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과 고산, 해안선과 평원은 인류의 역사를 빼곡하게 담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토착민들, 최초의 영국 선원들, 정치범들 등 근대 칠레의 역사를 지나온 이들의 기억이 신비로운 자개 단추를 매개로 연결된다. <칠레전투>의 거장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신작 다큐.”

처벌받지 않는 건 두 번 살인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찾아내는 것이 가야 할 길의 끝은 아닙니다

단지 시작일 뿐이죠

패트리시오 구즈먼

구즈먼의 작품(들)은 ‘칠레 전투’ 3부작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워낙 인상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인지 (그것 말고도) 그의 여러 작품들을 꾸준히 찾아보고 있었는데, 그의 최근작인 ‘자개 단추’는 발표가 되었는지도 몰랐었고 (우연하게 알게 되었고) 알자마자 곧장 찾아보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는 기대했던 만족 보다는 실망이 앞서게 되는 것 같다.

후반부에 가서는 익숙한 관점과 이야기 그리고 결국에는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일관된 흐름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를 찾게 되기보다는 헐겁고 느슨하게 나눠져 있는 것 같고 후반부의 논의를 위해서 앞선 내용들을 얼기설기 엉켜놓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인지, 끝을 위해서 앞선 내용들을 들려주고 있을 뿐이고 어수선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실망하게 되기도 한다.

전체적인 유기적인 완결성을 찾기는 힘들었었다.

이런 저런 논의들이 듬성듬성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칠레가 겪었던 참혹함을

패배와 힘-지배-권력에 의한 힘-지배-권력을 위한 반복되었던 죽음들을

수많은 세월 속에서 거듭되었던 잔혹함으로 가득했던 시대를

이미 (이방인이고 외국인으로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전율과 충격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반복되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칠레 역사의 시작이 그렇기 시작되었음에 대해서, 칠레에 대한 음울한 이야기(들)를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하고 있는 ‘자개...’는 약간은 억지를 혹은 지나치게 많은(혹은 다양한) 것들과 추상적인 내용들까지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느끼게 되기도 하고,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얼핏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미 칠레 어두운 역사에 관해서 많은 것들을 다뤄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좀 더 본연의 입장에 (은폐되고 덮어졌던 진실들을 낱낱이 밝혀내는 것에) 집중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노스탤지어 포 더 라이트 / 빛을 향한 그리움’은 충분히 그런 방식 속에서 다른 접근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설득력과 의도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자개...’는 너무 나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 정복자들에 의해서 원주민들이 겪었던 그 고난과 슬픔을 현대의 칠레 사람들이 겪었던 비극과 이어지도록 하려는 의도에 일종의 연대와 이해로 생각되기 보다는 지나친 해석과 이어붙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천년 전 과거에서 지금 현재까지

수정조각에서 시작해서 바다 속 자개 단추로 이어기는 과정을

광활한 사막과 우주에 대한 관찰과 탐구와 과거에서 지금까지의 역사의 이어짐을

우주와 물을 그리고 물을 통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있고

근대 초기 원주민들이 겪었던 침략을 통해서 정복자들에 의해서 겪었던 고통과 고난, 핍박으로 가득한 고된 삶과 

원주민들이 우주와 자연과 교감을 갖으려고 했던 여러 방식들을

이제는 그동안 이어지고 대물림 되었던 원주민들의 언어와 지식 그리고 경험들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잃어버릴 운명이 예감되는 그들의 언어와 삶의 태도 그리고 삶의 방식들을

문명화 된 혹은 강요된 삶을 경험했던 제미 버튼으로 대표되는 원주민들이 겪게 된 과거와 현재의 급격한 압축과 만남을 그리고 그런 만남을 머나먼 우주와의 만남으로 재해석하는 감수성을

우주와의 만남과 교감을 아름답게 말하면서도 시간을 뛰어넘는 그 교감을 폭력적으로 경험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죽음들을 만들어냈던-생산해냈던 문명과 원주민의 만남을 그 다른 세계와 시간의 만남과 경험 그리고 충격을

원주민들이 겪었던 식민시절을 고문과 학대 폭압과 억압 그리고 야만으로 가득했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이후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시절과 연결하면서 머나먼 과거를 지금 현재로 연결하려고 한다.

역사가 시작되던 그 순간과 가장 최근의 음울한 시대를 긴밀하게 연결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시도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과도한 해석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다뤄짐 속에서 그런 삶을 그리고 그런 죽음을 원하지 않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괴롭힘과 고문과 학대 그리고 원인 모를 병과 죽음을 생각한다면 이런 식으로 따져 묻는 평가가 과연 무엇을 위한 평가인 것인지도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마디 꺼내면서도 이런 생각이 교만하고 철없는 생각인지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여전히 확인되지도 않는 그 죽음과 고통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조선 시대 말에 겪었던 외세의 침략과 여러 혼란스러운 과정 속에서 겪게 되었던 수많은 죽음들을, 일제강점기 시절의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고통과 원한 그리고 죽음들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름 없는 죽음들과 어딘가에 묻혀 있는 죽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원한과 억울함(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니 과연 세상은 얼마나 나아진 것인지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두운 시대를

참혹한 과거를

칠레와 한국에서 있었던 그 우울하고 음울했던 시대를 생각해보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