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 과제처럼 느껴지곤 한다. 우러러 보는 사람을 마주하게 될 때의 설렘 이면에는 늘 두려움이 있다. 그의 앞에 앉은 내가 그 증명의 과정에서 모자람이 간파될까 조마조마해지는 것이다. 다시 만나기 어려울 땐 더하다. 한 번의 만남으로 내가 기억된다면 좀 나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다. 종종 부담이 심해지면 만남을 피하고 싶어 진다. 기다리던 일이었다 해도 말이다. 수전 손택을 만난다는 것, 그녀와 대화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껏 앞에 앉아 봐야 그 자리에 사시나무로 심어지지는 정도가 아닐까.

그런 두려움 없이 수전 손택을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특별하다. 인터뷰를 기록한 글을 읽는 건, 내가 누구인지 밝혀야 할 부담도, 내 의견을 답하거나 반응을 보여야 할 책임도 전혀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들킬 위험 없이 대화를 엿듣는 느낌도 든다. 칸트는 말했다. 위험으로 인식한 대상을 안전한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을 때 숭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이렇게 제멋대로 해석하라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분명 마주 앉았다면 불편함에 온 신경이 쓰여 그녀의 말을 집중하여 듣긴 어려웠을 것 같다. 

마음 편히 그녀의 말을 읽는 동안, 다른 에세이나 그녀를 담은 사진으로 대할 때보다 더 인간적이고 당당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문화와 예술 전반에 걸친 지적인 글과 예술활동들 뿐만 아니라, 대중을 여러 모로 자극할 삶을 살기도 했던 수전 손택. 스스로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명성이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시각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체감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에 발화된 이 솔직하고 단호한 말들은 유명세를 한껏 지닌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훌륭한 단서다. 

조너선 콧과의 인터뷰 일정을 잡으며, 서두르지 않으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릴 거라고 우려했다는 손택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계속해서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내가 조금씩 다른, 늘 같지만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손택의 말을 거치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도 젊은 시절엔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연연하던 때가 있었을 테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렇게 믿기 시작한 건 아닐까. 그녀가 사후에 자신의 오랜 일기를 공개하고자 했다는 사실은, 그 역시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한 인간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요.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그러나 제 독서는 전혀 체계적이지 못해요. 굉장히 빨리 읽는다는 점에서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죠. 대다수 사람들에 비해 저는 속독가라고 생각되는데,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유리하지만 어디 한 군데 진드근히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단점도 많아요. 저는 그냥 전부 흡수한 후에 어디선가 숙성되기를 기다리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식하답니다. 구조주의나 의미론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아마 말을 못할 거예요. 바르트의 한 문장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느낌을 감지할 수는 있어도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지는 못해요. 그래서 이런저런 관심사를 갖고 있는데, CBGB에 가기도 하고 그런 다른 일들을 하기도 해요. (66쪽) 

직선적인 논증을 활용하는 에세이 형식이 전 굉장히 답답해요. 만사를 실제보다 훨씬 연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제 마음이 이리저리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데다, 논증이란 건 제게 사슬의 고리보다는 바퀴의 살에 더 가까워보여요. (95쪽)

저는 이미 알고 있고 이미 상상한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주 싫어요.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를 모르는 게 좋고, 또 그러면서도 한참 멀리 길을 떠나 있다는 느낌이 좋죠. 출발점에 있는 건 싫지만, 그 끝을 보는 것도 싫어요. (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