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몽환 /강효수

코스모스는 바람의 강을 유영하는 금붕어

분홍 금붕어 꼬리 잡으며 헤죽헤죽 따라가다

가을의 밤이 오면

연못이 있는 개망초 무덤 속으로 나는 죽으러 간다

가을밤에는 다른 별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달빛은 연못에 다리를 놓고

바람은 박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다

가을밤을 맞으려 나는 벌써 미쳐 있었다

하지만 준비한 것은 고작 찌불 하나 소주 몇 병

세상이 나를 놓아준다면

모든 가을밤을 박쥐처럼 날아다닐 것이다

가을밤은 순금이다

너무 아까워 아끼고 아끼다 잠을 도둑맞는

가을밤은 우주와 시인과의 완벽한 전도체이다

가을밤은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올빼미가 될 수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시간을 훔칠 수 있다

잠들지 못하는 모든 것은 살아 있는 詩體

신선한 詩體들이 가을처럼 널브러져 있어

詩場에 가지 않고도

달보드레한 시의 심장을 먹을 수 있다

내 안에는 별보다 많은 의미가 살고 있어

사람의 마음 밖에서 혼자 놀기를 연습한다

나와 만나는 나만으로도 나는 버거워한다

가벼워지고 싶다

가을밤처럼 달과 별만 담고 싶다

눈에 별이 박혔는지 자꾸 눈물이 난다

별이 녹으면서 맑고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완벽한 온도를 담고 소주는 일탈을 꿈꾼다

가을밤에 취하지 못한다면 나는 미치고 말겠다

고고한 달빛 윤슬에 찌불의 눈을 가진 詩魚가

이들이들 청잣빛 교태를 부려도

헤부작거릴 뿐 나는 당연히 잡지 못하지

그래도 미음돌듯 단춤 추는 가을밤은 덜퍽지다

나는 죽어서 시가 됐으니까

출처 : 카페 '서비의 놀이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