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숲에 눕다


원숙희


사랑을 받지 못해 서글픈 날에는
사랑을 잊지 못해 애달픈 날에는
숲을 이불 삼아 풀베게를 베고 누워요
지나가는 바람은 지나가게
몰려다니는 바람은 몰려다니게
그냥 그대로 놔둔 채
달은 어둠의 조각보 접어
지상에 빛을 심고
별들은 가난한 지붕에 박꽃
같은 등불 매다네요
아, 혈관에 떠도는 습관을 꺼내보니
바람은 그저 바람이었고요
짭짭허게 나눈 사랑은
어느새 머나먼 남이었어요
이젠 따스한 숲에 귀를 열래요
풀벌레는 투명한 문장을 읽고
계곡물은 경건한 고독으로 흘러오네요
그·동·안·이 모두 봉합되네요



ㅡ 소정문학 앤솔러지 "동인" 2020년

원숙희 시인은, 월간문학 등단. 소정문학동인,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