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주부인 로라 제슨(Celia Johnson)과 또한 한 가정의 가장인 의사 알렉 하비(Trevor Howard)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알렉이 로라의 눈에 들어간 먼지를 빼내 준 일을 계기로 역 부근의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은 서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매주 목요일역 부근의 찻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각자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에 번민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이끌리는 두 사람은 매주 목요일은 밀한 만남을 가지면서 더욱더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의 관계가 더 이상 발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로라와 알렉은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하고 각자 반대 방향의 기차를 타고 떠나면서 작별을 고한다.”

이래선 안 돼

이 비극 속에 빠져있어선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자신을 추스려야 해

어떤 것도 영원한 건 없어 행복도 절망도...

인생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진 않아

오늘 일을 신경 쓰지 않을 때가 올 거야

편하게 미소를 지으며 '정말 어리석었어'라고 할 때가...

아니, 그런 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언제까지나...

내가 죽는 그 날까지

데이비드 린 하면

‘콰이강의 다리’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같이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들을 특별히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저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감독이었다.

오랜만에 집안을 정리하다가 선물로 받았던 DVD 중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지만 위의 작품들과는 성격이 다른 작품인 ‘밀회’를 발견하게 되어서 처음으로 데이비드 린의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밀회’는 앞에서 말한 작품들의 팬들이라면 시작하자마자 잠들고 싶거나 딴짓을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랑 이야기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슬픈 사랑 이야기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가슴 아픈 내용이고, 두 남녀의 그리고 특히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부족함 없이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누구나가 경험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지만,

그 사랑들 중에서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자랑할 수 없는...

숨기고 감추게 되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어지게 되는 사랑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들의 사랑이 자신이 경험해 보았던 사랑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고, 데이비드 린은 집요할 정도로 그들의 사랑에 그리고 그 사랑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심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눈빛과

어쩔 수 없이 빠져 들어가게 되는 사랑에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은 솔직하면서도 미소를 짓게 만들고, 청춘남녀처럼 서로의 별 것 아닌 것에도 웃게 되는 그들의 모습에서 슬픈 결말을 예고는 하지만 그 순간을 놓치기 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당신도 알죠?

 

 

네, 알고있어요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네, 알아요

 

 

솔직하게 말해 줘요, 내 생각이 맞는다고

 

 

어떤 생각이요?

 

 

당신도 날...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왜요?

 

 

난 당신을 잘 몰라요

 

 

하지만 사랑하잖아요?

 

 

네, 그래요

이러지 말아요, 이성을 찾아요

내가 이성을 찾도록 도와줘요

이래선 안 돼요 지금 우리가 한 말들은 잊어요

 

 

아니, 이미 늦었어요

 

 

이러면 안 되잖아요?

 

 

들어봐요 이성을 찾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우리가 한 말을 잊기에도 너무 늦었죠

이런 말을 했든 안 했든 상관없어요

우린 알고 있었어요

오래 전부터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그들의 사랑을 추하게 만들지 않고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그저 가슴에만 묻어두기로 결정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사랑을 보다 깊히 간직하도록 만들고 있다.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그런 결과를 맞게 되었는지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여성의 심리 변화에 더 집중을 하고 있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에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을 숨길 수 밖에 없다는 것에 좌절하는 모습과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고 있다.

우린 진심으로 사랑해요 중요한 건 그거죠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들이 있어요

이제 내겐 자존심이나 체면이 남아 있지 않아요

 

 

정말 다시는 날 안 볼 수 있어요?

 

 

네, 당신이 도와준다면요

 

 

당신을 사랑해요, 로라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나도 알기 때문에 당신을 쳐다볼 수가 없군요

 

 

이게 끝이라는 걸 알아요

당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건 이제 끝이죠

하지만 아직은 안 돼요

제발 아직은 안 돼요

그래요, 아직은 안돼요

오늘밤 당신의 기분을 알아요

우리가 추하다고 느끼겠죠

우리에겐 각자의 가정이 있고 가야할 길도 서로 달라요

죄책감이나 부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치루어야 할 대가는 너무 크죠

그 모든 걸 알아요

나도 당신과 똑같으니까

이제 나를 봐도 돼요

괜찮아졌어요

우리 더 신중해지도록 해요 마음의 준비도 하고요

아무리 용기를 낸다 해도 이런 갑작스런 이별은 잔인해요

서로에게 그토록 큰 상처를 낼 순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자신들의 사랑을 어떻게 결론을 지으려고 하는지 보여주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자신들의 감정을 억제하며 담담하게 나누는 대화는 느낄 수 있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도록 가슴 아프게 묘사하고 있다.

로라,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뭐든 할 말이 생각났으면 좋겠어요

 

 

애쓰지 말아요, 괜찮아요

당신이 먼저 타는 걸 보고 갈게요

 

 

아뇨, 내가 그쪽 플랫폼으로 갈게요

 

 

알았어요

 

 

우리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요?

 

 

글쎄요, 몇 년 동안은 못 만나겠죠

 

 

그때쯤엔 애들이 다 자랐겠죠?

우리 애들이 만나서 알고 지낼 수도 있을까요?

 

 

내가 가끔 편지를 쓰면 안 될까요?

 

 

안돼요, 알렉 우리 약속했잖아요

 

 

알았어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내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당신을 사랑해요

 

 

죽고싶어요

죽을 수만 있다면요

 

 

죽으면 날 잊게 되잖아요

난 기억되고 싶어요

 

 

알아요

나도 기억되고 싶어요

어떠한 사랑이라고 해도,

결국 사랑은 사랑이다.

그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숨길 수 밖에 없는 것일지라도...

혹은... 혼자서 숨죽이며 담아두어야 할 사랑일지라도...

그래도 그것도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결국 언제까지나 함께하며 지내는 것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 사람을 언제나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를지라도,

혹은 그렇게 기억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지독할 정도로 싫어할 지라도...

언젠가는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기억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눈앞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것도 아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결국 잊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잊혀지지 않게 되었다면,

사랑은 지워지지 않은 것이고,

그 사람도 삶에서 떠난 것은 아닐 것이다.

잠깐 그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어요

그리고 떠나가 버렸어요

멀리, 영원히 내 인생 밖으로요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이들의 사랑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더 많이 이해하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혹은 내가 경험한 것들과 비교하며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 린이 단순히 볼거리를 만들어내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담아내는 것에도 부족함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을 작품이다.

아름답지만... 슬픈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