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절묘한 첫 문장이 영화에선 어떻게 그려질까 몹시 궁금했다. 시간순으로 사건을 친절히 보여주느라 와트니의 첫 마디는 시시콜콜한 수다였다. 자연스럽긴 했지만 원작 만큼 타격 있는 첫 장면은 아니었다. 원작에서 느껴졌던 신선함을 영화 관객들과 나눌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관객들과는 안테나의 위험성을 더 깊게 공유할 수 있겠지만. 호평만 할 예정이라 옥에 티 정도로 불만을 짚자면 설명적인 마지막 장면들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헤이 데얼? 미소 짓고 끝났으면 싶었는데, 마무리의 집념 같은 걸까. 루이스의 디스코 외엔 청각적 자극이 부족했던 건 그보다 살짝 더 진한 불만. 와트니의 마음을 느끼게 될 뿐, 기억에 남는 음악이 없다니.

와트니의 일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사건의 발생 시점을 충실히 따른다. 진행 과정에서 와트니가 더 많은 욕을 뱉어대고 특유의 긍정으로 순식간에 극복한 고비들은 아주 많이 생략됐다. 덕분에 원작에 실린 긴장감은 훨씬 증폭됐고, 감정은 절제되어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수다스러운 와트니가 쉴 새 없이 기록하는 이야기들이 사라지니 그를 이해할 단서가 줄어든 것 같기도 했지만, 화성을 떠나며 그가 터뜨리는 울음에 더 극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꽉꽉 눌려 담겨졌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때, 화성에서 그가 홀로 이겨내야 했던 힘겨운 시간이 눈물 나게 와 닿았다.

이게 바로 거장의 힘. 같은 대사로 같은 사건을 담아도 어떻게 시각적으로 감정을 전할지 리들리 스콧은 분명히 안다. 우주가 주는 장엄함의 메리트는 음향의 욕심과 함께 과감히 포기한 듯하지만, 절제하고 참았다 터뜨리는 감동의 순간을 그는 감칠맛 나게 표현했다. 조한슨과 벡의 러브라인의 표현도 담백하고 애틋한 정도라 좋았다. 아쉬웠던 순간은 앞서 불평한 엔딩과 공개 채팅임을 밝혔을 때의 마지막 와트니의 메시지를 생략한 부분뿐이었다. 이게 어때서?

[12:04] 제트추진연구소  :  그리고 말 가려서 해. 자네 메시지가 전 세계에 생중계 되고 있거든.

[12:15] 와트니 :  보세요! 젖탱이예요! --> (.Y.)

와트니를 이렇게나 잘 보여주는데 말이다. 여하간 캐스팅은 또 얼마나 완벽한가. 엘론드 회의에 착석한 미치가 보로미르라니. 게다가 어떻게든 숀 빈을 죽음 비슷한 것으로 내모는 철두철미함이란. 맷 데이먼이 만 박사였어도 와트니여야만 했음을 영화 내내 증명한 것은 물론이다. 개봉일인 어제가 그의 생일이다. 그는 이제 다시 돌아와 다행인 우리의 와트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