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드릴은 하늘을 뚫을 드릴이다!' 내가 믿는 나로 지구를 구원하겠어!

사람들이 지상 세계를 괴물(수인)에게 뺏기고 지하 마을에서 살아가는 머나먼 미래. 사람들은 마을을 넓히기 위해 땅을 파며 살고 있다. 시몬은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굴착꾼 중의 한 명이다. 여자들에게는 ‘냄새난다’며 인기가 없지만 친한 형 카미나만은 그의 능력을 인정해준다. 어느 날, 시몬은 땅을 파던 중, 신비한 작은 드릴 하나와 큰 얼굴 모양의 로봇이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지하 마을에는 간멘(거대 로봇)이 떨어져 마을을 어지럽히고, 시몬은 카미나와 함께 얼굴 로봇(라간)을 이용해 간멘을 간신히 무찌른다. 마침 지상에서 살고 싶어하던 카미나는 그때를 틈타 시몬과 함께 라간을 타고 지상으로 나가지만, 지상에는 그들을 위협하는 수많은 간멘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믿는 나를 믿지마

내가 믿는 널 믿지마

네가 믿는 널 믿어

‘에반게리온’ 이후에 특별한 화제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가이낙스가 그동안의 부진을 한꺼번에 만회하는 작품이라고 알려진 ‘천원돌파 그렌나간’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제야 보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면 언제적 작품을 이제야 보았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출퇴근하며 챙겨보는 사람으로서는 이제서라도 보게 된 것이 어디냐는 생각이 더 앞서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재미나고,

단순히 재미만 있다고 말하기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

지하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드릴로 무언가를 뚫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굴착꾼 시몬과 그와 가깝게 지내며 항상 활기 있는 모습과 함께 지상으로 나가길 염원하는 카미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고, 우연히 발견한 로봇과 이를 통해서 지상으로 올라가 지상을 장악하고 있는 수인들을 물리친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성이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 과정을 통해서 감춰져 있던 비밀들과 함께 새롭게 등장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카미나를 중심으로 활력이 넘치는(엔드로핀이 과다 분출되고 있는 것 같은) 등장인물들은 그저 로봇이 나오고 소리나 꽥꽥지르며 싸움질이나 하는 전형적인 열혈 메카닉 물에서 벗어나 조금은 한걸음 더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 작품 특유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주변인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내성적이고 소심한 그리고 체격도 왜소한 주인공이 여러 경험들과 주변인들을 통해서 성장을 하게 된다는 진행과정과 함께 논리적이거나 인과적인 뚜렷함 보다는 그냥 그럴 것 같다는 그럴듯함을 내세워 거대해져만 가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의 틀을 잡고 있다. 과학적인 것 같으면서도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뜻인데, 그게 단점이기 보다는 장점이고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온다.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기백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카미나의 말처럼 이 작품은 그렇게 질주하고 밀어붙인다.

기합과 기백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가면

어떤 난관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는 구성 속에서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힘이 넘치는 작품이 조금은 그립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터져버릴 것 같은 열정이 느껴지는 이 광폭한 작품에 한없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주인공 시몬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신체적인 왜소함을 보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한가지에는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사회 특유의 ‘오타쿠’라는 집단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년이 성장하는 모습에 그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너무나도 잘 채워주고 있기도 하다.

주인공 시몬보다 오히려 더 인상적인 캐릭터는 주인공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카미나라는 존재일 것이다. 일본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인 카미나는 열정적이고 앞뒤 생각하지 않고 질러대는 전형적인 캐릭터일 것이고,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많이 보았기 때문에 아주 새롭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겠지만 만화적이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카미나가 이야기의 중반도 진행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이 작품은 보다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인상적인 캐릭터를 갑작스럽게 죽게 만드는 작품은 아마도 ‘기동전함 나데시코’ 정도이지 않았을까?

카미나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그리고 새롭게 전진하는 이야기 진행은 특별할 것 없지만 안정적이고 흥미를 유지한다.

사천왕을 하나씩 이겨나가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나선왕 까지 물리치는 이야기 진행 속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장관들과 멋진 이야기 구성은 그동안 부진하기만 했던 가이낙스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꽤 노력을 기울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그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어 인간은 지하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향할 수 있게 되고,

재건을 하게 되며 다시금 지상에서의 삶을 이루게 되며 하나의 신화는 일단락 한다.

만약, 여기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이후의 내용은 재건의 과정과 과거의 회상과 같은 몇몇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고 충분히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몰아세운다.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작품의 진행 중에서도 간간히 인간에 대한 그리고 사람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냉소적인 시각도 엿보였었다. 주요 등장인물들 중 하나인 로시우를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지하 마을에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를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재건 이후 느닷없이 등장하게 된 안티 스파이럴과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도시의 파괴로 인한 시민들의 격렬한 반응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재건을 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담아내게 된다.

인간은 고작 이런 존재일 뿐이라는 식의 냉소적인 시각과 함께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희생주의

그리고 일본 특유의 관료적 사회에 대한 언급과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하는 현실주의와 일종의 마키아벨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로시우의 모습은 분명 이 작품이 단순히 열혈 메카닉 물에서만 머물려고 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성향을 전반적으로 내비치기 보다는 간간히 혹은 돌발적으로 내세우고 있고, 이후의 이야기 진행에서는 크게 부각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부각되었지만 생각 이상으로는 내세우지는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의 작품 진행은 다시금 열혈 메카닉 작품 성향에 충실하다.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광대한 성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안티 스파이럴의 모습에서 뭔가 더 논의를 꺼내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들을 위한 흥미진진한 작품의 성향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고 있다.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그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된 동료들의 수많은 죽음,

사랑하는 연인과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지만 더 이상은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

그리고 인상적인 마무리 장면들까지 장르적 재미를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감동하게 만들고, 때로는 함께 울게 만들고 있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매력을 글로써 설명하기 보다는 함께 이 작품을 즐기자고 말하고 싶게 만들게 된다.

그동안의 부진을 한방에 만회한 가이낙스로서는 아마도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들이 어떤 작품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잘 깨달았으리라 생각되고, 앞으로의 작품들도 다시금 기대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서 뛰어난 정비능력을 자랑하는 론의 대사처럼

즐거웠다

이것으로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은 충분한 것 같다.

참고 : 1. 주요 캐릭터 중 로시우를 빼놓고는 대부분 일본의 폭주족을 연상시키는 모습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상이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인상이라는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팬들은 이것들을 보다 더 상세하게 분석해낼 수 있을 것이다.

2. 남성 중심 / 남근 중심적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겠지만 그게 얼마나 이 작품을 비난하는 것에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이걸 포함시키며 작품을 분석하는 것에 아직은 큰 의미를 느끼진 못하겠다. 아마도 내가 남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언급하는 것에 그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