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동화책 주제에,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동화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안다.

동화책도 충분히 짧고 굵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동화책이라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도서관에서였다.

처음엔 제목에 끌렸다.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이라니, 흥미롭지 않겠어?

진부한 호기심 유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엔 책에 손을 뻗는 내 모습에 웃으며 대충 한두 장 훑어보았다.

그저 그랬다.

다른 동화책을 두 권 정도 더 고르고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을 펼칠 때 묘한 흥분을 느끼며 천천히 읽었다.

아주 천천히 읽었다. 정말로.

정확히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제일 오래 걸렸다.

내가 이걸 읽는 동안 옆에서 누워서 다른 책을 읽던 친구는 잠들어 버렸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일단 줄거리를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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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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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한 쪽 한 쪽 책을 넘길 때마다 동물들은 책에 흔적을 남기듯 아닌 듯 무심하게 얼쩡대다 그냥 가버린다.

그리고 한 여자아이가 책을 집어 들고 읽는다.

난 처음엔 동물들이 흔적을 남긴 걸 아이가 읽고, 그걸 아이 시점으로 독자들에게도 보여주는 그런 귀여운 내용으로 감히 어림짐작했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 책의 제목대로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는 책을 읽으며 춤을 추다, 엄마를 따라가버린다.

그 후 동물들은 옹기종기 모여 함께 읽으며 활짝 웃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숲 속에 책 표지로 된 이불을 덮고 잠들어있는 여자아이와 동물 인형들을 볼 수 있다.

 먼저 내 9살 된 여동생의 감상을 이야기하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겠다..

생각할수록 이 책이 어렵게 느껴져서 부탁했는데, 역시 아이들이라 그런지 읽자마자 답이 나왔다.

동물들이 책을 읽으며 웃은 이유는 책 속에 여자아이와 자신들이 나와서 웃은 것이고, 마지막 숲 속의 장면은 책 속에 여자아이와 동물들이 나온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여자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왜 춤을 추는 거야?"하고 물었더니

"그건 여기 안 나와있어서 몰라!"라고 했다...

동생들한테 책을 읽어주면서 느끼는 건데 아이들은 대체로 강렬한 장면 한 두 장면 외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강약 조절(특히 시각적인 면, 일러스트)이 중요하다.

몇 년 동안 동생들의 독서를 관찰한 결과 '약약중강'이나 '약중중강'의 스토리 짜임이 잘 전달이 되는 듯하다(※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동화책은 잘 만들어진 동화책이다.

매우 '약약중강'스럽다.

핵심을 강조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곳에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번엔 위의 글과는 다른 해설을 해보겠다.

사실 나도 처음엔 동생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 다른 해설도 되는 듯해서 위의 닫힌 결말은 배제한 이야기를 풀어볼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자체인 것 같다.

나는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을 펼쳐 보았지만, 그와 동시에 결국엔 보지 못 했다.

책 속 동물들과 여자아이는 아무도  펼쳐 보지 못한 책을 펼쳐 보았지만,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보지 못 했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읽어온 책 중에서 이 동화책만큼 많은 스토리를 가진 책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책의 스토리는 생겨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아무도 펼쳐 보지 못한 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독자의 수만큼 이야기가 늘어간다.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 이 책의 내용을 좌우한다.

정말 완벽하게 열린 결말이다.

마치 아직 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마치 마지막 장을 넘기면 나오는 비어있는 속표지에 우리의 생각, 느낌, 이야기가 담길 것처럼.

솔직히 이 책을 사기 전이나 읽기 전에 리뷰를 보는 건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암기 교과목에는 족집게 선생님이 큰 도움이 되지만, 창의 논술 시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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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 시간이 있겠다!

하지만 책이 책이니만큼 일러스트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 유념해 주시길.

▲사진은 나중에 새 책으로 다시 올릴 예정이다.

 겉표지는 신비한 느낌이 나면서 왠지 마법서를 보는 느낌이다.

펼치면 마법진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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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를 열면 나오는 빈 속표지.

 겉표지와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맨 뒤의 속표지도 비슷한데, 다 읽고 다시 빈 속표지를 마주했을 때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암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부족한 이야기는 우리가 채울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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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함께 이야기가 바로 시작된다. 책의 분위기나 컨셉상 어울리는 설정이다.

만약 다른 일반적인 동화책들처럼 제목과 글쓴이가 쓰여있고, 그다음 장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면 몰입에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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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 기법이 좋았다.

거칠면서 섬세하다.

동화책 전반적으로 같은 느낌인데, 빛바랜듯한 느낌과 희다기보단 누런 바탕에 진한 갈색과 스크래치로 표현했다.

게다가 한번 사용한 스크래치는 다시 사용하지 않고 다 다르게 그려놓아서 더 좋다.

그런 느낌 탓인지 책이 낡고 찢어져도 오히려 책의 분위기가 깊어지게 된다.

​토끼 옆을 보면 찢어지고 접혀서 접힌 부분이 잘 펴지지도 않는데, 자연스럽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빈티지와 빈티는 한 끗 차이인데, 이 책은 멋들어진 빈티지 그 자체라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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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털이 잘 표현되어 있다. 다른 동물들도 이런 식이다.

