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의 휴가를 쓰고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연애의 온도>. 시고 쓴 연애 감정을 잘 그렸다는 호평을 들어 기대하고 봤지만, 정작 보이는 건 동희는 왜 짤리지 않는가 였다. 술 마시면 사람을 패고 화가 나면 뒤집어 엎는 성격도 무난히 팀장 달고 회사를 다닐 수 있음이 놀랍다. 복잡다단한 연애사로 회사를 뒤집어 놓고도 자기 감정만 생각하며 버젓이 출근하는 두꺼운 낯짝에도 놀랍다. 같은 이유로 영이도 참 독하다. 저 풍파를 견디며 어찌 회사를 다니는가. 은행 입사가 워낙에 힘이 드니 그만두고 다시 도전할 생각은 못 하는 걸까. 은행 업계는 잘 모르겠지만 저러고도 잘리지 않고, 그만두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남들은 공감이 많이 간다는 이들의 연애. 다들 이렇게 힘들게 연애하시는 건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해보기도 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죽일 듯도 싸워보고, 핵심의 사내연애도 유경험자지만 생각보다 공감이 많이 되진 않았다. 특히 두 사람이 결혼을 말하는 장면은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무엇을 위해 결혼을 결심하는 건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관계 자체에 집착해 놓지 못해 본 적은 있지만, 이 정도로 불안했나 싶다. 매일 울고 힘들었던 것 같긴 한데, 참 간사하게도 지금의 관계가 행복하니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도 저렇게 시렸나 생각하면 아무 감정이 없다. 영이의 기대처럼 상처가 아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거니까, 헤어진 것조차 기억 안 날 때가 오는 거니까. 지금의 사랑으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연애의 온도는 식어버릴지 몰라도, 사랑의 온도는 다른 이름으로 계속 따뜻할 수 있다는 걸. 

그래도 빗 속에 앉아 울고 마는 놀이공원에서의 영이는 이 영화에서 비교적 와닿는 부분이었다. 잘 해보려 애 쓰고, 그런 내 모습이 처연해 터지는 눈물은 얼마나 서러운가. 또 얼마나 외로운가. 누구와 함께하든 외로운 순간은 오고, 영이처럼 울 수 있는 때는 온다. 이때 필요한 옆 사람은 내 외로움을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매 순간 그럴 수는 없겠지만, 다른 순간에도 기억하고 힘을 낼 수 있는 다정함을 주는 사람이. 그런 의미에서 울고 있는 영이를 향한 동희의 반응은 헤어짐을 향한 결정타였다. 동희를 향한 영이도 마찬가지. 동희도, 영이도 너무 외로워보였지만 서로의 외로움을 들여다 보지 않으면서 사랑이라니. 서로의 외로움에 더 마음을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을 서로 만났으면, 나에게만 향하지 않는 사랑을 찾았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