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나온 탐이 고향으로 가기위해 히치 하이크하는 데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저당잡힌 집과 농장이 트렉터에 밀려 일과 가정을 잃은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고 그의 가족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탐의 가족은 일거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오지만 그곳 역시 굶주림과 실업으로 떠도는 이들에게는 낯선 땅일 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탐은 빈부의 격차를 낳은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에 눈뜨게 되며 빼앗긴 자의 생존권을 위한 인민주의자가 된다”

농장에 모래 바람이 불어 닥친 뒤로 소작제도는 이젠 성과가 없어 수지도 안 맞아

농부 한 명과 트랙터 한 대면 12에서 14곳을 처리할 수 있어

임금을 주고 작물만 가져가면 돼

 

 

하지만 지금보다 우리 몫이 적어지면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애들이 먹을 음식조차 충분치가 않아요

옷도 다 해어졌어요

전과 같지 않다면 곤란해요

 

 

어쩔 수가 없어 이주시키라는 명령을 받았거든

 

 

우리 땅을 떠나라고요?

 

 

날 원망하지 마, 내 탓이 아냐

 

 

그럼 누구 탓인데요?

 

 

땅 임자가 누군지 알잖아 쇼우니 랜드 앤 캐틀 컴퍼니야

 

 

그게 누군데요?

 

 

사람이 아니라 회사란 뜻이야

 

 

사장은 있잖아요

비난을 받을 사람 말이오

 

 

사장 잘못도 아냐 은행에서 그렇게 한 거야

 

 

그럼 은행이 어디 있는데요?

 

 

털사에, 담당자를 비난해 봤자야

그자는 관리자일 뿐이지

명령에 따르느라 정신이 없어

 

 

그런 우린 누굴 총으로 쏴야죠?

 

 

이것 보게, 나도 몰라

알면 나도 얘기해주겠네

누구 탓인지 나도 몰라

존 스타인벡이 쓴 미국 문학의 기념비적인 걸작이라고 칭해지는(물론,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분노의 포도’는 단순히 미국 문학의 걸작만이 아니라 톰 조드로 대표되는 약자들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고 있고, 어떻게 분노하게 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어떻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한 열정어린 글(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말하지만 다르게 말한다면 미국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인(혹은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작품으로 평가될 것인데, 이런 작품을 미국의 신화를 만들었던 존 포드와 같은 사람이 어떤 의도로 영화로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의도가 어떤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존 포드가 황야에서 총질을 해대는 작품을 만들었던 감독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러한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작품일 것이고, 또한 가부장적이고 낙관적이기만 한 미국의 신화를 만들었던 감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도 그가 보다 공정한 입장에서 미국을 바라보려고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역마차’와 같은 작품을 만들 때는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노의 포도’에서는 톰 조드와 같이 보다 사회에 대해서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그는 기본적으로는 미국 사회에 대해서 긍정을 하면서 일정 부분 변화를 보여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

존 스타인벡의 원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과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에서 큰 변화를 보였으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안정적으로 각색을 했을 것이고, 헐리우드가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동네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이런 추측은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톰 조드와 그의 가족들로 대표되는 버림을 받고 신념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고 머나먼 길을 방랑하지만 그들에게는 이전과 같은 새로운 안식처라는 곳을 이제는 변해버린 세상에서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그리고 삶의 끈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작품의 중심을 잡고 있고, 이런 생각을 흔들리지 않고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다.

끝없이 이익을 추구하고,

기술 발달로 인해서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흐름을 이 작품은 조드 집안과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고, 이러한 이야기 흐름으로 인해서 자신의 터전에서 벗어난 조드 집안의 모습이 단순히 그들에게만 닥친 불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고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불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길 위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는 조드의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비극을 보다 더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나라는 산 사람보다

죽은 자에게 관심이 더 많거든요

이름과 함께 묻힌 걸 알면

그렇게 외롭지 않으실 거야

지하에는 노인네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지

미국의 신화를 만들었던 존 포드는

이 작품을 통해서 신화의 이면에 숨겨진 어둠을 집중적으로 탐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신화의 이면에 있는 추악함을 이겨내고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고 하고 있다.

또한 존 포드는 현대극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극에 다시금 서부극을 불러오고 있다.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조드 집안사람들이 캠프에서 휴식을 취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아마도) 가장 노골적으로 서부극을 불러오고 있는 장면일 것이고, 조드 집안이 겪는 고난을 잠시 동안 잊을 수 있게 만드는 장면일 것이다. 물론, 곧장 그들이 갖고 있던 희망이 말 그대로 희망에 불과할 것이라는 불길함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존 포드는 조드 집안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을 말 그대로 고통스럽게 담아내고만 있는데, 어째서 삶의 끊을 놓치지 않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그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그런 그들의 질긴 생명력에 대한 비아냥과 같은 감탄은 작품 속 대사에 담겨져서 우리들의 생각을 그 대사를 통해서 말하도록 하고 있다.

인간이 아냐, 인간이라면

저런 식으로 살진 않지

인간이라면 저런 비참한

생활은 견디질 못할 걸

통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 존 포드는 그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면서,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보다 더 순응하게 만들고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고용주들의 혹은 자본가들의 영리함을 놓치지 않고 덧붙이고 있다. 예언자와 같은 목사 케이시는 이런 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고, 약자들이 어떻게 연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연대가 어려운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끝없이 쫓겨나고 있는 조드 집안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보다 설득력을 갖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약자들을 도와주리라 믿었던 공권력은 그들을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고용주들의 편에 서서 그들(만)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은 악의적이라는 말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틀린 말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드 집안사람들이 겨우 겨우 찾게 된 안식처에서 맛보는 행복은 더욱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존 스타인벡이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약자들로 대표되는 민중들이 자신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 같고, 조금은 낙관적이기만 한 것 같지만 존 포드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미국적 이상과 존 스타인벡의 이상이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소규모 공동체 사회가 그리고 그들의 강력한 연대가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국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에 대해서 세상은 혹은 힘이 있는 가진자들의 생각은 그들의 생각에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어떻게 하든지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톰 조드는 자신의 과거에 저질렀던 행동들로 인해서 가족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 이후 그는 떠나게 된다.

행복은 항상 짧을 뿐이고,

기나긴 이별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이별에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는 없고... 그저 슬픔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이별은 그런 식인 것 같다.

헤어짐 직전에 들려주는 톰 조드의 마지막 대사는

세상을 향한 하나의 경고이자

하나의 희망일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일 것이다.

난 어둠에 묻힌 채

어느 곳에든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볼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요

배고픈 자들이 먹기 위해 싸우는 곳

어디든 내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이 있으면

내가 거기 있을 거예요

화가 났을 때, 소리를 맘대로

지를 수 있는 곳에 난 있을 테고

배고픈 애들이 저녁이 준비됐다는

걸 알고 웃는 곳에 난 있을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직접 키운 것들을 먹는다면

자신이 직접 지은 집에서 산다면

난 그곳에도 있을 거예요

이제는 떠나버린 톰 조드가 없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조드 집안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늘 보다는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삶을 계속되는 것이라는 존 스타인벡의 혹은 존 포드의 긍정적인 결론일 것이고, 아마도 이런 결론은 아직까지도 혹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나와 같은 비관주의자 정도만이 그들의 생각을 믿지 않을 것 같다.

존 포드는 서부극을 어떻게 서부극이 아닌 작품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고, 미국의 신화를 부정하는 동시에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써낸 신화는 이전의 신화보다 더 강력하게 남겨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존 포드는 감독도 작가도 아닌 신화를 창조하는 사람으로 불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