 동물들도 특징이 잘 잡혀있다. 특히 털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

제법 몸집이 큰 곰도 어느 한 군데 대충 한 곳이 없이 섬세했다.

대충 읽으면 알아차리지 못 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신경 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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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꾹 밟고 지나간 호랑이... 진짜 몰랐니?

 또 동물의 몸이 책을 향해 있든, 가던 길을 가고 있든 시선은 전부 책을 향해 있었다.

심지어 책이 있는 지도 모르고 밝고 지나갔다는 호랑이도 모순적이게도 책 쪽으로 시선이 가 있었다.

이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니까 몇 가지 생각해보자면...

첫 번째로는 딱히 동화책이라 쳐다본 게 아니고 뭔가 발에 밟혀서 뒤돌아 본 걸수도 있다.

근데 동화책에 굳이 이런 설정을 넣기엔 부자연스럽다.

그런 것치고는 다른 동물들도 모두 동화책을 보고 있고.

호랑이만 혼자 동화책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니 두 번째로 생각해 본 것은 모든 동물들은 동화책의 존재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말로 하니까 이상하게 들리는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들 지나가면서 동화책을 발견했고, 각각의 동물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다 다른 의태어를 쓰고 다 다른 설정을 쓰자니 어쩌다가 '호랑이는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라는 설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쓰고 나니까 진짜 바보 같다 첫 번째 추측... 흐아아.

그래도 혹시 나 같은 생각하는 사람 있을까 봐 그냥 써놓아야지.

 이야기의 처음에 앞표지를 보여주며 시작했는데, 동물들이 지나가고 바람이 책을 덮으며 뒤표지를 보여준다.

책 속에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등장하는 탓에 호기심이 더욱 강하게 든다.

▲마블링 사용 첫 번째. 

​▲엄마의 부름에 책을 내려놓고 따라가는 여자아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과일나무의 열매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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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링 사용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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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링을 이용한 뒷배경은 몽환적이고 이상한 느낌을 준다.

책을 펼쳐 보는 장면만 이런 배경이 사용되었는데, 독자로 하여금 더욱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솔직히 처음 볼 땐 별로였다.

난 솔직한 리뷰어니까 말하자면, 토사물이나 애벌레 체액(...)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아 물론 아니었던 여러분이 나 때문에 이런 걸 떠올리게 되었다면 유감스럽지만 뭐 어떡하겠는가...

아마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사람도 있을 거다. 그렇지 당신?

어쨌든 간에 처음엔 그랬지만, 계속 보다 보니 배경이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이 책 내용이 궁금하지? 무슨 내용일 것 같아??"

정말 묘한 기분이었고, 나의 전두엽을 자극했다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그리고 두 장의 마블링이 들어간 페이지 사이의 여자아이 손에는 빨갛고 둥근 것이 들려있다.

처음 읽을 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공이겠거니, 했는데

계속 읽다 보니 맨 뒷장의 과일나무 열매를 들고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진으로는 찾기 힘든데 책으로 직접 자세히 보면 움푹 팬 꼭지 부분이 있다.

이걸 복선이라 해야 할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디테일을 찾는 건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이라서 감동이었다.

(물론 나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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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이자 나의 머리를 흔든 글. 

 그리고 내가 예측하지 못 했던 대망의 마지막 장면.

이 장면만 한참을 들여다본 것 같다.

일러스트 자체와, 일러스트의 내용 구성과, 저 짤막한 두 줄의 글이 나를 붙잡아 두었다.

바로 위에서 말한 과일나무며, 책 이불을 덮고 있는 여자아이, 인형 및 실내화와 테이블보와 커튼으로 등장한 동물 친구들.

그리고 숲 속에 책이 있고, 책 속에 내가 있다는 짧다면 짧은 문장.

정말 더 이상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군더더기 없는 장면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숲 속에 책이 있네요.

책 속에 내가 있네요.

이걸로 충분하다. 이 안에 모든 게 다 담겨 있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총점은 [★★★★☆]이다.

여태까지 계속 칭찬만 했으면서 별 반 개를 빼는 건 무슨 심보냐고 묻고 싶나??

대답해주자면, 내 마음이다~.

죄송합니다... 다시 설명하면 이 글은 객관적인 글이 아니라 주관적인 리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지 별 다섯 개를 주기는 싫은 기분이 들어서 반 개를 뺐다.

정말 아름답고 잔잔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고마운 동화책이었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하느라 힘들었었어 그 감정이 들어간 걸까나.

아, 그런 거 같다.

어쩔 수 없지 뭐!

아무튼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은 취향 타는 책이어서 취향인 사람은 아주 좋아할 만한 책이다.

아마 이런 취향이 아닌 사람은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 않다.

나는 마음에 듦.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리뷰 안 한다.

그러니까 난 이거 좋았으니까 여러분도 같이 즐기면 정말 매우 기쁠 것이다!

+만약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비움(곽영권/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이라는 동화책도 추천해 주고 싶다.

이것도 독특하며 생각에 잠길만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