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강 같은 평화 / 박판식 

 

 

내가 어릴 때 마당에 쏟아버린 대야의 물이 냇물을 이루어

나 몰래 바다로 가고 있어요

얼굴 씻고 엉덩이 씻은 물이

뿔 달린 비둘기처럼 슬픈 상상도 나름의 질서와 법칙을 가지고 있어요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다시 어려질 수 없다는 것

고아와 고아가 만나 아이를 낳았다는 것

‘염불하고 있네’의 참뜻을 알게 되었을 때

플러스 인생이라고요. 그건 엔트로피 법칙상 불가능하지요,

트럼프와 김정은이 카펠라 호텔에서 악수하고 점심 먹는 동안

나는 딸아이와 뽀로로 보고 있지요

모두가 평화, 평화를 위해서예요

커피 알갱이들이 녹아내리는 동안

아내가 ‘외로워’라고 말하면

‘나도’라고 말하고 동그란 물방울처럼 웃지요

내 어마어마한 전 재산을 걸고 내기할 수 있는데,

부처가 생전 농담 한번 할 줄 모르는 꽉 막힌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유명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파, 싫어, 이게 요즘 딸아이 입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라도

그 말이 다 진짜라고 믿지 않는 것처럼요