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가 현대극 스릴러에서도 대단한 연출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 걸작. 전반부는 도덕적 갈등에 대한 폐쇄공간의 드라마이고 후반부는 유괴범을 체포하려는 경찰의 노력을 담은 경찰 스릴러인데, 이 어느 정도 구별되는 두 부분 모두에서 구로사와는 출중한 테크닉을 구사해낸다.

신발제조회사의 중역인 곤도는 회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회사에 투자한 상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아들이 납치됐으며 범인이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 회사냐 아들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지만 곧 납치된 것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운전사의 아들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곤도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작품들을 떠올리면

사무라이들의 활극들로,

마치 오페라와 같은 거대한 시대극으로,

우선 생각되기 마련이지만,

그의 뛰어난 능력이 발휘된 범죄 영화들을 본다면 ‘오히려 그의 재능은 현대극에서 더 빛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들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천국과 지옥’은 이런 생각을 확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항상 담고 있었던 도덕적인 질문과 함께

시대의 풍경을 담고 있고,

거기에 영화적 재미(긴장감)가 더해지면서 ‘천국과 지옥’은 말 그대로 그가 추구한 모든 것들이 좋은 조화를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멋진 일요일’은 폐허가 된 일본의 풍경을 담아내면서 세상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고,

‘들개’에서는 그 폐허에서 재건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담아내며 도덕적인 고뇌와 조금씩 보이게 되는 경제적 격차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서는 재건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그 결과로 인해서 확연하게 되어버린 경제적 불평등과 그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누구에게도 향할 수 없는데도 특정인에게 향하게 되었을 때 그 적개심이 어떻게 모든 이에게 상처를 남기게 되는지를 절묘하게 보여주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 진행은 ‘들개’처럼 하나의 범죄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 범죄로 인해서 겪게 되는 개인적인 괴로움과 그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를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범죄를 완벽하게 해체하고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길이는 길어지게 되지만 완결성과 구성력은 단단하다. 그리고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진다.

작품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눠놓고 있는데,

한 가지는 유괴로 인해서 겪게 되는 고뇌이고, 유괴범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절박한 긴장감이다. 그 긴장 속에서 주인공 곤도가 겪게 되는 도덕적인 딜레마와 철저할 정도로 잔혹한 회사 중역들의 모습에서 범죄의 잔혹함과 곤도가 겪는 (경제적) 생존의 잔혹함이 뒤섞이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유괴범과의 협상 이후 유괴범을 뒤쫓기 위해서 이뤄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불평등함과 그 모습들을 담은 풍경,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갖게 되어가는 적개심과 범죄로 인해서 겪는 불안감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회사 중역들의 경제적 계산으로만 이뤄지는 선택과 채권자들의 압박은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질식할 것 같은 폐쇄적인 긴장감을 보다 강렬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곤혹스러움은 그 긴장의 끝에서 느끼는 공허를 보여준다.

만약 구로자와 아키라가 도덕적인 딜레마에 덜 집중을 했다면 이 작품의 결말부분은 보다 영화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더 흥미롭게 재미난 결론을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구로자와 아키라는 영화적 재미를 조금은 손상시키더라도 도덕적인 질문을 놓치려고 하지 않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보다 사회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첫 장면에서 보여주는 회사 중역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주인공 곤도가 냉철한 사람이라는 것과 직업의식에 투철하면서도 도덕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이후의 유괴로 인해서 겪는 그의 고뇌를 보다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근면함과 정직, 그리고 성실함은 형사의 입을 통해서 부자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서 다뤄지도록 하고 있고, 그가 겪는 불행을 보다 가깝게 다가서도록 하고 있다.

곤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업상의 도박(투자)을 하게 되고, 이 와중에 그는 자신의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협박 전화를 받게 된다. 다행히 아이는 뒤바뀌어 자신의 운전수의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유괴범은 그와 상관없이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

오히려 곤도에게 더욱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목적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다분히 감정적인 범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타인의 아이로 인해서 거액의 돈을 요구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이 작품은 꽤나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다.

유괴라는 범죄가 물론 과거부터 있었던 범죄이기는 했지만 이 범죄는 보다 최근에 들어서야 보다 잔혹성을 보이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누군가의 혈육을 납치해서 생명을 담보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 다른 일반적인 범죄에 비해서 보다 감정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그렇지만 유괴라는 범죄가 대부분 좋지 못한 끝맺음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도 하기 때문에 잔혹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인공 곤도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선택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렇게 노력할수록 보다 선택의 무게감은 더해져간다.

믿을 수 사람은 아무도 없고,

누구도 그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판단으로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무더운 여름

가장 높은 곳에서 시원하게 에어컨으로 열기를 쫓아내며 생활을 하고 있는 곤도와

가장 낮은 지역에서 숨막히는 열기를 느끼며 협박을 하고 있는 유괴범과의 대화는 짧지만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둘은 공간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차이를 보이고 있고,

그 극명한 차이를 구로자와 아키라는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몸값을 지불하고 아이는 되찾지만,

도덕적인 그리고 용기 있는 선택으로 인해서 곤도는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태로 놓여지고, 사회적인 존경은 받지만 직장에서는 축출을 당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방향을 바꿔서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담는 하나의 추격극으로 변화되게 된다. 그동안 곤도의 집안에서 실내극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제는 바깥으로 나오고 밑으로 내려와서 범인을 뒤쫓게 된다.

조금씩 범인의 윤곽을 잡아내기 시작하고,

어떤 이가 범인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체포하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미행은 구로자와 아키라가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거장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집요할 정도로 범인을 쫓아가면서 그는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고,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사회영화가 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에서 느끼게 되는 보여주는 범죄는 해결되었지만 단순히 범죄만 해결되었을 뿐이지 실제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은 영화적 재미를 담아내는 중에도 세상에 대한 근심을 잃지 않고 있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범죄 영화의 교본과도 같은 ‘천국과 지옥’은 단순히 범죄 영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으면서 그 많은 것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할지도 알려주고 있는 작품이다.

참고 : 유괴범이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배회하는 장면에서 간간히 한글들이 눈에 보이는데, 흑백영화이기도 하고 순식간에 지나쳐서 찾는데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봤자... 음식들 이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