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대학에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강의에 학생들이 몰리면서 ‘인문학의 멸종’을 우려하는 학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인문, 교양 등의 과목이 학생 수 부족으로 폐강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했던 학술단체협의회(상임대표 박경)는 국내 학술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문학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11월19일 중앙대학교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학술진흥 및 학문후속세대 지원 정책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인문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성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는 기조발제에서 “두뇌한국(BK) 사업이나 인문한국(HK) 프로젝트는 연구 인력들을 ‘돈줄’에 목매달게 해 학문의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학문 분야들의 개별적 특수성을 일거에 무력화하는 극히 비학문적인 폐단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서 ‘학문정책과 학문후속세대’라는 주제의 발표로 국내 최대의 학술지원기관인 ‘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원 성공회대 교수는 “현재 지식사회 구조의 중심에는 학진의 등재지 정책이 존재한다. 학진 등재지에 실린 논문의 숫자로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정책은 한편으로는 ‘학문을 한다’를 ‘논문을 쓴다’로 변질시키면서 연구자의 창조적이고 질 높은 연구를 저하시켰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지나치게 거대화된 학진 시스템의 견제와 축소가 필요하다. 학진이 자신있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내세우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지식사회에서 제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학술지의 평가와 관리는 연구자 집단의 자율적인 평가·관리로 이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하 중앙대 교수는 ‘해외 학문지원정책 사례’ 발표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인문학은 가장 소외된 분야가 됐다. 인문학자 수백명이 길거리에 모여 인문학 선언을 하는 등 법석을 떨면 정치적 배려로 학진에 몇 백 억의 예산을 배정하는 등 ‘울어야 젖 주는 식’의 지원이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외 인문사회과학정책을 소개하며 “한국 학계의 문제점은 학문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곳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미국 국립인문재단, 영국 인문예술연구회, 프랑스 국립학술원 등의 사례 제시를 통해 “한국은 우선 학문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상위의 기관이나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직속의 한국과학기술위원회와 같은 급의 ‘(가칭)국가학문위원회’의 설립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