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없는 한밤에]
로웰 2015.10.09 00:09:55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집을 만났다. 사실 처음엔 그간 읽었던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나와 맞지 않았어서 읽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장편이 아니라 중편이라는 점이 끌렸다. 그것도 30년만에 나온 중편집!!! 중편은 좀더 읽기 수월하고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책은..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고 있었다. 4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을 뿐인데 600페이지 가량 된다. 부담스러운 두께였지만, 단편이라 끊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 부담감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늦은 저녁, 할일을 다 끝내놓고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쳐들었다.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복수'와 관련이 있었다. 첫 이야기 첫장을 읽는데.. 오?! 이거 느낌 괜찮은데?! 그간 만났던 그의 작품들과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신이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번째 이야기 (1922) : 윌프리드 릴런드 제임스는 1922년 6월, 당시 14살이던 아들 헨리 프리먼 제임스를 끌어들여 아내를 살해하는 죄를 저지른다. 이유는 네브래스카 주 헤밍퍼드홈에 있는 비옥한 토지 40만 제곱미터 때문이었다. 그 땅은 아내 알렛이 장인에게 물려받은 땅이었는데, 아내는 그 땅을 팔고 오마하로 이사를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윌프레드는 대를 이어 물려받은 자신의 30만 제곱미터의 농장에 아내의 땅을 합치고 싶어했다. 날이 갈수록 의견대립은 심해졌고 급기야 윌프레드는 아내를 죽이고 싶을만큼의 증오심을 갖게 된다. 결코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을 깨달은 윌프레드는 사랑하는 아들 헨리까지 끌어들여 계획을 실행한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농장에 있는 버려진 우물에 칼로 난도질해 죽인 아내를 던져 넣은 윌프레드는 아내를 제대로 매장을 하려다가 쥐들에 의해 알렛의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보게된다. 이후 그는 쥐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다. 아내 알렛이 쥐를 조종해 나타난다는 환상을..
그냥 깔끔하게 이혼을 하는게 나앗을 것을.. 멀쩡했던 자신의 가정을 깨뜨린건 윌프레드 자신이었다. 아들의 인생마저 망쳐버렸으니 그의 비참하기까지한 죽음은 마땅한 벌이라 해야겠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어떤 끔찍한 결말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너무 잘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꼭 저렇게 아내를 아들이 보는 앞에서 난도질 했어야하는거야? -_-; 아.. 그 장면의 묘사들은.. ㅠ0ㅠ 끔찍...!!!
두번째 이야기 (빅 드라이버) : 30대 후반의 작가 테스. 브라운 배거스 북 클럽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고 강연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꽤 즐겁게 강연을 마치고 북클럽의 사서 라모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지름길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가에 떨어져있던 폐목재 때문에 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사고를 겪게된다. 하필 그 곳은 차도 잘 안다니 않았고 근처에는 폐점한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었으며 심지어 휴대전화는 통화권 이탈이었다. 공포 혹은 미스터리 소설의 규칙들이 딱 들어맞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에게 벌어진 이 상황이 미리 계획된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하게 된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까? 구형 포드 F150 픽업트럭이 나타났고, 그녀는 그 트럭의 운전자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싸..하다! 그녀의 예감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트럭 운전사에게 강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갔고, 기적적으로 그 상황을 탈출했다. 신고를 하려다 생각을 고쳐먹은 테스는 직접 복수에 나선다.
테스가 직접 복수를 하는 부분부터 마지막 결말까지가 좀 아쉽다. 너무 쉽게 복수가 진행된게 아닌가 싶다. 뭐.. 장편이 아니니 중편에서 너무 디테일한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평범한 여성이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일말의 망설임 없이 복수를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걸까? 그리고 자식이 잘못했으면 혼을 내고 죗값을 치루게 했어야지, 그걸 감싼데다 범죄를 돕기까지 하는 부모라니. 정말이지 최악이다. 자기 자식이라고 무조건 감싸고도는 잘못된 교육이 어떤 결실을 맺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세번째 이야기 (공정한 거래) :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스트리터는 우연히 눈에 띈 한 남자 엘비드와의 거래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꾸게 된다. 15년간 혹은 그 이상이될지 모르는 시간을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게 살게되는 대신, 스트리터는 엘비드에게 앞으로 15년간 연소득의 15%와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한다. 그리고 그 제물로 선택된 인물은 불알친구인 톰 구드휴였다. 잘생기고 운동 신경도 타고난데다 자수성가로 갑부가 되어 있는 톰은 대학 때 스트리터의 여자친구였던 노마와 결혼해 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 아이들도 톰을 닮아 성격도 좋고 잘났다. 그런 톰을 스트리터는 겉으론 한없는 우정을 보여왔지만 속으론 시기와 질투를 해왔던 것이다. 거래가 성사된 후.. 톰에게 불행이 연달아 찾아오기 시작한다.
아.. 최악이다. 시기도 질투도 정도껏해야지. 이건.. 친구가 아니라 잠재된 적이었어!!! 우정이란게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니 참.. 보잘것 없다. 친구를 불행의 늪으로 밀어버리고 그 모습을 은근히 즐기는 그 모습이라니. 소름까지 끼친다. 마지막 부인과의 대화가 압권. <"인생은 공정한 거야. 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 동안 주사위 두 개를 굴리다가 어느날 휙, 던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어떤 사람은 7이 연달아 나오기도 하지.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1이 두 개씩 나오기도 하고. 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곳이야." (P. 460)>라니. 누군가 스트리터에게 톰과 똑같은 불행을 안겨줘야 공정한거겠지. 나쁜놈!!
네번째 이야기 (행복한 결혼생활) : 다아시는 회계사 앤더슨과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27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왔다. 합의와 타협으로 서로 의견을 나누며 이어왔던 행복한 결혼생활에 어느날, 갑작스럽게 금이 갔다. 리모콘의 배터리가 떨어져 차고에 갔다가 남편의 비밀을 알게된 것이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를 알게된 순간, 다아시는 충격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과연.. 나는 내 남편을 잘 알고 있는게 맞는걸까? 남편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까?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서로 개인의 시간이 있기 마련. 그 시간에 자신의 아내, 혹은 남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다 알 수가 없다. 몇십 년을 살을 부대끼고 살아온 반려자가 만일 연쇄 살인범이라면..? 마지막 작품은 이런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의 심정을 아주 제대로 표현해 놓은 작품이다. 가장 믿을 수 있고, 앞으로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이가 알고보니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된다는 설정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네 편 모두 재미나게 읽었다. 가독성 짱! 이 분.. 장편보다 중편이 훨 좋다!!! 이걸 읽고보니 그간 외면하고 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궁금해진다. 그건 장편이긴 해도. 왜 그간 장편들은 그렇게 가독성이 떨어졌던 걸까.. 미스터리..!!! 어쩌면 뻔하게 흘러갈지도 모를 복수극에 제대로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 다시금 스티븐 킹의 작품에 눈을 돌리게 만들만큼 매력을 가진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