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게, 이질적이지만 이질적이지 않게
한마루 2015.11.18 15:22:33
★★★☆
" 우리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었다 "
< ▲ 김신부의 구마 의식에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밝히는 가톨릭 교구
그래서 김신부는 '비공식적'으로 구마의식을 준비해가게 됩니다 >
<검은 사제들>은 어떤 영화인가? 영화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했던 러닝타임 26분짜리 단편 영화 <12번째 보조사제>에 등장했던 최부제와 김신부, 그리고 영신의 이야기를 장편 영화로 확장하고 있는 <검은 사제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엑소시즘'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면서 장재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본 영화에서 이 세 인물 김신부, 최부제, 영신은 각각 김윤석, 강동원, 박소담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헐리우드 공포영화의 단골 레파토리인 '엑소시즘'(Exorcism)
영화속에서는 '구마'(驅魔)란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 이것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
< ▲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12형상'중 하나와 이 형상의 숙주가 된 소녀 '영신'(박소담)
가톨릭 교구는 영신을 위한 구마 의식에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힙니다 >
<엑소시스트>의 성공 이후로 헐리우드 공포영화의 단골 레파토리가 되어 있는 '엑소시즘'은 상당히 많은 작품들을 통해서 다양한 모습들로 변주되긴 하지만 언제나 비슷한 모습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한계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엑소시즘을 소재로 하는 작품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비슷한 모습의 퇴마 의식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곧 영화의 정형성이자 한계로 연결되기도 했던 것이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엑소시즘(영화에서는 '구마'라는 단어로 표현)을 헐리우드가 아닌 우리 영화가 선택하고 있으니 바로 이 작품 <검은 사제들>입니다.
카톨릭의 비밀단체 '장미 십자회'가 쫓고 있었던 12형상
그 중 하나가 한국에서 발견되고, 숙주가 된 소녀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뇌사상태가 된 그녀의 몸속에 여전히 남아있었던 그 형상
< ▲ 합창단 연습이 싫어서 덜컥 '보조 사제'의 자리를 수락하게 되는 '최부제'(강동원) >
17~18세기에 존재했다고 하는 동명의 단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은 카톨릭의 비밀단체 '장미십자회'에서 쫓고 있었던 12형상중 하나가 한국에서 발견되었고 그 형상을 제압하는데 성공한듯 했지만 그 힘을 완전히 억누르지 못하여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새로운 숙주를 찾아내게 된 형상은 한 소녀 '영신'(박소담)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소녀를 위해서라도 '장엄구마의식'(엑소시즘)을 진행하려고 했던 김신부(김윤석)였지만 이성적이면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가톨릭이었기에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대교구는 공식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취합니다. 하지만 이는 곧 비공식적인 묵인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김신부는 구마의식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의식의 보조사제로 신학 대학의 꼴통 최부제(강동원)가 함께 하게 되구요.
'구마 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폭풍전의 고요'와도 같았던..
< ▲ 구마 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다시 떠오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마치 누군가 그의 의식을 조종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던.. >
이처럼 <검은 사제들> 역시 여타의 엑소시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그 '의식'에 힘을 주고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허투루 낭비하진 않습니다. 차근차근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하루라는 음력 7월 15일을 준비하는 김신부와 최부제. 특히 처음에는 이 일을 그냥 가볍게 생각했던 최부제였지만 이 일과 연결이 되면서 되살아나버린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김신부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들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특히 '도움'보다는 '감시'를 위해서,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겠고, 이제 그를 말려야겠다는 가톨릭 교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던 최부제였기 때문에 이 의식을 대하는 그 역시 처음에는 믿음 보다는 불신이 더 강했었고 첫 만남부터 대립각을 세웠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부제의 마음은 더 굳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음이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이처럼 <검은 사제들>의 초중반부 이야기는 마치 '폭풍전의 고요'처럼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흔한 엑소시즘에 대한 우려도, 한국 영화의 엑소시즘? 이란 의구심도
모두 날려버릴만큼 상당한 에너지를 폭발시키던 후반부 구마 의식
< ▲ 첫만남부터 삐걱거렸던 두 사람, 하지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험 천만한 상황에서 공통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칩니다 >
그리고 이렇게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는 후반부는 '흔한 엑소시즘'에 대한 우려도, '한국 영화의 엑소시즘?'이라는 의구심도 날려버렸던 것으로 상당한 힘이 느껴지는 장면 장면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도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번잡한 서울 도심 한가운데 마치 외딴 섬처럼 덩그러니 떨어져있던 그 곳에서 진행된 이 의식은 익숙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익숙하지만은 않은 모습으로, 그리고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결코 이질적이지 않은 느낌으로 그려지고 있었고 이는 충분히 유효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느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퇴마 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굿'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이야기에 동양적인 맛을 더하고 있고 후반부에 이어지는 상황들은 제법 스케일 있는 '추격 스릴러'의 느낌이 나기도 했던 것들로 이야기에 또다른 재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세 명의 배우, 특히 신예 여배우 '박소담'은 놀랍네요
< ▲ 상당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던 박소담, 이 작품은 분명 이 신인 여배우의 전환점이 될 것 같네요 >
특히 이러한 '엑소시즘'이 주가 되는 작품의 경우에는 한정된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는데 <검은 사제들>의 세 배우들은 모두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 해내고 있었습니다. 김윤석씨는 언제나 그렇듯이 기복없는 연기로 이야기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아주고 있었고 '꼴통'이라고 불렸지만 내면의 아픔을 안고 있었던 최부제 역의 강동원씨는 의식 과정에서 자신마저 시험에 빠졌고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어린 시절과 다시 한번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지만 다른 선택을 통해 한층 성장해갔던 그의 복잡한 심리를 훌륭하게 표현해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특히 놀라웠던 것은 신예 배우 '박소담'의 연기더군요.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그 모습을 봐왔고 개성있는 배우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그 폭발력은 이 영화를 이끌어간 하나의 큰 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때문에 이 작품은 박소담이란 배우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큰 이정표가 될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형상'이란 과연 무엇일까?
< ▲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돼지, 직접 확인 하시는 걸로 ! >
그렇다면 영화에서 말하는 '12형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전쟁과 재난 등의 모든 참사 가운데 숨어 있고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함께 한다는 그들, 자기 존재가 알려지만 깊숙히 숨어버린다는 그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의 빛을 끄기 위해 왔다고 말하는 그들, 인간이 원숭이임을 밝히기 위해 왔다는 그들, 그냥 밖에 사람들처럼 모른척하고 살라고 말하는 그들. 하지만 그들이 그 존재를 들키게 된다면 인간은 신을 믿게 된다는 이야기. 과연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무엇일까요. 그 실체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의 주위에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그것, 이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어쩌면 단순한 '악'이라기보다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슴에 품어 봤을 미움, 증오, 죄책감과도 같은 어두운 이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부제' 역시 시험에 빠졌던 것일텐데 그럼에도 인간은 인간을 존경하기 때문에, 모두가 '구원'을 통해 평안함을 찾아가던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던 작품 <검은 사제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