했던 옛 동네의 분위기가 어쩜 이렇게 떠올랐는지 모른다. 성냥갑 같은 회색 빛 건물 속에 갇힌 채 누군가와의 교류를 잊고 사는 내게 정겹고 즐거웠던 옛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든 소설. 주민들의 공동체적 분위기가 있었던 그때가 참 그립다. 잔잔하지만 그게 또 매력인 소설이다. 따스함이 있고, 정겨움이 있으며, 슬며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봄과 참 잘어울리는 한편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