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길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 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그 땅 위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들이다.
공산주의 기운이 물씬 풍기던 베이징의 버려진 국영 공장지대를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798 예술 특구’로 피어나게 한 데는, 폐허가 된 곳에서 예술 전문 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한 다산츠(大山子) 798번지 첫 입주민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서울 거리 중 하나이던 곳에 알음알음 몰려와 지금은 서울의 가장 핫한 상업 길로 변신한 ‘가로수길’의 초창기 예술가들이 그러하고,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 많은 사람이 안식처로 삼는 ‘삼청동길’의 오랜 터줏대감들이 그러하다. 이처럼 길에 생명력를 불어넣는 데는 그 첫발을 내딛은 용감한 1세대 모험가들이 존재한다.
최근 트렌드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태원, 한남동 일대의 ‘꼼데가르송(02-749-1153)길’도 마찬가지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꼼데가르송길’은 세계적인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가 지난 8월 30일 한남동에 거대한 꼼데가르송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기 시작하면서 그 일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 5백20평 규모의 이 플로그십 스토어는 그가 직접 설계에 참여하면서 이미 외관과 내관 모두 다른 상업공간과는 차별화된 예술적인 감성이 묻어난다. ‘준야 와타나베’, ‘꼼데가르송 데 꼼데가르송’, ‘플레이’ 등 꼼데가르송에서 출시하는 13개의 라인이 계단 없이 전체 5층에 터널처럼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를 보는 듯하다. 지하 1층에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인 식스 갤러리, 지상 1층에는 유기농 전문 베이커리가 오픈해 감성과 미각의 즐거움까지 더한다.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예술과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꼼데가르송길’은 정확히 어느 구역을 이르는 걸까. 이전에는 리움미술관 뒷길 혹은 제일기획 근방으로 불렸던 곳으로, 제일기획 건물에서 꼼데가르송 건물을 지나 6호선 한강진역으로 이어지는 650m의 직선 거리를 말한다. 꼼데가르송 일대를 중심으로 이 직선 거리에 복합 문화 요소들이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꼼데가르송 건물 맞은편에는 두바이 칠성급 호텔의 수석 주방장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권의 레스토랑 ‘더 스파이스(02-749-2596)’가 있고, 그 옆에는 SPC 그룹(파리바게뜨 본사)에서 만든 디저트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있는 ‘패션 5(02-2071-9505)’가 자리 잡고 있다. 방향을 틀어 꼼데가르송 건물에서 제일기획 쪽으로 내려가면, 오른쪽에 건축가 유이화의 멀티 문화 공간인 ‘비숍(www. beshop. info)’과 가구 디자이너 이종명의 스튜디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올해 리뉴얼로 눈길을 끈 제일기획 맞은편 ‘IP 부티크 호텔(02-3702-8000)’은 이 지역 일대 관광객 대부분을 흡수하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꼼데가르송 건물 근방의 삼성 ‘리움미술관(02-2014-6900)’도 이 일대를 설명할 때 놓쳐서는 안 될 중요 포인트다.
이외에도 내년 10월 오픈 예정인,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가 작업한 현대카드 전용 공연장도 한강진역 앞에 한창 공사 중이다. 꼼데가르송 맞은편에는 9월 30일 오프닝 파티를 시작으로 뉴욕을 접수한 일본의 모던 재패니즈 디저트 바앤 다이닝 ‘교토푸(Kyotofu)'가 정식 개장을 앞두고 있다.

본래 길이 급속도로 팽창하면 그가 지닌 고유의 멋과 아이덴티가 희미해지고 주목받는 브랜드의 최종 집결지로 남게 되거나 상업적인 트렌드의 흔적만 물씬 풍기게 된다. 그러나 한남동 토박이들은 이곳은 좀 다를 것이라 말한다. 한남동, 이태원 등지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문화 예술적 아우라를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수많은 다국적 외국인들의 아지트로 오랜 세월 동안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다양성이 존재하던 곳이기 때문에 실험적인 문화 요소가 들어올수록 그 다양성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할 것이는 것. 거대한 복합 문화 거리로 성장할 꼼데가르송길의 미래를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자료제공ㅣ리빙센스
진행 | 이수영 기자 / 사진 | 김동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