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대히트하면서 촬영지인 남이섬과 용평스키장이 일본 관광객들로 북적거린 적이 있다. 한낱 배우의 발자취를 따라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 온다는 게, 그것도 가정이 있는 여인네들이 대거 몰려온다는 게 우리네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네들의 행보가 마치 아이돌을 쫓는 10대들의 ‘오빠부대’를 방불케 하는지라 ‘남편들이 쉽사리 허락해줬을까? 자식들은 젊은 남자 연예인에 열광하는 엄마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을까?’ 하며 아줌마다운 오지랖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의 아줌마들도 ‘그’에게 꽂혔음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게 되었으니 놀랍지 않은가.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아줌마, 그에게 꽂히다’에 나온 여성들을 보면 남편에게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나 김현중의 사진이 가득 담긴 사진첩을 자랑하고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너보다 민호가 더 좋아!”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흔쾌히는 아닐지언정 아내나 엄마의 취향이라 여기고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느라 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인정해주게 된 것이다. 하기는 ‘그’를 통해 위안을 얻고, ‘그’를 매개체로 모인 카페를 통해 소통할 친구를 얻고, 희망을 얻고, 나아가 봉사활동도 하게 되었다는 그녀들에게 대체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나. |
몇 년간의 육아로 생긴 우울함이 ‘그’로 인해 상쇄되었다는 분들도 있고, 남편의 사업 실패와 부모님의 간병으로 피폐해진 심신이 위로받았다는 분도 있고, 빈 둥지 증후군과 갱년기 우울증을 ‘그’ 덕분에 쉽게 넘겼다는 분들도 있으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에게 꽂힌 ‘그녀’들 중 하나다. 무늬만 7080 세대지 KBS <콘서트 7080>이나 <열린 음악회>보다는 SBS <김정은의 초콜릿>이나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더 끌리는, 어찌 보면 철딱서니 없는 아줌마다. 그리고 지난날 그리도 좋아하던 조지 해리슨이나 에릭 크랩튼의 가슴을 적시는 음색보다는 세칭 ‘짐승 아이돌’ 2PM이나 순정 만화 속에서 갓 빠져나온 듯 샤방샤방한 샤이니의 댄스가 더 좋아 죽겠는 주책 아줌마다. ‘주책’이란 단어를 서슴없이 쓰는 건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자기들보다 너댓 살은 어린 샤이니의 “Juliette! 영혼을 바칠께요 Juliette! 제발 날 받아 줘요”를 보며 ‘엄마 미소’를 짓는 이 엄마가 아이들 눈엔 심히 주책으로 보이나 보다. 흥, 그러나 아직 틀을 못 깨서 그렇지 ‘얼마든지 받아주마!’ 하고 추임새를 넣으며 put your hand up 하고 싶을 지경이라는 걸 니들이 어찌 알겠느뇨. 이 녀석들에게 50대의 엄마가 좋아해도 되는 가수의 하한선은 아마 이승철이나 신승훈, 김건모 정도인 모양이다. “그 수준이 너무 올드하지 않으면서 품위도 있지 않아?” 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리 응수했다. “그럼 너는 인형 가게에 가서 아저씨 인형 사니?”라고. ‘그’를 좇는다는 게 마음에 드는 영화나 책이나 그림을 고르듯 그저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는 걸 젊은 축들은 왜 이해하지 못할까? 설마 내가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은 2PM의 옥택연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겠나. 혹시 또 사위라면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한때 내가 좋아하는 ‘그’를 사위로 맞이할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지만 아뿔싸, 이를 어째. 나만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딸아이도 무럭무럭 자라 이젠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진 것이다. 한때의 ‘그’는 그룹 신화의 멤버였지만 최근의 ‘그’는 2PM이니 말이다. 그런지라 요즘은 딸아이와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품평회도 한다.
이제 딸아이는 누나 팬을 넘어 차차 이모 팬의 대열로, 나는 급기야 할머니 팬의 길로 접어들겠지만 서글프지도, 추레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언제까지나 우리는 품위만은 잃지 않을 테니까! ‘그’가 귀엽고 ‘그’가 사랑스럽지만 그 마음을 아직까지 꼭꼭 감추고 계신 분들, 어서 오소서. 웰컴 투 아줌마 팬들의 세계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