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대학 교수 험버트는 여름동안 지낼 하숙집을 찾다 미망인 샬롯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는 샬롯의 애정어린 관심을 받고 부담스러웠지만, 그녀의 조숙한 어린 딸 로리타에게 한 눈에 반해버리는데. 결국 험버트는 로리타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샬롯과 결혼을 한다. 어느 날, 로리타에 대한 마음을 기록한 험버트의 일기장을 본 샬롯은 격분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험버트는 기숙학교에 보내진 로리타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고 함께 도피 여행을 떠난다. 이때 정체불명의 추적자가 생기는데."

검증되고 공인된 걸작을 보게 될 때에는 이미 검증되었고 공인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말을 하고 싶지 않게 되면서도(혹은 못하게 되면서) 전혀 다른 입장을 갖게 되어서 무슨 말이든 하고 싶게 되기도 한다. 물론,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조금은 불안감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혼자 딴소리를 하는 것 같은 불안감 혹은 영화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는 핀잔을 듣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원작을 각색한 누구나 읽지는 않았어도 한번쯤은 들어는 보았을 ‘로리타’는 스탠리 큐브릭의 진정한 첫 번째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그 자신도 그런 평가를 내리며 큰 만족감을 보인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의 일련의 걸작 만들기의 첫 시작이기도 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는 무덤덤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더 자극적이고 별의별 경험들과 이야기를 그리고 영화들을 접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폭력과, 성 그리고 추악한 욕망과 같은 인간이 갖고 있을 어두운 면에 대해서 탁월한 통찰력을 선보이고 관심을 보이던 스탠리 큐브릭의 ‘로리타’는 앞서 말했듯이 그의 첫 번째 완전무결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이고, 항상 작품의 발표와 함께 시끄러운 논쟁과 화제를 야기한 그의 경력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을 통해서라도 널리 알려진 ‘로리타’는 원작자 나보코프가 직접 각색에 참여하여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전반적으로 원작보다 심리적 갈등에 더 집중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원작을 읽어볼 생각도 없고 읽으려고 애쓸 생각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런 것은 그렇다고 넘어가고 싶다.

기존의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들을 떠올린다면 원작과 일정부분 다른 시각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보다는 덜 성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아마도 당시로서는 매우 자극적으로 성적인 은유가 담겨져 있다고 느껴져서 큰 화제를 모았을 것 같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보다 적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극적이고 내면적이지도 않은 험버트의 모습에 조금은 퉁명스럽게 반응하고 싶어지게 되었다.

스탠리 큐브릭은 자신의 장기인 정교한 연출을 통해서 2시간 30분의 상영시간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끔 작품을 이끌고 있고, 순진함과 타락함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수 라이온은 로리타가 갖고 있는 순결하고 퇴폐적인, 성스럽고 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잘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제임스 메이슨은 갑작스러운 감정으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혼란스러움을 잘 연기해내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워낙 알려진 원작이고, 이미 알려진 줄거리이기 때문인지 충격적이기 보다는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앞서고 있을 뿐이고, 어중간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고 집착만을 보이고 있는 험버트의 모습에 그리고 아는지 모르는지 간만 보고 있는 것 같은 로리타의 모습에 안절 부절함을 느끼게 되거나 성적인 긴장감을 느끼기 보다는 귀찮음을 느끼기만 했기 때문에 역시나 이런 작품에는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이 담고자 하고 있는 시선은 그리고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험버트의 시선이 아니라 험버트와 로리타를 바라보고 있는 극작가의 악의적인 시선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아니면 진실을 알게 되어 자살적인 죽음을 맞은 샬롯의 시선이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누군가의 혹은 누군가들의 모습에 성적인 환상을 덮어서 자신의 성적인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는 관음증과 같은 집착적인 시선을 극작가는 보이고 있고, 반대로 자신의 욕망과는 반대로 성적인 순결함을 갖으려고 애쓰는 샬롯은 추악한 성적 환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글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바로 곁에 있는 이의 성적 환상을 바라보게 되거나 혹은 바라보려고 하거나 하는 모습을 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 이를 통해서 성에 대한 시선을 탐구하고 있으며 여기에 어리지만 조숙하고 순진하지만 퇴폐적인 로리타를 개입시켜 보다 성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성적인 욕망을 느끼고 그 욕망을 해소하려고 혹은 외면하려고 하는 것일까?

성적인 호기심에 대한 탐구는 이후에도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엿볼 수 있고,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아이즈 와이드 셧’을 통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는 아마도 이 작품이 가장 그의 인간이 갖고 있는 성적인 환상에 대해서 가장 탐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